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피가 마르는 고통’이 문학에서 사용하는 수사법이 아닌, 실제 우리 몸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임을 몸소 체험했다. 어려운 일을 겪으며 몸이 쇠해졌길래 한의원에 갔더니 피가 말랐다는 것이다. 마음과 몸은 연결되어 있다더니, 시린 마음 때문인지 온수매트를 켜고 두꺼운 이불을 덮고 누워있어도 뼈가 시렸다.3월 중순이 지나도록 추위가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피가 마르고 뼈가 녹아버린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해 오리털로 빵빵하게 채워진 점퍼를 입고 다녔다. 혹시라도 봄이 내가 목 빼고 기다리는 게 부담스러워 찾아오지 않는 게 아닐까 싶어 얇은 점퍼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3월 21일. 여전히 두꺼운 점퍼를 입고 바들바들 떨던 내 머리 위로 햇살이 비추는데, 따뜻했다. 드디어 봄이 찾아왔다. 내게도.
봄의 방문은 고대했던 것에 비해 싱거웠다. 우리가 언제 헤어졌었나 싶게 내 삶 구석구석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앉았다. 봄이 와서 미칠 듯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밥을 먹으면 소화가 되고, 잠잘 때 악몽을 꾸더라도 이건 단지꿈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다시 잠들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나는 일상을 되찾았다.
3월은 직장에서도 가장 힘든 시기이다. 올해는 갑작스러운 감사와 늦어진 담당 사업 계획 등으로 에너지 소모가 더 컸다. 게다가 오랫동안 숨죽여 기다렸던 봄까지 찾아왔으니, 주말이 되자 그동안의 긴장감이 우르르 무너져 내리며 끙끙 앓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봄이 와서.
반투명 창문을 통과하여 내 뺨을 어루만지는 햇살에 얼굴을 맡겼다. 한참을 침대 위에서 뒹굴뒹굴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스스한 모습으로 거실로 나가자, 남편이 소파 한쪽에 앉아있었다. 손발과 머리까지 찌릿찌릿하고 기운도 없어서 다시 눕고 싶어졌다. 남편의 다리에 머리를 베고 누웠다. 눈물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좀 토닥여 줘요.
소리 내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지난 몇 개월간 나의 마음고생을 충분히 알고도 남을 테니, 이심전심 측은지심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남편이 따뜻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면 서럽고 서글픈 마음이 싹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남편의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그가 손으로 내 머리를 감싸 잡았다. 부드러운 그의 손길에 눈물이 더욱 굵어졌다.
당신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내게 위안이 되는 사람이에요.
이런 생각으로 감동에 젖어 있는데, 그가 조심스럽게 내 머리를 들더니 자기 다리를 빼내고는 스프링 달린 사람처럼 소파 밖으로 튕겨 나갔다. 그 순간, 내 가슴에 시커먼 구름이 뒤덮이고 폭풍우가 휘몰아쳤다.
어쩌자고 나는 위로라는 것을 모르는 인간과 결혼이라는 것을 했을까.
서러움에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때, 남편이 멋쩍게 다가와 고개를 숙여 내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럼 그렇지. 이 사람이 쑥스러움 때문에 표현을 잘 못해서 그렇지 정이라는 게 없진 않아. 그가 말했다.
자기 머리 밑에 내 핸드폰 없어?
그러고는 꺽 하고 트림하고는 사라졌다.
사람은 원래 고독한 존재이다. 누구에게 무슨 위로를 바랄까. 내가 어리석었다. 다시금 침대로 기어들어가 햇살에 얼굴을 맡겼다. 인생이 고달프고 감정 기복도 큰 나 같은 사람에게는 햇살과 글쓰기만 한 위로가 없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