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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곰 Jan 02. 2021

세 번 돌아온 멍멍이

유기견이 우리집 복순이가 되기까지

7월이었다. 집 근처에 삐쩍 마른 백구 한마리가 서성이고 있었다. 처음 보는 개였다. 목줄은 하고 있었지만, 행색이 영락없는 집 잃은 개길래, 엄마에게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며칠째 보이고 있는 개인데 삐쩍 말라 딱해서 몇 번인가 밥을 챙겨주었더니 저렇게 우리집 근처에 있는 거라 했다. 처음에 왔을 때는 몰골이 더 말이 아니었다고.

복순이를 처음 만났던 순간. 불러도 가까이 오지 않았다.

경계심 때문에 더 가까이 오지는 않는다고 했다. 역시나, 내가 부르면 슬그머니 일어나 멀리 자리를 피했다.

밥 먹으러만 오고, 경계심을 풀지 않는다

그로부터 3주 뒤, 다시 부모님 집에 들르러 청평에 갔는데, 그 녀석이 원래 키우던 똘이와 함께 우리집에 묶여있는게 아닌가? 엄마 말에 의하면, 결국 키우기로 하긴 했는데, 개 두 마리 키우는 것이 부담스러워 다른 곳에 분양 보내려고 한번은 화물차에 실어서 얘를 보냈단다. 그런데 이 녀석이 목걸이를 어떻게 풀어헤치고 차에서 뛰어내려 우리집으로 돌아왔단다(!). 나는 감탄하며,  이정도 인연이면 얘가 엄마를 택한거니 키우는게 좋겠다고 했다.

개가 두 마리가 되었다! 똘이(왼쪽)와 복순이

똘이는 사료를 줘도 그렇게 큰 관심이 없는데, 얘는 굶어서 그런지 식탐이 대단하다고 했다. 똘이 사료까지 탐내고, 어쩌다 까치 같은 새들이 자기 밥그릇에 날아들면 난리를 치며 쫓아낸다고. (똘이는 새가 자기 사료를 빼앗아 먹어도 멀뚱멀뚱이다)

먹는 데 전념중인 복순씨

그러고나서,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던 장마의 시간이 지나던 어느 날이었다. 엄마랑 전화통화를 했는데, 엄마가 말하길, 비가 끝없이 퍼붓는 바람에 개들이 있는 곳도 습하고 질척거려서 너무 딱하고 보기가 안됐더란다. 그러다가 동네 어디에 마실을 갈 때 이 녀석을 데리고 갔다가, 마른 볕이 잘 드는 마루 옆에 묶어놨더니 편안하게 푹 낮잠을 자더란다. 엄마는 그 참에 녀석을 떼어놓고 왔다. 지내기 더 좋은 곳에서 지내라고. 그런데, 그렇게 식탐을 밝히던 이 녀석이 그날부터 3일을 내리 아무것도 안 먹고 굶더란다. 결국 안타깝게 여긴 그 집에서 녀석을 풀어주었고, 녀석은 두번째로 우리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나는 감탄하는 한편, 그정도면 정말 우리집에서 길러야 한다고, 이제 누구 주지 말라고 엄마에게 당부했다. 나도 이젠 녀석이 너무나 좋아졌다. 나는 녀석에게 그럴듯한 근사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두번이나 우리집으로 다시 돌아온 그 인연의 의미를 담을만한. 내가 고민만 하는 사이에 엄마가 이미 이름을 지어버렸다. 복을 가지고 우리집에 들어왔다고 “복순이”라고 했다.

산책하면서 도깨비풀을 잔뜩 묻히고 와서 엄마한테 혼나고 있는 복순
엄마는 댕댕이에게 츤데레..

