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꿈을 꾸고 있니

나의 작은 공간 in frankfurt am main

by 봄희

『파랑새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다. 동화 파랑새에서 유래된 이 말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미래의 이상적인 행복만을 추구하는 증세로 간단하게 현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현재의 직업에 만족하지 못한 채 몽상만을 꿈꾸며 사회를 겉도는 사람이라고 한다. 대체로 부모의 과잉보호 속에서 자라나 정신적인 성장이 더딘 사람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정신 질환 중의 하나이다.


현대사회는 정말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100년 전과 비교하자면 너무나 많은 직업들이 생겨났고, 또 사라져 갔다. 불과 10년 후에는 또 어떤 직업이 생기고 사라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사람들이 그 변화를 얼마나 빠르게 쫓아가고 대처하는지가 한 사람이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많은 사람들은 간과하고 있다. 시대를 쫓아가야 한다고만 할 뿐, 왜 그렇게 숨 가쁘게 쫓아가야 하는 건지 알지 못한다. 그저 다른 사람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앞만 바라보며 열심히 달려 나갈 뿐이다. 그것이 현대사회의 변화를 주도하지 못하는 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그 사회에 적응해 나가는 최선의 방법이다.


어쩌면 그 수많은 직업들 중에서 변화하는 사회 속에 뒤처지지 않으면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나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 ‘나의 일’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 불가능한 일을 우리는 평생을 걸쳐 찾아야만 하는 숙명을 띄고 있다. 짧은 생을 살아가면서 우연한 기회에 본인의 능력을 발현할 수 있는 일을 찾은 사람들은 행운아이다. 물론 그 기회란 것이 쉽게 찾아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그 일을 찾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고, 또한 그 기회가 왔을 때 그저 스쳐 지나치지 않기 위해 단련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를 활용하여 본인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 결과 자신의 일에서 성공이라 할 만한 성과를 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중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른다. 성공이라는 것은 잘하는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의 산물이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일에 성공했다 말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진정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었는지. 잘한다는 것은 어떤 부분이 되었든 내가 그 일을 즐길 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 진정한 성공이라는 의미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어쩌면 그 사람은 자신의 일을 잘못 선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일에서 얻는 즐거움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부러움 섞인 시선과 금전적인 여유가 주는 행복이 전부라면 그것은 진정 불행한 일이다. 나의 일이란 그 과정이 고난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어느 순간 나에게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내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또 누군가는 그럴 것이다. 기회란 것은 평등하지 않아서 내가 아무리 찾으려고 노력해도 나에게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고. 그러면서 일찌감치 포기해버리고 만다. 그저 그동안 배우고 익힌 내용으로 일을 찾고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해 나간다. 그리고는 일대신 다른 곳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고자 한다. 가장 쉽게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행복의 수단은 바로 ‘여행’이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아무리 내 통장의 잔고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해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이 여행이다. 얼마 전 기사에서 경제가 안 좋을 때 다른 무엇보다 가장 나중에 지출을 줄이는 것은 여행 비용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먹는 즐거움보다 여행이 주는 행복감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경제가 안 좋다고 하지만 올해 구정 명절 기간 중 해외여행을 떠나는 출국자 수가 또다시 최고점을 기록했다고도 한다. 여행이라는 것은 현실도피에서 가장 좋은 수단이며, 현실도피는 결국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함으로 인해 생기는 하나의 방안이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며 세상의 견문을 넓히고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로 현대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도피를 위한 피난처가 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나는 어쩌면 ‘파랑새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제껏 ‘사회 부적응자’라는 말을 들어본 일은 없다. 어디서든 무엇을 하든 내가 맡은 일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꽤나 열심히 임했었고, 일을 잘 한다는 말도 여러 차례 듣기도 하였다. 그러나, 흔히 질환이라고 말할 정도의 ‘병적인 증세’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라도, 몇몇 사람들은 업종까지 바꾸며 직장을 몇 차례 옮겨 다니는 나를 보며 “철 좀 들어라.”라는 말을 하곤 하였다.


20대에 막 접어들었을 무렵, 나에게는 목표가 있었다.
내 삶을 책임질 나의 직업을 찾는 것.


10대를 지나고 20대에 접어들었을 무렵,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나의 직업이었다.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다가온 나의 진로 선택에 나는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물론 초등학생 시절부터 부모님이나 학교에서 장래희망에 대해 물어보거나 써내라고 한 것은 여러 차례였지만,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부모님께서 말씀하신 직업이나 옆의 친구 따라 써내는 것이 나의 장래희망이었다. 그때의 나는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면 잘할 수 있고 나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다짐하였다. 20대를 지내면서 단 한 가지 목표만은 이루어 내겠다고. 그것은 나의 일을 찾는 것이었다. 무엇인가를 이루어 내겠다는 큰 포부도 없었고, 많은 돈을 벌어들이겠다는 욕심도 갖지 않았다. 다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직업들 중에 내가 잘하고 나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고 나는 그것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단순히 직업을 찾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직업들이 있었고 수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각각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경험과 능력이 요구되었고 무엇보다 나는 나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결국 많은 일들을 직접 몸으로 부딪혀 겪어보면서 끊임없이 나를 돌아봐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그런 나의 노력이 통했었는지 꽤 마음에 드는 멋진 직업을 찾았고 그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는 행운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몇 해를 보내고 어느 순간 눈을 떠보니 나는 더 이상 그곳에 없었다. 이전의 내가 알던 나는 사라지고 새로운 모습의 내가 그곳에 서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꽤 슬픈 일이었다. 그래도 나에게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꿈을 잃어버리지 않고 사는 법. 꿈이 현실이 되게 만드는 법.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때때로 일기를 끄적거리고 다른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일은 즐거운 일이었다. 나의 하루를 돌아보는 것이나 누군가를 생각하며 그 사람에게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내가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와 다른 누군가의 모습과 추억을 생각하며 그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나의 이야기가 있었다. 글을 쓰는 순간은 나를 더욱 순수하게 만들고 내면의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어느 날, 의도치 않게 찾아온 여유로운 시간이 다시금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듯이 슬픔은 어느 사이엔가 잊혀졌고 앞으로의 행복을 위한 준비를 해야만 하였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오래전, 꿈을 꾸던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 나는 자신감이 부족하였고 부끄러움이 많은 소녀였다. 시간은 흘러 더 이상 시간은 나의 편이 아니며 나는 더 이상 그 시절의 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하지 않으면 결국 남는 것은 후회밖에 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지금의 이 여유로운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었던 일을 위해 조금 욕심을 내보기로 하였다. 헛된 몽상에 일 지라도 나의 마음의 소리를 쫓아 나에게 익숙한 모든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 몸을 내던졌다. 이는 내가 나에게 주는 하나의 기회이기도 하였다.


나는 다시 꿈을 좇고 있다. 비록 잡지 못할 파랑새를 찾아다니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면 분명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일 것이라고 믿는다.
동화 『파랑새』의 주인공 치르치르가 그토록 찾고자 했던 파랑새는 결국 자신의 집에 있었다. 행복이란 결국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이다. 내가 찾는 파랑새는 이미 내 안에 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 파랑새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결국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누구나 자신의 마음속을 여행해야만 한다.


나는 오늘도 여행을 한다. 나의 마음속 어딘가에 있을 파랑새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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