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지. 실제 이윤 창출 없이 나중에 들어온 투자자의 돈을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으로 나누어 주는 다단계 금융 사기. 필자가 2020년 말 한 블록체인 회사에서 잡 오퍼를 받고 암호화폐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생각난 단어이다. 암호화폐를 다루는 일을 해 온 지난 2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폰지라는 단어는 계속해서 필자의 가슴속과 머릿속을 괴롭혔다. 내가 하는 일이 폰지가 아닌가. 암호화폐라는 무가치한 데이터 조각을 명분으로 선량한 투자자의 돈을 이 암호화폐를 만들어낸 조직의 주머니로 옮겨 담는 일을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암호화폐에 투자를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필자와 같은 고민의 단계를 거쳤을 것이다. 혹자는 폰지라고 판단하고 투자를 거부했을 것이고, 또 혹자는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나름의 이유로 투자를 하거나 투자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의 주변에 있는 이들처럼 암호화폐가 미래의 자산이 될 것이라는 확신 하에 크립토에 전 재산을 투자하거나 혹은 직접 업계에 뛰어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 용감하게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크립토 업계에 뛰어들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업계에 대한 지식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암호화폐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가 필자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 암호화폐가 본질적 가치를 가지고 있든 말든 블록체인 기술은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 의미를 부여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오퍼를 받아들여 지금까지 암호화폐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필자는 현재 클레이튼이라는 암호화폐의 거버넌스를 운영하고 개편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블록체인의 거버넌스는 블록체인의 운영과 관련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조정하고 그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의사결정 구조를 만드는 업무이다. 필자가 그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필자는 그 업무 덕분에 클레이튼과 관계가 있는 혹은 있기를 원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만나고 그들이 운영하고 있는 다양한 영역의 사업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레이어 1, 레이어 2, Defi, NFT, P2E, M2E, DAO. 섹터에 대한 구분 없이 모든 사업에 대해 고민해 볼 기회가 주어졌다.
그 고민 끝에 필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웹3는 폰지가 맞다. 현재 이 산업의 주요 사업모델은 나중에 들어온 투자자의 돈을 기존 투자자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맞다. 물론, 필자의 고민이 거기에서 끝났으면 필자는 더 이상 암호화폐 시장에서 일을 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고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웹3의 시작은 폰지이지만 웹3의 끝은 폰지가 아니다. 웹3의 세계에서 테라와 FTX를 만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지만, 도권과 샘 뱅크만이 수조 원의 손실을 만들어낸 후에도 웹3에서는 여전히 매일 수백 종의 새로운 암호화폐가 등장하고 사라지고 있다. 폰지는 보통 러그풀로 끝이 나지만, 웹3의 참여자들은 다수의 프로젝트에서 러그풀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을 목격하고도 여전히 새로운 암호화폐를 만들고 또 그 처음 보는 암호화폐에 자산을 투자하고 있다.
필자는 혁신을 창조적 파괴의 과정이라고 정의한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조셉 슘페터의 말을 빌려 웹3를 ‘폰지적 파괴를 통한 창조의 과정'이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웹3 태초의 혁신 비트코인이 있었다. 비트코인의 기술적 성공에 이더리움은 ICO라는 폰지적 과정을 통해 자금을 모아 폰지적 파괴의 마중물이 되었다. 웹3의 폰지적 구조를 통해 모인 자금은 리스크 수용적 경향이 있는 선도 투자자들의 투자 자금이 되고 그들은 후발 투자자들의 피를 바탕으로 새로운 폰지를 만들어 낸다. 새로운 폰지는 다시 후속 투자자를 모으고 새로운 리스크 테이커들의 투자를 위한 자금이 된다. 이 과정에서 혁신을 위한 에너지, 즉 자본이 끊임없이 공급된다.
웹3의 세계에는 어떤 비밀이 있길래 폰지가 폰지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혁신, 새로운 폰지로 이어질 수 있었을까? 필자는 그 답을 커뮤니티에서 찾았다. 폰지가 활동하던 시기의 커뮤니티와 웹3 세계의 커뮤니티의 차이가 러그풀과 혁신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폰지 시기의 커뮤니티는 정보가 부족했고 주어진 정보를 분석해서 판단할 수 있는 역량도 없었다. 폰지라는 판단을 내리더라도 이를 커뮤니티 전체와 신속하게 공유하고 토론하며, 이를 바탕으로 행동할 수 있는 채널이 부재했다.
웹3 시기의 커뮤니티는 정 반대의 존재이다. 그들은 그 어느 시기보다 풍부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이 투자한 프로젝트의 의미를 분석하고, 혁신가가 투자를 받으면서 약속한 사항들이 실제 이행되는지를 감시한다. 또한 매력적인 사업에 대해 스스로 마케터가 되는가 하면 동시에 혁신가가 다른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필자는 이러한 커뮤니티의 에너지가 웹3의 세계에서 암호화폐의 폰지적 구조가 혁신으로 연결 수 있도록 혁신가들을 움직였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폰지가 혁신이 되는 과정을 구체적인 사례로 보여주고자 한다. 지난 2년 간 필자가 조사하고 경험한 웹3의 모든 사업 모델들을 폰지와 혁신의 관점에서 해석할 것이다. 즉, 디파이, NFT, P2E, M2E, DAO 등의 비즈니스 모델에 들어있는 폰지적 요소를 분석하고 혁신가들이 어떻게 자신의 프로젝트에 가치를 부여했는지, 그 가치가 어떻게 파괴되고 다음 혁신을통한 새로운 가치 창출로 이어졌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줄 것이다. 그 폰지적 파괴를 통한 창조의 과정에 커뮤니티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20세기말 닷컴 버블은 이베이라는 혁신을 남겼고 거기서 형성된 기업과 자산이 21세기 초의 수많은 혁신을 이끌었다. 웹3에서도 역사는 반복될 것을 확신한다. 물론, 그 폰지적 파괴의 과정은 고통스러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