시골에서 바깥에 개를 키워오다 보니, 그 전에는 한번도 기본적인 예방접종조차 맞혀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은설이가 탈장이 와서 병원에 데려갔을 때, 은설이가 심장사상충에 걸렸지만 나이가 많아서 수술하기엔 위험하고 손 쓸 수 있는게 없다고 했을 때 너무 속상하고 안타까워서 앞으로는 반려견에게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시골이라 집 근처에 믿을만한 동물병원이 멀다는 이유로, 똘이는 도무지 얌전히 있지 않아 감당이 안 될 것 같다는 이유로 똘이조차 병원에 데려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왕 키우게 된 복순이에게는 꼭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주고 싶었다.

더군다나 녀석이 유기견이었던지라 병원에 데려가서 나이도 물어보고, 기본적인 건강 검사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젠 나를 좋아해주기 시작한 복순

10월 말, 집에 다니러 갔는데 복순이가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예감이 들어 엄마에게 물어봤더니, 복순이를 다른 곳으로 또(!) 보내버렸다고 했다. 왜 보냈냐고 내가 따지며 묻자, 복순이가 새가 날아들 때마다 움직여서 먼지가 심하게 나서 아빠한테 복순이를 다른 위치에 다시 묶어 매라고 했는데 아빠가 그럴거면 그냥 누구 줘버리자고 했더란다. 엄마도 그때까지 개 두 마리를 키우는 것이 부담이었는지, 선뜻 개를 키울 수 있다는 지인의 지인에게 복순이를 보내버린 것이었다. 이번엔 무려 포천이었다.


갑작스런 이별이 나는 너무 서러웠다. 복순이는 두 번이나 다시 우리집으로 돌아온 아이가 아니던가. 그리고 그 전에도 한번 버림받았던 아이가 아닌가. 그런 애를 또 다른데로 보내버렸다고? 내 부모가 이렇게도 매정한 사람들이었나 싶어서 화가 났다. 그리고, 나는 복순이를 이미 우리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나와 상의도 없이 복순이를 보내버렸다는 사실에 또 화가 났다. 그렇게 중요한 결정을 하는데 나한테 아무말도 안 했다고? 가족이 도대체 뭔데?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면서 나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엄마도 적잖게 놀랬을 것이다. 장성한 아들이 개를 보냈다는 이유로 눈물을 뚝뚝 흘렸으니까. 결국 그날 나는 심하게 체했고, 엄마에게 섭섭하고 속상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이름도 “복순이”라고 지었으면서 어떻게 녀석을 또 버릴 수 있냐고, 복을 제발로 차버린 셈이다, 엄마아빠가 그렇게 매정한 사람인줄 몰랐다, 며 엄마에게 원망을 쏟아냈다. 엄마도, 보내고 나니까 후회되고 복순이의 빈자리가 은설이 죽었을 때보다도 더 크게 느껴진다고 했지만, 그러면서도 새로 보낸 곳의 환경이 더 좋아서, 넓은 공간에서 복순이가 묶여 있지 않고 뛰어놀 수 있는 곳이니 그 애를 위해서라도 그게 더 좋은 일이라며 나를 달래려 했다.

확실히, 나 또한 개를 풀어놓지도 못하고 갑갑하게 묶어놓고 키우는 것에 늘 안쓰러움을 갖고 있었기에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한편으로, 누군가에게 잘 키워달라고 보낸 진돗개 모녀를 잡아먹었다는 몇 달 전 뉴스가 떠올랐다. 내 눈으로 복순이가 잘 있는 걸 직접 보기 전까진 안심할 수 없었다. 최소한, 작별 인사라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조건을 걸었다. ‘포천에 복순이를 보러 가겠다. 그곳이 정말 그 말대로 개가 지내기에 우리집보다 더 좋은 환경이면 깔끔하게 마음을 접겠다. 그러나 복순이가 잘 못 지내는 것처럼 보이면 데려오겠다. 집에서 키우기 어렵다면 내가 서울 집에서라도 키우겠다.’고. 그러니 엄마와 청주를 갔다가, 돌아오면서 포천에 들러 복순이를 볼테니, 포천의 주소와 연락처를 받아오라고 신신당부를 해두었다.


