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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가 사랑하는 커피음료

카페라테

by 허니베리


학교에 출근하면 제일 먼저 자리로 가서 컴퓨터를 켜고 메신저를 확인한다. 이때까지는 동료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선생 모습이다. 하지만, 바리스타 실습실인 카페로 들어가서 앞치마를 두르는 순간, 나는 영락없는 바리스타로 변신한다.


카페의 아침은 다음과 같은 일과로 시작된다. 카페에 들어가면 우선 불을 켜고 폴딩도어와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한다. 다음으로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점검하고 사용할 기물과 재료를 준비한다. 그리고 그날 사용할 원두의 입자, 양, 추출 시간 등을 조절하여 에스프레소 추출 레시피를 설정한다. 이 과정에서 나온 에스프레소를 활용해 나를 위한 음료를 만들기도 하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우유에 에스프레소를 부어 만드는 카페라테이다. 이때 우유는 스티밍하지 않고, 얼음도 넣지 않는다. 다시 말해 얼음 뺀 아이스 카페라테이다. 고소하고 단 우유에 퍼지는 강렬한 에스프레소 향을 뜨거운 우유 거품이나 차가운 얼음에 빼앗기기 싫어서이다. 파라곤 브루어나 칠링볼 홀더 같은 도구를 사용하여 추출 시 에스프레소를 냉각한다면 음료를 보다 차갑게 만들 수 있겠지만, 냉장고에서 막 꺼낸 우유에 갓 추출한 에스프레소를 부어도 우유 비율이 높기 때문에 시원한 느낌으로 마실 수 있다.




쉬는 날에는 집에서 홈로스터기를 활용해서 생두를 볶은 후 원두에서 가스가 빠지면 원두의 특징을 잘 살려 브루잉, 모카포트, 에어로프레스 같은 기구를 활용해서 추출한 최상의 커피를 음미한다, 는 오래전 이야기이고, 요새는 커피를 사서 마신다. 그 이유를 묻는다면 요리사가 집에서 요리하지 않는 이유와 같다고 답하려고 준비하고 있으나, 묻는 이가 아무도 없다. 때로는 커피나 음료의 트렌드, 장비 또는 기물 등을 살펴보기 위한 ‘특수 목적’을 갖고 특정 카페들을 찾아갈 때도 있지만, 대게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커피를 사 마신다. 오늘은 빵집 앞을 지나가다가 갑자기 커피 생각이 간절하여 빵집으로 들어갔다.


아이스 카페라테 한 잔 주세요.
죄송하지만, 얼음 빼고 부탁드릴게요.
얼음 빠진 만큼 양은 적어도 괜찮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메뉴를 주문했다. 이렇게 말할 때, ‘양은 적어도 괜찮습니다.’를 강조해야 한다. 간혹 얼음의 빈자리를 우유와 에스프레소로 채워달라는 무뢰한으로 취급받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경험 많은 바리스타라면 내 요구를 금세 이해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내어준다. 하지만, 이곳은 빵집인 만큼, 직원은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직원은 아이스라테 만드는 방법을 떠올렸을 것이다. 첫째, 컵에 얼음을 채운다. 둘째, 컵의 나머지 공간에 우유를 붓는다. 셋째, 그 위에 에스프레소를 붓다. 여기에서 얼음을 빼는 장면을 상상하자, 우유를 얼마큼 넣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낯선(?) 메뉴에 대한 감이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사실, 글로 보면 알 수 있듯 만드는 방법은 매우 간단한데도 말이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직원이 조심스레 물었다.

우유를 스티밍해서 얼음을 넣어드리면
어떨까요?

직원의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스팀드 밀크에 얼음이라니.... 간혹 손님의 요구에 따라 뜨거운 아메리카노에 얼음을 한두 개 띄워 제공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물론 이럴 경우 농도를 유지하기 위해 얼음 무게만큼 물을 적게 붓는다. 하지만, 스티밍을 통해 온도를 높이고 거품을 낸 우유에 얼음을 타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얼음이 녹으면서 우유가 희석되어 맛이 밍밍해질 뿐 아니라 거품이 망가지며 입안 감촉도 거칠어질 것이며,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는 음료를 그야말로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맛'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 직원은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 나름의 정성을 기울인 것으로 생각됐다.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하며 다시금 내가 원하는 것을 천천히 설명했다.

"냉장 상태의 우유를 컵에 따르고 그 위에 에스프레소만 부어주시면 돼요."

직원은 고개를 우유를 들고 한참을 고민하더니 음료를 만들어 내 앞으로 내밀었다. 감사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서 커피를 한 입 머금고는 눈물이 날 뻔했다. 얼음을 대신하여 컵을 우유로 가득 채워 커피 맛을 느끼기 어려운 카페라테였다. 직원의 과한 친절이 내게 (돈을 버렸다는) 자책감을 가져다줬다.




커피 아닌 듯 한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잘해주기 위해 상대방이 요구한 것 이상의 것을 내 방식대로 더해주려 할 때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신혼 초 이러한 문제는 남편과의 갈등 요소 중 하나였다. 예를 들어, 잦은 회식으로 인해 집에서는 가볍게 식사하고 싶어 하는 남편의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끔 남편이 일찍 들어오면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진수성찬을 차렸다. 이것은 나의 사랑 표현 방식이었다. 하지만 '내 뜻대로 사랑'의 결과는 좋지 않았다. 남편이 음식을 먹지 않거나 조금만 먹으면 속상함이 밀려왔고, 남편이 음식의 유혹에 넘어간 날이면 다이어트에 실패한 남편이 속상해했다. 찬찬히 돌이켜 보니 가족뿐 아니라 친구에게도, 학생에게도 잘해주고 싶은 마음에 그들의 요구를 넘어서는 돌봄 또는 서비스를 제공했다가 마음이 상하거나 관계가 불편해진 적이 꽤 있었다.


상대방이 딱 원하는 만큼만 (해)주는 것은 한국식 정서에 맞지 않는 행위일 수 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듯, 상대방이 받고 싶다고 제시한 것이 그에게 최상의 것일 수 있다. 주는 사람이 아닌, 받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고려하는 것이야말로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서비스의 기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나저나 이번 주말부터는 묵혀놓고 쓰지 않는 모카포트를 꺼내 내가 원하는 카페라테를 만들어 마시며 나를 위한 서비스를 재개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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