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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미화 Feb 27. 2024

엄마, 하늘 좀 봐

 행복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현듯 온다.

폭폭 발이 빠지는 모래사장을 두 아이가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간다.

넘어가는 해가 만든 아이들의 긴 그림자를 따라 걸으며 그 모습을 지켜본다.

큰 아이는 제 보폭보다 작은 발걸음의 속도에 맞춰 걷는다.

조금 컸다고 그런지 이제는 제법 보폭의 간격이 비슷해 보인다.


포슬포슬한 모래사장 너머로

눈부신 해를 머금은 반짝이는 바다가 보인다.


두 손이 떨어지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내달린다.

그 보폭 또한 비슷해졌다.



'조심히 가!'라는 말을 삼킨다.


성큼성큼 뛰어가면 남긴 모래 위 작은 발자국들을

천천히 다시 밟으며

멀찌감치 떨어져 따라간다.


그 모든 순간이 너무나 좋아서

해가 조금만 더 바다 위에 머물러 있길 바랐다.


해가 넘어가는 순간을 넋 놓고 바라본다.

빛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아이들도 그 순간이 아쉬웠는지

돌아가는 길에서 다시 해가 넘어간 바다를 바라보다

작은 탄성을 내뱉는다.


"엄마! 하늘 좀 봐!"


물감을 어떻게 섞어야 저런 황홀한 색감이 나올까 싶어,

한동안 모래언덕에 서서

우리는 한참 하늘을 바라본다.


"엄마, 오늘 여기 오길 잘했다. 다음엔 아빠랑 같이 또 오자."


순간 아이들의 말과 표정, 몸짓이

황홀한 노을 하늘과 버무려져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오길 잘했다 정말.'


언제나 예상치 못한 순간에 행복은 불현듯 온다.

시간이 지나 여기, 이곳에 두 아이와 다시 오게 된다면

오늘이 무척이나 그리울 것이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 한 편을 가져와본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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