지난 글에서 필자는 웹3에서 컨퍼런스가 폰지적 프로젝트가 폰지가 아니라고 외치기 위해 활용되고 있다고 냉소적으로 이야기한 바 있다. 이번 글에는 그 반대되는 사례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즉, 컨퍼런스가 단순히 네트워크 형성의 기회가 아니라 지식, 정보, 아이디어가 공유되는 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사례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이더리움 커뮤니티의 컨퍼런스인 DevCon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미 일 년 전의 행사인지라 기억의 가물가물 하지만, 행사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과 필자의 경험을 더듬어 DevCon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필자는 작년 10월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일주일 간 개최된 Devcon에 다녀왔다. Devcon은 일견 다른 컨퍼런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더리움 생태계에 참여하고 있는 개발자, 연구자, 사업가들이 모이는 연례행사이고 마찬가지로 공식 컨퍼런스와 동시에 수많은 해커톤, 사이트 컨퍼런스, 애프터 파티 등이 진행된다. 하지만 그 일주일은 필자의 3년에 못 미치는 웹3 경력에서 가장 감격스러운 동시에 역설적으로 가장 좌절스러운 순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DevCon의 경우 전 세계 113개국에서 6000여 명의 사람들이 참가했다고 한다. 물론, 참가자의 규모와 분포도 놀라웠지만, 필자를 감격하고 좌절하게 만들었던 것은 이 행사를 만들어낸 실천공동체(COP: Community of Practices)의 성숙도였다. 350여 명의 발표자들이 9개의 행사 공간에서 거의 10분 간격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물론, DevCon이 아니더라도 규모가 큰 행사는 많다. 예를 들어, UN이 기후변화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매년 진행하는 당사국 총회(COP: Conference of Parties)의 경우만 하더라도 그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모여 각종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차이는 실천공동체가 작동하는 방식에 있다. 이더리움 커뮤니티는 이더리움이라는 메인넷 자체와 관련된 기술에 대해 연구하고 토론하는 커뮤니티 외에 이더리움을 사용하는 프로젝트에 대해 연구하고 토론하는 수많은 하위 커뮤니티로 구성되어 있다. 이 커뮤니티에서는 실제 거의 상시적으로 그 커뮤니티 공동체 구성원 간 대화와 토론, 지식 공유가 이루어지고 있다.
Devcon 자체도 이 수많은 커뮤니티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 행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느 행사와 마찬가지로 소위 사무국이라고 불리는 행사를 주도하는 조직이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이 수많은 커뮤니티의 참여를 통해 이루어졌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온라인 채널을 통해 자신이 이더리움과 관련하여 연구, 개발하고 있는 것, 실제 사업화 중이거나 사업화에 성공한 사항, 이더리움의 비전으로 품고 있는 생각 등에 대해 Devcon의 어젠다로 제안하였으며, 그 가치에 대해 공동체 전체의 토론과 투표를 통해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 우선순위를 바탕으로 Devcon에서 발표할 주제와 발표자에 대한 의사결정을 진행하였다. 심지어 행사의 방식, 행사장의 구성 등에 대해서도 이러한 방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졌다.
실천공동체의 작동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Devcon이라는 이더리움 커뮤니티의 핵심 이벤트를 통해 공유된 지식은 행사 참여자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전체에 확산되며, 수많은 개발자, 연구자, 사업가들이 여기서 공유된 지식을 심화시키기 위해 혹은 사업화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지식과 사업이 다수의 다른 컨퍼런스를 통해 확산되어 나간다.
앞에서 말한 기후변화와 관련된 당사국 총회 및 그와 관련된 행사의 경우, 대부분의 행사가 누군가 자발적으로 만들기보다는 UN이나 해당 해의 당사국 총회 개최국이 비용을 써서 개최되었으며, 발표자 혹은 참가자의 참여 또한 UN이나 개최국이 항공권, 숙박료 등 각종 비용을 지급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또한, 이러한 행사를 통해 만들어진 지식의 확산도 커뮤니티의 자발적인 활동보다는 UN이 비용을 들여 만든 보고서, 참가국이 비용을 들여 만든 보고서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실천공동체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그 확산과 발전의 속도는 매우 더디다.
그와 반대로 Devcon은 이더리움 재단의 투자, 자원봉사자들의 참여, 참가자들이 지출한 입장료, 발표자들의 자발적 참여 등 오로지 커뮤니티의 노력만으로 개최되었으며, 그 지식의 확산 또한 이더리움 재단이나 행사 사무국이 만들어낸 보고서가 아니라 여기에 참가했던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만들어낸 각종 형태의 자료를 통해 확산되었고, 거기서 기회를 만들어내려는 각 사업체들의 노력을 통해 지식의 심화가 이루어졌다. 즉, 실천공동체가 작동하면서 지식의 확산과 발전이 매우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고, 이루어지고 있다.
정리하자면, 필자는 DevCon을 통해 실제 전문화된 지식을 공유하고 발전시키는 실천공동체를 처음으로 경험했다. 그래서 감격했고, 그에 비해 필자가 만들려고 노력했던, 그리고 노력하고 있던 커뮤니티의 모습은 너무 보잘것없어서 좌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그 후에도 1년째 그 노력을 계속하고 있으며, 그 좌절에도 불구하고 다른 업계보다는 훨씬 성숙한 실천공동체의 형성을 목도하고 있다. 필자가 웹3에서 폰지보다 혁신을 보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