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Honeyberry

애를 박박 긁어서

by 허니베리

6교시 수업 중,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 체한 듯 답답한 느낌과 함께 호흡곤란이 왔다. 간신히 수업을 마치고 실습실에서 나왔다. 땅에 처박힐 듯 고개를 아래로 향하고 몸을 구부린 채 교무실로 들어가자, 선생님들이 의자를 박차며 일어서며 다가왔다.


“허 선생, 무슨 일이에요?”

“가슴이 아프고, 숨쉬기가 힘들어요.”


곧바로 가까운 심장내과로 향했다. 초음파 결과 다행히 긴급 상황은 아니었만, 추가 검사를 받아야 했다. 불현듯 아이가 떠올라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일이 좀 늦게 끝날 것 같은데, 원이 저녁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원이 할아버지께서 양꼬치 드시고 싶다고 하시는데.... 너 기다렸다가 같이 갈까?”

“오늘은 어려울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는 췌장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으시는 중이다. 음식을 언급하기만 해도 고개를 저으시는 날이 늘어갔다. 이런 아버지께서 오랜만에 드시고 픈 음식을 떠올리신 것이다. 반가움도 잠시, 하필 그게 오늘이라는 사실에 한숨이 나왔다. 서둘러 일정을 살펴보았다. 학기 말이 다가오며 일정이 빡빡하게 채워져 있었다. 이 사이에 양꼬치 집에 모시고 갈 날짜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 또다시 가슴이 조여왔다.


직장과 병원을 오가다 보니 어느새 주말이 되었다. 기진맥진하여 남편에게 부탁했다.

“아버지 내일 2차 항암치료 받으시잖아요. 양꼬치가 드시고 싶다고 하시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어서.... 자기가 모시고 다녀와 줄래요?”

“양꼬치?”

“응. 자기도 바쁘겠지만....”

남편의 눈치를 살폈다.

“양꼬치.... 맛있겠다!”

그가 아이를 데리고 신나게 달려 나갔다. 그의 동글동글한 뒤통수를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외출 후 돌아온 남편의 손에 봉투 두 개가 들려있었다.


“그건 뭐예요?”

“자기 먹으라고 양꼬치 싸 왔어요. 그리고 이건 아버님 허리띠인데 줄여드리려고.”


아버지는 발병 이후로 아기가 아빠 옷을 입은 것처럼 옷 속에 푹 잠기실 정도로 야위셨고, 허리띠도 계속 줄여야 했다. 외출이 힘드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인터넷으로 옷을 구입했는데 사이즈를 가늠하지 못해 여러 차례 교환해야 했다. 환자식, 의약품 마련에 추가된 일종의 업무였다.


아버지를 뵈면, 치워버린 전신거울에 다시금 모습을 비춰보실 수 있도록 멋지게 입혀드리고 싶다가도, 늦은 밤 아버지를 위한 결재를 반복하다 보면 짜증이 섞여 탁해진 졸음이 몰려왔다.


아버지의 2차 항암주사 날, 출근길에 벌거숭이로 서 있는 고목이 눈에 들어왔다. 시커먼 기둥 아래 빨간 낙엽이 흩어져 있었다. 푸른 하늘에 아침 해가 밝게 떴는데도 노을 지는 저녁 같은 스산함이 몰려왔다. 겨울 초입에 선 것은 잊은 채로 어서 나무에 초록빛이 감돌기를 빌었다.


불편한 다리를 끌며 검사, 치료, 수납을 위해 넓은 병원을 이리저리 오가실 부모님을 온종일 머리와 가슴으로 졸졸 따라다녔다.


일을 마친 후 차에 올라타자, 부모님께서 병원에서 나와 택시를 타셨다고 연락을 주셨다. 목적지를 병원에서 집으로 바꾸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재빠르게 된장찌개를 끓이고, 고기를 볶고, 시금치를 무쳤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착하셨어요? 반찬 좀 했는데, 댁으로 가져다드릴까요?”

“지금 너희 집 근처니까 그리 갈게.”


부모님께서 처음 방문하는 손님처럼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맛있는 냄새가 가득하구나!”

두 분의 말씀에 음식 냄새 아래로 묵직한 감정이 채워졌다.


엄마는 마치 새댁이 친정 엄마가 차려준 음식을 맛보듯 ‘음’하고 작은 감탄사를 내뱉으시며 식사하셨다. 아버지께서는 고향집 노모가 차려준 음식을 대하는 아들처럼 국과 반찬을 정성스레 뜨셔서 한입 한입 삼키셨다. 나는 입덧 심한 아내가 맛있게 식사하는 장면을 바라보는 남편처럼 두 분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모시지 않았으면, 노인 두 분이 불 꺼진 집으로 들어가셔서 찬밥을 데워 드셨겠지. 상상만으로도 찬밥의 한기가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마친 후 두 분을 댁까지 배웅해 드렸다. 우리 집에서 3분 거리지만, 멀고 험난한 여정처럼 느껴졌다. 두 분의 걸음걸이를 살피는 내 미간에 주름이 졌는지, 아버지께서 활기찬 걸음을 흉내 내보이셨다. 배가 든든하신 부모님의 뒷모습이 초라해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들어오자, 그대로 눕고 싶어졌다. 오늘도 애쓴 하루였다. 내게 할당된 애-노력, 슬픔, 사랑-을 박박 긁어 사용했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안방으로 들어가자, 안방에 유난히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방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낯설면서도 익숙한 느낌에 하루 종일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천정을 올려보았다. 이젠 얼굴의 형상도 기억 속에서 흐릿해진, 오래전 돌아가신 아빠가 나를 내려다보고 계시는 건 아닐까. 그 기운 속에 아빠의 음성이 담긴 듯했다.


‘엄마를 돌봐주어 고맙구나. 그리고, 새아버지를 향한 사랑이 이곳까지 전해진단다.’


피로와 온기로 온몸이 노글노글해졌다. 벽지의 흐릿한 무늬가 더 번져 보였다. 어서 세수하고 자리에 눕고 싶으면서도, 이렇게 벽에 기댄 채 계속 서 있고 싶기도 했다. 가슴의 뻐근함도 조금은 편해졌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달걀 비린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