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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선 Sep 23. 2021

1947년의 로웬펠드에게

첫 번째 편지(To. Viktor Lowenfeld)

2021년 9월 23일

홍대에서


친애하는 로웬펠드님,


<인간을 위한 미술교육> 은 정말로 거창한 제목입니다.

로웬펠드님이 살아계신다면 어떻게 번역되길 원했는지 저는 무척 궁금합니다.


<인간을 위한 미술교육>은 로웬펠드님이 1947년도에 출판한 <<creative and Mental Growth>>를 번역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저는 1960년 로웬펠드님이 돌아가시고 19년이 지난 1979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기까지 38년이 지났고요. 이 책의 습독은 제 나이 마흔이 되어서야 시작되었지요.


2021년 지금 이 책은 한국에서 절판된 책입니다. 중고 책방을 찾아봐도 찾기 힘든 책이고 2021년 9월 23일 로웬펠드님의 책을 검색해보았습니다.



조금 놀랍지요? 하지만 실제 거래 가는 대략 8만 원에서

 19만 원 정도에 거래되는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출판사인 미진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도 했어요. 1993년 9월 10일 초판 발행 후 2011년 4월 29일 중판 발행 2021년 다시 출판될 기회가 없는지 말입니다. 미진사에서는 단호하게 대답하더군요. "절판입니다. 수요가 많지 않습니다." 하고요.


사후 스승에게 보내는 편지


저는 단지 궁금했습니다. 이 책이 다시 출판되어야 마땅한 ‘책’이라 강조하기 위해 물어본 것은 아니었어요. 다만, 미술교육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무척 유익한 책이라는 사실을 출판사와 공유하고 싶었죠.

마지막으로 혼자 고민을해 보았습니다. 여러 참고자료에 로웬펠드님의 <인간을 위한 미술교육>이 언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수요가 없는지에 대해서요. 제가 내린 결론은 다양한 미술교육 참고서적에 로웬펠드님의 글이 요약본으로 많이 언급되어 왔고 또 그 사이에 새로운 미술교육 및 현대미술 장르의 변화로 인해 수요가 줄어든 것이지요. 그러니 출판사에서 다시 발행할 의지가 없는 것일 테고요.


하지만 로웬펠드님의 책 원본을 접한다면 요약본이 대신할 수 없는 내용이 가득 실려있어요. 물론 로웬펠드님이 살아계신다고 한들 이 책이 다시 출판된다는 보장도 없고, 제가 지금부터 보내려는 편지가 당신에게 도착했을 리도 없겠지만 저는 <인간을 위한 미술교육>이라는 책의 목차를 바탕으로 로웬펠드님께 편지를 보내는 형식의 글을 써보려 합니다. 사후대담이 가능할까요?

묻고, 답하고, 묻고, 고민하는 편지가 될 예정입니다.


드로잉 안내서 <의자와 낙서> 그리고  <흔들리는 선>을 출판한 후 미술교육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고민에 대한 답을 로웬펠드님의 <인간을 위한 미술교육>에서 찾게 되었고 2021년 저명한 책들을 뒤로하고 1947년으로 돌아가 하나씩 짚어보며 오늘날에 도착하는 것이 유의미한 여정이될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미술교육의 시작이자 스승이  로웬펠드님의 연구와 더불어 시각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한 브루노 무나리(1907-1998) 발도르프 미술교육을 만들어  루돌프 슈타이너(1861-1935) 이론도 함께 언급할 예정입니다.


로웬펠드님이 1903년 오스트리아의 린츠에서 태어나 빈에서 맹아와 약시 아를 가르치다 1938년 나치의 반유 태정 책으로 미국으로 건너갔었죠. 그 후 미국의 햄프턴 대학에서 10여 년 동안 주로 흑인을 가르치면서 인권운동에 참여했었고요. 1960년 타계할 때까지 수많은 저술활동과 강의 등으로 학습자의 발달단계에 기초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미술교육이론을 저술하였는데 2021년을 살고 있는 저와 함께 대화를 하려면 저도 로웬펠드님도 두배 세배의 노력이 필요할지 몰라요. 더군다나 저도 미술교육보다는 15년 차 큐레이터로 현대의 미술에 더 관심이 많았던지라 미술교육을 바라보는 시각도 조금 다를 테고요. 예를 들면 1947년 <인간을 위한 미술교육>이 출판될 당시와 그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는 네오다다, 팝아트, 추상표현주의, 앵포르멜, 키네틱, 누보레알리즘, 해프닝, 미니멀리즘 등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예술가들이 미술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크게 변했죠. 한국의 경우는 20세기 후반 한국 특유의 초기 추상미술 및 해방공간기의 미술, 한국화 전통의 계승과 현대화, 국전 아카데미즘, 추상조각 등 격동의 시간을 보냈고요. 그 사이 1979년 제가 태어나 2021년 동시대 미술을 연구하기까지 또 여러 번 미술과 예술전반은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따라서 1947년과 2021년의 미술교육에 대한 온도차는 무척 크다는 것을 고려해야 할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미술교육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로웬펠드님의 자료를 찾아보는 이유는 그 안에 품고 있는 답의 깊이감 때문이니 너무 번거롭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글로 적으면 어려워 보이는 이 이야기들을 질문과 답변으로 녹여 로웬펠드님에게도 제게도 그리고 이 글을 접하는 독자들에게도 쉽고 유익한 작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저의 첫 번째 편지를 마치려 합니다.


1947년 <인간을 위한 미술교육> 은 2021년 <인간을 위한 미술>로 다시 언급되길 고대합니다.


또는 <<1947 creative and Mental Growth>>의 번역그대로 < 2021 창의적 그리고 정신적 성장> 이 좋을까요?  


불가능하지만, 언젠가는 한번 만나뵙고 여쭤보고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 그곳에서 평안하십니까?


존경과 진심을 담아


흔들리는 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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