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 「히말라야의 노새」 박경리

어제를 반추하며

by 익명의 글쓴이
#024 「히말라야의 노새」 박경리(2번필터, 제트스트림)

#1.

공동매거진에도 올리긴 했지만,

이 시는 꼭 이 리스트에 넣고 싶어서 이 곳에도 올린다.

나는 이 시와 함께 어제 있었던 나의 분노를 삭혀내고자 한다.


#2.

그는 아내가 출산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뼈가 얼마 전에도 부러졌다고 하며 분노했지만

그의 네다섯살 남짓 첫째 자식의 손을 아내에게 쥐어주고 사람 많은 토요일밤 코스트코에 데려왔다.


아내의 뼈가 가해자인 나 때문에 또 부러지면 어쪄냐며 나에게 손가락으로 제대로 된 삿대질을 하며 다그쳤지만,

절뚝거리는 아내의 보폭은 아랑곳 하지도 않고 씩씩거리며 자기 갈 길을 걸어갔다.


경찰을 부르자고 하길래 그러라고 했고, 사무실에 당장 가자길래 그러자고 했고, 병원에 가자길래 그러자고 했고, 약을 써야한다길래 그러라고 했지만

정작 내 명함을 주고 당신의 명함, 없으면 핸드폰과 만약을 대비한 직장 연락처를 달라하니 '내 직장같은 건 당신이 알 필요도 없다'며 옹졸하게 이름과 전화번호를 포스트잇에 적어 내게 넘겼다.


내 명함을 주머니에 구겨 넣으며 그는 내가 경찰 부르라는게 진짜 부르라는 건 줄 알았냐며, 그만큼 화가 났다는 표시인데 경찰 부르라고 하니 동의한 게 더 화가 났다고 한다. 경찰 부르고 얘기하자고 자기가 사무실로 직원들 다 불러서 데려가놓고서.


이렇게 부인 몸이 약하시다 하시니 병원이나 약국 필요하심 지금 가셔도 된다하니 자기가 돈을 바라고 한 일은 절대 아닌데 내 태도를 보니 더 화가 난다고 한다.

그러더니 이제 할 말 다하니 좀 화가 가라앉는다며, 사과는 내 아내에게 충분히 하라한다.

정작 아내는 내가 사과를 너무 많이 해서 내 얼굴도 제대로 못 보던데.


아, 내가 무슨 잘못을 했냐고?


코스트코에서 카트를 밀다 저 화난 자의 부인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춰 별거 들어있지도 않던 카트가 발목에 부딪혔지. 살짝 까졌더라.

난 성질급한 아저씨들이 하도 새치기를 많이해서 발목 까지기 수없이 당했는데. 아프다고 소리질러도 무시하고 가고.

사람 많아서 복잡한데도 괜찮으시냐고 서너번이나 물어봤는데도 아무 대꾸도 없이 다른 곳으로 가길래 별일 없는건가 싶어서 자리를 뜨니 몇 걸음 뒤에 갑자기 남편되는 사람이 나타나서 가해자니 뭐니 경찰 부르라고 삿대질에 직원들 소집에. 휴.


그 사람은 경찰 부른다고 하면 내가 질질 짜면서 한번만 봐달라고 애원하는 꼴을 보고싶었던 걸까.

아니면 '코스트코사무실'이라는 권위적으로 보이는 공간에 가자고 하면 젊은 여자들이 무서워서 떨 줄 알았나.

경찰도 원하심 부르라 동의하고 사무실도 가자해서 갔는데 아무 것도 응하지 않은 걸 보면. 흠.


기분이 너무 구려져서 한동안 그 코스트코는 안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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