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잃은 기분
회사 동료가 친구가 되기는 힘듭니다. 성별도, 나이도, 팀도 다르면 더더욱 그렇죠. 그럼에도 그와는 친구라고 할만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내가 회사를 옮기고 나서도, 그 친구와 매일 같이 안부를 주고 받았으니 기꺼이 친구라고 할 수 있겠죠.
그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받은건 오늘이었습니다. 이틀 전만해도 연락했던 친구가 죽었다니까 도무지 믿어지지 않고 뭔가 잘못된 거 같아서 그 친구의 풀네임을 말하며 확인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고? 내가 아는 그 ㅇㅇ?'
왜 이렇게 불현듯 찾아오는 죽음은 그렇게 부질없는 약속들을 동반할까요. 나는 그 친구에게 밥 살 것이 있습니다. 회사 근처에 놀러오면 김치찌개를 사주기로 했었어요. 끝내 그 약속은 지키지 못했네요. 습관처럼 늘 퇴사하고 싶다, 퇴근하고 싶다라고 서로 경쟁하듯 말했습니다. 퇴사하면 산티아고 순례길에 김치찌개집을 차리고 싶다는 꿈을 가진 친구였어요. 한국에서라도 좋으니 빨리 창업하자고 했었죠. 정말 장사해서 성공할만한지 김치찌개를 맛보여준다고 했었는데, 이제 그 친구의 김치찌개를 맛볼 날은 영영 오지 않겠네요. 가장 최근에는 그 친구가 국수가 먹고 싶다며 같이 국수를 먹었을 때도 내가 내겠다는 걸 마다하고 그 친구가 계산을 했어요. 그게 마지막이 되었네요. 어쩌자고 나한테 밥만 잔뜩 사놓고 내가 사줄 기회는 주지 않고 가버렸는지.
그 친구와는 사는 곳이 멀지 않아서, 동네 근처에 유명한 칼국수집에 한 번 같이 가자고 했었는데, 나는 어제 그곳에 처음 가서 그 친구에게 연락했었어요. "홍은칼국수 드디어 왔다" 답이 없는 게 조금 이상했지만 그저 일이 바쁜가보다 라고 생각했었어요. 그게 그 친구에게 보낸 마지막 카톡, 그 친구가 읽지 못한 내 첫 카톡이 되어버렸습니다.
최근에는 아무에게도 말 못할 내 고민을 들어준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남사스러워서 어디 얘기하기도 힘들었는데 그 친구는 전부 들어주고 같이 고민해줬어요. 내가 돈을 많이 벌면 나의 재무설계사가 되겠다고 농담처럼 말하더니만, 며칠 전에는 차를 구입할지 말지에 대해서도 상담을 해줬었죠. 그러고 보면 난 그 친구에게 받기만 했던거 같아요. 이제와서 돌이켜보니 더더욱 그렇네요. 정말 난 그 친구에게 해준게 없어요.
그러고 보면 정말 자기 욕심이 없는 친구였어요. 우리 월급은 정말 빠듯해서, 혼자 먹고 살기도 힘든데 그걸 아끼고 아껴서 어머님 모시고 해외여행 갈 떄 정말 대단하다고 했어요. 명절마자 부모님 용돈 챙겨드리는 모습도 그랬죠.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정말 돈 쓸 줄도, 욕심부릴 줄도 모르던 친구였어요.
장례식장에서 그 친구의 부모님을 뵈었을 때, 당신 자식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고 나에게 좋은 친구였는지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어머님 얼굴을 보니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사실 그런 말이 어머님에게 위로가 될런지도 모르겠어요. 언어란 이럴 때 왜 이리 무력할까요.
사실 지금도 실감이 잘 안 나요. 지금도 카톡하면 답장이 올 것 같고요. 사무실에 가면 웃으며 반겨줄 것 같은데 이제 영영 끝이라니 현실감이 없어요. 이상하기만 하네요. 혼자 사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고 내가 지인을 걱정하며 말했더니, "3일에 한 번씩 연락하자. 3일간 연락 없으면 서로 신고해주자"라고 내게 말했었어요. "우린 매일하잖아"라고 웃어넘겼는데 이게 정말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친구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양심적이고 정직한 사람이었어요. 정말 좋은 사람이었는데, 그 친구가 그렇게 혼자 갔다는 사실이 속상하고, 그 친구의 마지막 순간에, 매일 같이 연락하던 나는 무엇이었나 싶어요. 매일 같이 떠들어댔던 그 얘기들은 다 무엇이었나 싶어요. 너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