그런데, 청주를 가며 엄마에게 물어보니, 주소와 연락처를 주기로 한 아저씨가 연락이 안된다는 것이다. 분명 보고 싶으면 언제든 가서 보라고 문제 없다고 말했었는데, 엄마가 전화를 해도 전화를 안 받아서, 엄마도 계속 연락해서 채근하기가 그렇다고 했다. 나는 뭔가 석연치 않고, 납득할 수 없었지만, 엄마를 계속해서 닥달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일단은 별 수 없이 알았다고 했다. 그때까지 나는 녀석이 계속 눈에 밟혀서, 휴대폰으로 녀석의 사진을 보면서, 복순이가 지금 어떤 마음일지, 이번에도 우리한테 버림받았다고 생각할지, 나를 어떻게 기억을 할지, 잘 지내고 있는지 어둠 속에서 헤매듯 막연히 걱정하고 그리워할 따름이었다.

며칠 뒤 주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사실은 “너에게 말하지 못한 것이 있다”고 했다. 나는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사실은, 엄마와 청주에 가던 날, 내가 휴게소에서 화장실에 간 사이 그 아저씨에게서 전화가 왔었더랬다. 그런데, 복순이가 포천에서 또 줄을 풀고 어딘가로 나가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개는 잘 지내고 있다고 엄마에게 큰소리 쳐놨는데, 정작 사라져버려서 그 사람도 말도 못하고 끙끙거리고 있던 것이다. 그쪽에서도 개를 찾으려고 동네에 방송을 하고 난리가 났었더란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서 또 삐썩 마른 모습으로 그곳에 다시 돌아왔더라는 것이다. 엄마가 그 아저씨에게 전화를 받았을 때는 아직 복순이가 돌아오기 전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포천으로 복순이를 보러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엄마는, 나에게 그 사실을 숨기느라 그 날부터 잠도 못자고 밥도 체하고 너무 힘들었다고 그제야 실토했다. 나는 그때까지, 복순이가 로드킬을 당했다든지, 누군가에게 잡아먹혔다든지, 영영 나가서 지금까지 찾지 못했다는 얘기로 끝이 날까봐 정말 간이 콩알만해진 기분으로 그 얘기를 들어야했다. 복순이가 결국은 돌아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믿지도 않는 신에게 감사 인사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거 보라고, 엄마, 걔는 우리가 키워야 돼. 이러고 나서도 그 애를 버리면 우리가 벌받아 엄마. 나는 그렇게 말하고 최대한 빨리 복순이를 데려오자 했다.

그렇게, 세번이나 다른 집에 보냈던 복순이는 결국 우리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병원에 데려갔더니 복순이의 나이는 두세살 정도 되는 것 같다 했다. 검사를 하고 주사를 맞는 내내 너무나 순하고 착해서, 진도견이 이렇게 얌전하면 천사라고 의사가 말했다.

평소에 묶여있으니 갑갑할까봐 (가끔 근처에 사람이 없을 때는 산책하고 오라고 풀어주기도 한다) 와이어를 해주었다. 멈머가 이렇게 나를 반기며 달려올 때의 기분이란 정말..

천사 복순이는 지금 이 순간 병원에 있다. 여러 고민 끝에, 복순이에게 중성화 수술을 해주기로 했다. 자궁축농증 등의 질환으로 뒤늦게 후회한 사람들의 글을 보고 결정하면서도, 이 아이의 생식권을 사람 마음대로 뺏어도 되는 것인지 끝까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복순이처럼 똑똑하고 이쁜 강아지 자손을 보고 싶은 마음 또한 있었지만, 시골에서 키우면서 강아지 아빠를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강아지가 또 여러마리 태어난다면 감당도 안될 뿐더러 또 찜찜한 이별만 겪게 해야할 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병원에서 수술을 기다리며 잔뜩 주눅 들어있는 복순이의 모습을 보고 온 터라 지금 내 마음은 굉장히 초조하고 걱정된다. 복순이가 살아있는 내내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이 사랑스러운 댕댕이에게 다 해주고 싶다. 우리 가족을 선택해준 녀석과의 인연에 감사하며.

처음 차에 타고 처음 병원에 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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