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맞이하는 행복

나의 작은 공간 in Frankfurt am main

by 봄희


최근 들어 날씨가 따뜻해졌다. 이달 초부터 여기저기서 꽃봉오리가 터지더니, 지난주부터는 완연한 봄을 알리듯이 곳곳에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그러더니 이제는 나를 깜짝 놀라게 한 작은 사건이 터졌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토마토소스에 곰팡이가 피어난 것이다. 어느 때처럼 주방에서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뜩 찬장에 올려놓은 토마토소스에 희멀건 무엇인가 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뚜껑을 열어 들여다보니 하얗게 곰팡이가 피어있는 것이다. 긴급하게 다른 소스들에 대한 점검도 시작하였다. 그 옆에 있던 볼로네제 소스야 당연히 말할 것도 없고, 고춧가루는 그야말로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최고의 번식력을 자랑하며 퍼져있었다. 이 집에 들어온지 한 달이 되어가는데 그동안 찬장에 올려놓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던 것들이었다. 고춧가루를 사용하지를 않고 있었기에 어떻게 상황이 흘러가는지는 몰랐다곤 하지만, 토마토소스는 2~3일에 한 번씩은 사용하던 것들이었기에 갑자기 생겨난 곰팡이의 놀라운 번식력에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그나마 아직 곰팡이의 번식에서 살아남은 것들은 냉장고로 옮겨놓았다. 덕분에 텅텅 비어 보이던 냉장고가 어느 정도 채워진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아까운 소스를 버리면서 얼마 전 겉옷이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의 따뜻했던 날씨를 떠올렸다. 아직은 추위를 잘 타는 나에게는 겨울과 봄이 밀땅을 하는 듯 오락가락한 날씨의 연속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겨울은 지나가고 봄이 온 것이다. 그래, 봄이 온 것이다.


어린 시절, 초등학생 즈음으로 기억하고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꽃샘추위가 물러날 무렵 창가의 문을 열 수 있을 정도의 따뜻한 기온이 되면 교실마다 창문을 열어 놓고 수업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면 열린 창문으로 따뜻한 봄바람이 교실 안으로 살짝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하며 학생들의 마음과 정신을 어지럽히곤 하였다. 그 바람에 어떤 아이들은 슬슬 눈이 감겨 꾸벅꾸벅 졸았고, 어떤 아이들은 봄의 향기에 마음을 놓고 딴생각에 젖어들었다. 나는 후자에 속하는 편이었다. 나는 그 바람이 좋았다

그중에서도 봄의 흙내음을 가득 담은 봄바람을 좋아했다. 이따금씩 흙내음을 가득 안고 봄바람이 불어오는 날이면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 선생님의 말씀은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봄바람이 내 귓가에 대고 “봄이 왔어, 내가 왔어”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아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는 그 내음을 내 숨 가장 깊은 곳까지 전해질 수 있도록 깊은 숨을 가득 들이마셨다. 그렇게 한참을 창 밖 운동장 너머의 봄의 풍경을 감상하며 내 마음을 바람에 실어 그 풍경 위를 둥둥 떠다니게 하였다. 매년 그렇게 흙내음을 맡을 수 있는 그 잠깐의 시기를 기다렸고, 그들과 마주할 때면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봄이 왔음을 함께 축하해 주곤 하였다. 나에게 그것은 마치 ‘봄의 알림’과도 같았다.


그렇게 나는 20대를 맞이하고도 얼마간의 시간까지 꽤나 오랫동안 봄바람에 실린 흙내음으로 봄을 맞이 하였다. 하지만 나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점차 어른의 길목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렇게 나를 행복하고 즐겁게 해주던 모든 것들이 조금씩 사라져 갈 때 즈음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을 하였다. ‘어느 순간 봄의 흙내음을 맡을 수 없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나의 감각을 의식적으로 열어두어서라도 나의 이 설렘을 잃지 말아야겠다. 사소한 일이지만 나에게는 소소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하나의 사건을 잃어버리는 것은 나에게 너무 슬픈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다짐이 무색하게 나는 지금 그 어디에서도 그 내음을 맡을 수가 없다. 누군가에게 물어보았다. 예전에는 봄의 흙내음을 맡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 흙내음을 맡을 수 없다고. 그 사람은 예전보다 더 많은 건물과 도로가 깔렸기 때문이라 대답해주었다. 정말 그런 것일까? 내 생각에는 왠지 지금도 어디선가 아스팔트 사이 좁은 돌 틈 사이로 살며시 빠져나와 흙내음은 바람을 타고 어디선가 계속 퍼지고 있을 것만 같다. 다만 이제 나의 감각은 그것을 느끼기에 너무 무뎌지고 둔해져서 그 내음을 맡을 수 없게 된 탓인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계절이 변하는 것을 잊게 되었다. 어느 순간 눈떠보면 겨울이었고, 어느 순간 여름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봄과 가을은 사라졌다고, 지구의 온난화와 환경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곤 하였다. 하루에 한 번은 하늘을 바라보며 웃어보자던 나와의 약속도 어느새 잊혔다. 봄을 맞이하며 예쁘게 단장하는 색색의 꽃봉오리의 수줍은 미소도 따뜻한 햇살 사이로 바람에 흩날리는 5월의 연푸른 은행나뭇잎도 봄이 왔음을 알리는 촉촉한 단비도 더 이상 나에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나에게 봄은 잊혀 갔다. 바람의 이야기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어른의 길목에 들어 서고 있었다. 학창 시절, 나는 흔히 어른들이 말하는 그런 어른은 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였다. 사소한 것에도 즐겁고 행복해하던 나를 보고 어른들은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는 나이라며 그들의 나이를 탓하곤 하였다. 아무것도 들을 수도 없고 만지려 하지 않고 보려고 하지 않는 무엇이 행복이고 소중한 것인지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어른은 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은 나를 조금씩 변화시켰다. 세월의 풍파가 그들을 변화시켰듯이. 어느새 나 또한 그들의 길을 뒤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소소한 나의 행복을 포기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그 행복을 다시 찾았을 때, 그들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나의 모든 감각들은 그들과 소통하기에는 이미 너무 녹슬어 버려있었다.

기계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몸도 마음도 계속해서 가꿔주고 사용하지 않으면 굳어버리고 녹이 슬어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는 관심을 갖고 손질하고 지속적인 반복을 통해 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더라도 한 번 사라진 나의 감각들이 예전과 똑같은 능력을 발휘할 것이란 보장도 없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다 보면 그 마음마저 잃어버려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어렵게 되듯이.


내 부엌에 자리 잡은 곰팡이가 나에게 와서 봄이 왔음을 알려주었다. 이제 기지개를 켜고 새로운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어서 밖으로 나가보라고 알려준다. 봄이 왔다고. 새삼 곰팡이에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다. 비록 봄바람의 흙내음은 아니더라도 아직까지는 부엌의 곰팡이와 같이 나에게 봄을 알려주고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봄의 알림이들이 있기에 나의 봄맞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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