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이건 분명 그녀의 목소리였다. 작년 늦가을 추위가 찾아오는가 싶던 그때, 말없이 사라진 그녀.
잠결에 소곤대는 그녀의 음성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꿈인가 싶었다. 아니, 이게 설마 현실일까 싶었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을 듯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밀물 때 파도처럼 가까이 다가오는 듯싶더니 다시 멀어지고, 멀어지는가 싶더니 더 가까이 다가오는 듯했다.
조심스레 남편 쪽으로 몸을 돌렸다. 협탁을 사이에 두고 뚝 떨어져 있는 남편의 침대 쪽에서 핸드폰 불빛이 반짝였다. 남편은 조금 전까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게 틀림없었다. 내가 뒤척이자 얼른 잠든 척하는 것일 테다. 핸드폰으로 뭘 했냐고 묻는다면 그는 해외 주식시장을 보고 있었다고 답할 게 틀림없었다.
어느 날 불쑥 남편이 침대를 따로 사용하자고 했다. 밤늦게 들어오고 새벽같이 나가는 그의 생활 패턴이 내 숙면을 방해할까 봐 걱정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집 앞으로 커다란 택배가 도착했다. 목재였다. 남편은 틈만 나면 쓱싹쓱싹 톱질하고, 뚝딱뚝딱 망치질하더니 어느새 침대 두 개를 만들었다. 얼떨결에 새 침대가 생겼지만, 이상하게도 고맙기보다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다시 눈을 감았다. 한참 뒤 남편 침대 쪽에서 희미하게 그녀의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웠다. 분명 그녀였다. 가을에 떠났던. 영영 떠난 줄로 믿고 싶었던, 그녀가 틀림없었다. 내가 잠든 줄 알았는지 그녀의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그녀는 취한 것처럼 깔깔대는 것 같기도 했고, 춤추며 노래하는 것 같기도 했다.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그녀가 돌아올 거란 걸 내 무의식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대비도 하지 않은 채 우리 가정의 평온함을 그녀에게 다시금 빼앗길 판이었다.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바탕화면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 삼 분이었다. 한 시 반 넘어서 잠들었는데, 잠든 지 고작 삼십 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각이었다. 남편이 내 기척에 놀랐는지 어둠 속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 예상이 맞았다. 이 사람은 역시 깨어있었다. 내가 들은 것도 분명 꿈이 아닌 현실에서 들은 소리였다.
“자기, 나, 들었어. 그녀 소리.”
“아,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 불 켜도 돼? 확인하고 싶어. 자기 모습, 그리고 내 모습.”
“응, 그래.”
말릴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남편은 순순히 내 말에 동의했다.
불이 환하게 켜졌다. 눈두덩이가 빨갛게 부은 남편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나를 응시했다. 나는 손등이 빨갛게 부어있었다.
“자기도 물렸구나? 올해는 좀 일찍 돌아왔네.”
“모기 채는 어디에 뒀어?”
“생각이 안 나. 그나저나 물리는 것보다 난 왜 이렇게 앵앵대는 소리가 싫은지 원.”
몇 분 뒤 우리는 벽에 붙어있는 새까만 그녀를 발견했고, 남편 보다 조금 더 민첩한 내가 그녀를 내리쳤다. 그녀는 내 손바닥 아래에서 피를 토해내며 처참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그 뒤로 한참을 누워있어도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노트북을 켜고 돌아온 그녀에 관해 기록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