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미화 Mar 22. 2024

공존을 위한 방법

존경은 성취하는 것, 자기 객관화의 중요성


"요즘애들은...."


 그렇다. 나도 꼰대인가 보다. 포괄적으로 X세대, MZ세대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실제로는 딱 그 중간에 끼어 이도저도 아닌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80년대생들. 꼰대라 불리기에는 조금 억울하다.


꼰대의 특징

자신이 늘 옳다고 주장한다.

상대방은 늘 틀리다고 말한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들으면 불편해한다.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자신의 경험을 맹신한다.

나이, 서열을 중요시 여긴다.



"그 정도가 힘들어요? 저는 그보다 더 힘든 일도 많았어요.
제 이야기해드릴까요?"

 "이런 식으로 해서 앞으로 직장생활 잘하겠어요?
지금까지 뭘 한 거예요? 평가 책임 못 집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일해본 적 없거든요."
- <젊은 꼰대가 온다> 중에서

 직장이라는 단어를 다른 환경으로 교체하면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친구에게, 남편에게, 혹은 내 자식에게 저런 식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 본다.



'엄마도 잘 안될 때가 많아'라는 엄마의 인정.


'엄마도 못하는데 어린 내가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 대신

'엄마도 못하는 게 있구나. 그래서 노력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아이의 마음.


이건 중요하다.


 인생의 큰 맥락에서 40대의 어른이나 10대의 아이나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도 완벽하지 않다. 하기 싫은 일은 귀찮아 미루고 재밌고 즐거운 일은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고서라도 하려고 한다. 아이라고 다르겠는가. 자기 절제, 통제가 어른보다 힘들다. 미숙한 아이가 성장하는데 더 힘들고 어려운 건 인정하고 알아줘야 한다. 그래야 이런 말을 겨우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못해도 괜찮아. 노력해서 다음에 잘하면 되지. 엄마도 그렇게 하잖아. 엄마, 맞지?"



 세대차이를 벌어지게 하는 건 공감과 이해의 부족이다. 사람 사는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잘하고 인정받고 싶고 성장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세대불문하고 같을 테니 말이다. 적고 보니 정말로 꼰대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공감의 범위로 해석되는 것 같다.



조직이라는 한 지붕 아래 베이비부머 세대, X세대, 전기 밀레니얼 세대, 후기 밀레니얼 세대, Z세대, 이렇게 5세대가 모여있다. 어느 한 세대만의 이해와 배려만으로는 조직 생활이 쉽지 않다.
-<젊은 꼰대가 온다>중에서



 각 세대가 가진 특징들과 그런 성향들을 가지게 된 시대적, 사회적 배경들을 알게 되니 각 세대들의 사고방식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너는 MZ세대고 나는 Y세대다'라고 딱딱 구분 지어 세대갈등을 일으키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세대차이'는 태어난 시대의 사회구조와 그 시대를 살면서 해온 경험이 달라서 생기는 것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과 접근하는 방식의 '다름'에서 오는 것이지, '틀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세상에 느그 신랑만큼 가족을 위하고 가정적인 남자가 어딨노?"


"엄마, 우리 시대에는 널렸어."


 정말로, 엄마시대에 가정적인 남자란 모난 돌이었을까. 사회의 분위기, 시선 또한 가정적인 남자보다는 권위도 못 세우는 남자, 잡혀사는 남자로 비친 게 더 많았으니.


 알파세대인 우리 아이들은 또 어떠한 모습의 가정일지 상상이 안된다.

이미 장가가서 자녀계획까지 이야기하는 우리 아들 둘. 예전에, 아기를 가지고 낳는 건 힘들지만 멋진 일이라는 말에 둘째가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내가 아기를 낳으면 돼!"


5살이 뭘 알고 말하나.ㅎㅎ 참고로 둘째는 남자 아이다.

기발하고 멋진 생각이긴 한데, 그건 아마 불가능할 거 같다.

(일단 장가부터 가면 이야기하자)



현재 알파세대를 키우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가 한마디 한다.


"MZ세대들아, 알파세대가 온다. 긴장해라."



정답은 '공존'이다.

구분 지어 밀어내는 자, 선 긋는 자, 선을 넘는 자.

선 넘는 자가 확실한 꼰대가 맞다지만, 공존을 이야기하려면 세대구분보다 조금 다른 방식의 접근과 이해가 우선이지 않을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견디는 말 혹은 인생의 주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