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튀는 날이었다
메스를 대고 피부 절개를 하자마자 혈관들이 피를 쏘아댔다
언뜻 보니 수축기 혈압이 160mmhg을 넘어 보였다
혈압이 높아 그런지 혈관들이 자꾸만 쏘아대니 얼굴에 피가 튀고 눈에도 좀 들어간 것 같았다
닦아봤자 잘못 문지르면 더 더러워질 수 있으니 수술이 끝나면 닦기로 하고 마저 수술을 이어갔다
그래도 피하지방에서 나는 혈관들은 무섭지 않다
대개 정맥이나 모세혈관 등에서 나는 출혈이기 때문이다
동맥이라 해도 혈관들이 작아서 신경 안 쓰고 나머지 수술을 이어하다 보면 멎어있다
물론 외과에서 우리 수술을 보면 너무 과격하다고 할 때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자궁 출혈이다
아기의 집, 자궁은 때때로 정맥이 무시무시하게 두꺼워져 있다
차마 그 굵은 혈관을 긋고 싶지 않지만 아기는 자궁 하부에서 나와야 하는데 도처에 깔린 지렁이 혈관들을 피할 수 없어 혈관을 가로질러 자궁 절개를 한다
자궁을 절개하면서부터 조짐을 보이더니
아기가 나오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피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단단해져야 하는 자궁은 속절없이 말랑거린다
수려하지 않은 솜씨지만 서둘러 자궁을 봉합한다
노련한 어시스턴트 선생님의 손이 빨라진다
마취과 선생님은 수혈하기 위해 혈액 오더를 내리고 있다
봉합도 하고 자궁수축제도 들어가서 자궁도 좀 단단해지고 얼추 출혈이 좀 멈춘 것 같아 가슴을 쓸어내린다
수술이 끝나고 초음파도 보고 출혈이 계속되는지 확인한다
많지도 않지만 적지도 않은 출혈이다
그냥 지켜봐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위험 부담을 안고 싶지 않기도 하고,
나의 경솔함이 사고를 부르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여 대학병원으로의 전원을 결정한다
내가 결정만 하면 착착 전원이 되면 좋겠지만 일일이 병원마다 전원이 가능한지 전화를 해야 한다
어떤 날은 단박에 받아주는 병원이 있어 무탈하게 넘어가고 여러 군데에 전화해도 답변을 주지 않으면 나는 피가 마르고 속이 썩어 나가는 것 같다
이제 분만을 얼마 해보지도 않았지만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두려워진다
환자가 어디로 갈지 전원 할 병원까지 정해지면 드디어 마음의 평화가 온다
나는 쫄보인데
어떻게 산부인과 의사를 하려고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