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뜨거운 도시락

by 허니베리

에스프레소 머신에 문제가 생겼다. 에스프레소 추출 시 포터필터와 그룹헤드 사이로 물이 새고, 간혹 추출되지 않는 경우도 발생했다. 약품 청소로도, 개스킷 교체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서비스 센터에 전화해 수리 접수를 하자, 방문 일정을 정하기 위해 기사가 전화를 줄 거라는 안내를 받았다.


다음날 전화를 건 수리 기사는 열두 시경에 도착한다고 통보했다. 시간을 보니 30분도 채 남지 않았다.


학교는 정해진 급식 시간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 식당 공사로 임시 지정장소에서 배식을 하면서 배식 시간이 짧아졌다. 식사 마치는 대로 다른 부서에 협조해 주기로 약속해 놓은 일도 있었다.


“아니, 왜 하필 점심시간에 방문하시는 거죠?”

“기계 있는 곳만 알려주시면 식사하실 동안 점검하고 있겠습니다.”


개운치 못한 마음으로 전화를 마쳤다. 밥을 받아와서 급히 먹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저, 건물 앞에 도착했습니다.”


밥을 남긴 채 투덜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건물 밖에는 이제 갓 스무 살 되었을까 싶은 청년이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고장 난 머신이 있는 카페로 를 안내했다. 학생들이 문을 닫은 식당 대신 카페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얼핏 보면 기사의 얼굴이 학생들보다 어려 보였다.

그는 부지런히 손을 놀려 기계를 조작하더니, 곧 분해하고는 이곳저곳을 손보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먹고 있는 밥 냄새가 솔솔 풍겨왔다. 에어컨을 틀어놓았음에도 는 연신 땀방울을 흘렸다. 시원한 음료를 가져와 슬그머니 건넸으나, 기사는 잠시도 한눈팔지 않고 바쁘게 움직였다.


그때 기사의 방문 소식을 듣고 로스팅 교육을 담당하는 S 선생이 교실로 들어왔다. 선생은 수리 중인 부위를 살피기 앞서 대뜸 기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점심은 어떻게 하시나요?”

“괜찮습니다.”

S 선생은 기사가 작업하는 장면을 잠시 살펴보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참 뒤 나타난 S 선생 손에는 편의점 도시락이 들려있었다.


“젊은 분이 배고픈 채로 일하면 안 됩니다. 잠시 이리 오시지요.”


가 흠칫 놀라며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데워왔으니 식기 전에 드셔야 합니다.”


기사는 S 선생의 손에 이끌려 자리에 앉다. 그는 잠시 도시락을 바라보더니 조심스레 뚜껑을 열었다. 시간에 쫓겨 급하게 먹을까 봐 걱정했던 바와 달리, 그는 마치 미슐랭 별점 받은 식당 음식을 맛보듯 맛을 음미하며 도시락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나는 시원한 물을 받아 테이블에 올려놓은 뒤 자리를 피했다.


기사는 도시락을 깨끗이 비운 뒤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갔다. 문제의 원인을 설명하는 입은 야무지나, 커다란 눈망울은 아직 어린아이와 같았다.


그를 배웅한 뒤, 젊은 수리 사와 선배 선생이 만든 여운 속에서 한참을 홀로 머물러 있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피베리(Peaberry)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