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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베리 Jun 13. 2023

무뢰한 M

 나는 변신술 천재이다. 출근 준비를 위해 화장대 앞에 앉으면 거울 속에는 젖은 솜뭉치가 앉아있다. 직장에서 퇴근을 위해 앞치마를 벗으며 거울을 쳐다보면 파김치가 서있다. 물론 근무 시간에도 나는 내 (거의 유일한) 재능인 변신술을 끊임없이 발휘한다. 팔팔 끓어오르는 냄비가 되었다가, 먹구름 비구름이 되었다가, 이곳저곳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개구리가 되었다가, 한때 친구였던 개구리 혓바닥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파리가 되었다가, 작은 바람에도 파르르 떨며 굴러다니는 나뭇잎이 되었다가, 사람들의 발길질에도 꿈쩍 안 하는 돌멩이가 되었다가, 지하세계에서 허리 끊어지도록 일하는 일개미로 변했다가, 노에 휩싸여 앞발 들고 포효하는 곰이 되었다가, 그 누구도 찾지 못하는 투명인간으로 변하는 등 하루에도 수십 가지, 수백 가지 형상으로 변신한다.


 오늘도 변신술을 과용한 탓에 에너지를 소진한 나는, 3년 묵은 파김치가 되어 퇴근하기 위해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 문을 열었다.


 “잠깐만! 같이 타요!”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M이 날렵한 몸짓으로 나보다 더 잽싸게 차에 올라탔다. 그녀의 무례함이 불쾌하면서도 얼른 직장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일단 차에 시동을 켜고 정문을 나섰다.


 나는 버스 정류장, 지하철 근처 혹은 신호가 걸릴 때마다 지그시 브레이크를 밟으며 M이 자연스럽게 내릴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하지만 M은 좀처럼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디까지 가시나요?”


 “아, 저요? 파김치 씨 댁 근처요. 실은 저녁에 딱히 할 일도 없는데, 파김치 씨 댁에 잠깐 들러도 되나요?”


 아니, 뭐 이런 무뢰한이 있단 말인가. 같은 직장에 몸담고 있지만 않았어도 당장 차를 세우고 내쫓았을 텐데 말이다.


 “죄송한데 집에 아이도 있고, 어르신도 계셔서요. 그냥 우리 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내려드릴게요.”


 “그러죠, 뭐. 호호호.”


 그러나 M의 무례함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내 얼굴 가까이에 자기 얼굴을 들이대며 수다를 떨지 않나, 팔을 툭툭 치며 건들지 않나, 심지어 노래를 불러대다가 흥분했는지 운전 중인 내 시야를 가려대기까지 했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만! 여기에서 내려주셔야겠어요.”


 나는 신호가 걸린 틈을 타 M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녀는 잽싸게 뒷좌석으로 옮겨가며 반항했지만, 내가 필사적으로 팔을 휘젓자, 결국 항복하고 차에서 내렸다.


 그녀가 차에서 떠난 것을 확인한 뒤, 성급히 창문을 올려 닫았다. 얼굴, 팔, 다리까지 사방이 빨갛게 부풀어 오르며 간지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얄밉게 날개 짓 하며 앵앵 불러대던 그녀, M(Mosquito)의 노랫소리가 여전히 귀에 맴돌았다. 초록불로 신호가 바뀌었다. 당분간 그 누구와도 카풀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며 가속페달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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