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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베리 Jun 18. 2023

남편의 수상한 단톡방

매니저의 이중생활


 한 달 전부터 남편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실실 웃거나 킥킥거렸다. 직업 때문에 밤낮없이 핸드폰을 손에 들고 전 세계 뉴스 플로우를 확인하는 사람이지만, 어떠한 소식에도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사람이었다. SNS도 안 하는 사람인데 무슨 일인가 싶어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상한 씨는 예상치도 못한 일에 연루되어 있었다. 모 사립초등학교 학생들이 졸업을 하며 뿔뿔이 흩어지는 게 아쉬워서 만든 단톡방에 상훈이라는 학생 대신 잘못 초대된 것이었다. 그는 즉시 자신이 해당 학생이 아님을 밝히고 그 방을 나왔으나, 다시금 단톡방에 소환되는 과정이 여러 차례 반복됐다. 중학생들은 남편이 카톡 프로필에 올려놓은 우리 아들 사진을 보고 상훈이 어릴 적 사진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남편은 상훈이라는 녀석에게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자신을 똑 닮은 아들과 비슷하게 생긴 녀석이라니! 남편은 아이들의 끈질긴 재소환에 두 손 들고 결국 단톡방에 잔류했다. 그런데 자꾸만 친구들이 말을 거는 것이 아닌가! 상한 씨는 단톡방 프로필을 ‘상훈 아님’으로 설정해 놓았다. 하지만 중학생들은 ‘이 x끼, 하는 짓을 봐도 확실히 상훈이네.’라고 욕을 해댔다. 이렇게 단톡방에서 남편은 점점 더 상훈이로 굳어져 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은 점점 중1 세계에 빠져들어 갔다. 친구들(?)의 학교와 학원 생활, 가정과 교우 문제 등에 관해 몰입하며 매일 열띤 대화의 장에 참여하더니, 급기야 정신세계도, 행동도 청소년같이 급변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사춘기 아들이 엄마를 쳐다보는 것 같은 반항심마저 서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화나도 흥분하거나 큰소리 낸 적 없던 남편에게서 "에이 씨, 나 안 해!" 같은 언행마저 불쑥불쑥 튀어나오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정신 차려! 당신은 중 1이 아니고, 더군다나 나는 당신 엄마가 아니라고!”


 나의 호통에 남편은 잠시 정신을 차리는가 싶더니 다시금 중학생 생활에 몰입했다. 아이들과 낄낄대며 급훈을 짓기도 하고, 부모와 심한 갈등을 겪는 친구에게 조언하기도 하고, 전체 친구들을 대상으로 간식을 쏘는 이벤트를 벌이기까지 했다. 친구들은 중학생이 된 뒤 갑자기 똑똑해지고 리치해진 상훈이를 신기해하며 자기들도 성장을 위해 노력하자고 서로서로 독려하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상한 씨가 크게 호들갑 떨며 달려왔다.

 “어떻게 해, 어떻게 해, 큰일 났어!”


 누군가의 초대로 '진짜 상훈이'가 단톡방에 초대되어 나타난 것이다. 죽은 줄만 알았던 드라마 주인공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나 역시 심장이 떨렸다. 우리는 두 손을 꼭 맞잡고 단톡방의 동태를 살폈다. 엄청난 양의 대화가 오고 가던 방이 고요했다. 상훈이가 말을 걸었다.


“다들 자냐? 왜 이렇게 조용해?”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모두들 머릿속이 복잡했던 것일까.


 남편은 그동안 그토록 궁금했던 상훈이의 프로필 사진을 눌러보고는 ‘헉!’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사진을 확인한 나 역시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상훈이의 프로필에는 정말 상한 씨와 꼭 닮은 녀석이 아저씨 같이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며칠 뒤, 슬그머니 단톡방이 사라지고 핸드폰을 보는 남편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사라졌다. 반항기 넘쳤으나, 웃음도 만개했던, 그가 잠시 회춘했던 때가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그나저나, 진짜 상훈이를 단독방에 초대한 녀석은 남편이 상훈이가 아닌 것을 언제부터 알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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