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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베리 Jun 15. 2023

돌아온 그녀


 그녀. 이건 분명 그녀의 목소리였다. 작년 늦가을 추위가 찾아오는가 싶던 그때, 말없이 사라진 그녀.




 잠결에 소곤대는 그녀의 음성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꿈인가 싶었다. 아니, 이게 설마 현실일까 싶었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 듯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밀물 때 파도처럼 가까이 다가오는 듯싶더니 다시 멀어지고, 멀어지는가 싶더니 더 가까이 다가오는 듯했다.


 조심스레 남편 쪽으로 몸을 돌렸다.  협탁을 사이에 두고 뚝 떨어져 있는 남편의 침대 쪽에서 핸드폰 불빛이 반짝였다. 남편은 조금 전까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게 틀림없었다. 내가 뒤척이자 얼른 잠든 척하는 것일 테다. 핸드폰으로 뭘 했냐고 묻는다면 그는 해외 주식시장을 보고 있었다고 답할 게 틀림없었다.


 어느 날 불쑥 남편이 침대를 따로 사용하자고 했다. 밤늦게 들어오고 새벽같이 나가는 그의 생활 패턴이 내 숙면을 방해할까 봐 걱정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집 앞으로 커다란 택배가 도착했다. 목재였다. 남편은 틈만 나면 쓱싹쓱싹 톱질하고, 뚝딱뚝딱 망치질하더니 어느새 침대 두 개를 만들었다. 얼떨결에 새 침대가 생겼지만, 이상하게도 고맙기보다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다시 눈을 감았다. 한참 뒤 남편 침대 쪽에서 희미하게 그녀의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웠다. 분명 그녀였다. 가을에 떠났던. 영영 떠난 줄로 믿고 싶었던, 그녀가 틀림없었다. 내가 잠든 줄 알았는지 그녀의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그녀는 취한 것처럼 깔깔대는 것 같기도 했고, 춤추며 노래하는 것 같기도 했다.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그녀가 돌아올 거란 걸 내 무의식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대비도 하지 않은 채 우리 가정의 평온함을 그녀에게 다시금 빼앗길 판이었다.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바탕화면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 삼 분이었다. 한 시 반 넘어서 잠들었는데, 잠든 지 고작 삼십 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각이었다. 남편이 내 기척에 놀랐는지 어둠 속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 예상이 맞았다. 이 사람은 역시 깨어있었다. 내가 들은 것도 분명 꿈이 아닌 현실에서 들은 소리였다.


“자기, 나, 들었어. 그녀 소리.”


“아,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 불 켜도 돼? 확인하고 싶어. 자기 모습, 그리고 내 모습.”


“응, 그래.”

말릴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남편은 순순히 내 말에 동의했다.




 불이 환하게 켜졌다. 눈두덩이가 빨갛게 부은 남편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나를 응시했다. 나는 손등이 빨갛게 부어있었다.


“자기도 물렸구나? 올해는 좀 일찍 돌아왔네.”


“모기 채는 어디에 뒀어?”


“생각이 안 나. 그나저나 물리는 것보다 난 왜 이렇게 앵앵대는 소리가 싫은지 원.”



 

 몇 분 뒤 우리는 벽에 붙어있는 새까만 그녀를 발견했고, 남편 보다 조금 더 민첩한 내가 그녀를 내리쳤다. 그녀는 내 손바닥 아래에서 피를 토해내며 처참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그 뒤로 한참을 누워있어도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노트북을 켜고 돌아온 그녀에 관해 기록을 남다.




여러분, 돌아온 그녀를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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