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오래 생각하지 못하는 시대

by 노미화

아이들이 글 앞에서 멈추는 이유를 의지나 태도의 문제로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 자체가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되도록, 아니, 오래 생각하지 못하도록 바뀌어왔기 때문입니다. 지금 아이들은 글보다 영상에 훨씬 익숙합니다. 책 보다 화면을 먼저 만났고, 문장보다 이미지와 소리를 먼저 받아들였습니다. 유튜브, 숏폼 영상, 게임 화면 속 세계는 생각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해를 기다려주지도 않습니다.

몇 초 안에 웃음이 나오고, 몇 초 안에 다음 장면이 넘어갑니다. 지루해질 틈이 없고, 맥락을 놓쳐도 다시 돌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자극은 빠르고 강하며, 도파민은 즉각적으로 분출됩니다. 반면 글은 다릅니다. 글은 속도가 느립니다. 앞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수 없고, 인과관계를 따라가야 하며, 머릿속에서 장면을 상상해야 합니다. 이해를 위해 기다려야 하고, 생각을 멈추지 않고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이 두 세계는 같은 출발선에 있지 않습니다. 영상은 이미 익숙한 언어이고, 글은 점점 낯선 언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환경이 아이의 ‘집중력’만 바꿔놓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아이들은 점점 오래 머무는 일을 힘들어합니다. 하나의 질문을 붙잡고 곱씹는 시간, 답이 바로 나오지 않는 상태를 견디는 시간을 불편해합니다. 생각이 깊어지기 전에 다음 자극이 먼저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생각을 붙잡는 시간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생각이 안 나요.”

“이거 언제 끝나요?”


사실 이 말들은 아이의 게으름을 드러내는 말이 아닙니다. 기다려본 적이 없는 사고방식의 자연스러운 결과에 가깝습니다. 학교과 학원 역시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수업은 촘촘해졌고, 진도는 빨라졌으며, 아이에게 주어지는 ‘멍하니 생각해 볼 시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죠. 아이들은 늘 바쁩니다. 해야 할 게 많아서라기보다, 멈춰 있을 시간이 없어서 바쁩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답을 써야 하고, 제한된 시간 안에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문제는 점점 길어지는데, 아이들에게 허락되는 시간은 늘 빠듯해 보입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노미화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글로 일상의 질문들을 풀고 있습니다.

337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13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4화3. 논술이 아닌 글쓰기를 말하고 싶은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