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뭐가 났어요'
'종기가 났어요'
'터졌어요'
환자들은 한 번씩 종기를 데려오곤 한다
옷을 다 입은 환자들의 외관만 봤을 때는 종기가 어떤 놈일지 알 수 없지만 간혹 어그적 어그적 걸어오는 분들을 보면 이번엔 보통이 아니겠구나 하는 예상을 하고 처치실 안으로 들어간다
작은 종기들은 소독을 하고 간단히 바늘을 찌르고 짜 주면 금방 끝이 난다
물론 환자의 마음은 간단하지 않은 듯하다
한 번씩 종기를 짤 때면 내가 소시오패스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종기를 다 짜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무자비하게 짜내다 보면 환자들의 비명은 배경음악처럼 저 멀리 어딘가에서 들려온다
'아이고 아프시죠? 조금만 참으세요. 거의 다 됐습니다.'
이런 말을 할 때 너무나 마음에 없는 말처럼 한 것 같아 뜨끔할 때도 있다
처음에는 약을 주고 먹고 기다려보라고 하기도 했다
그런데 약도 약이지만 종기 이놈들은 확실히 짜버려야 빨리 낫는 것 같다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기둥을 뽑아버리고 싶다
때대로 단순한 종기가 아닌 막에 둘러싸인 혹을 떼낼 때도 있다
국소 마취를 하고 조금씩 조금씩 손으로, 기구로 벗겨내어 낭종의 막까지 다 떼버렸을 때의 쾌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내가 직업을 잘 골랐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직업만족도 최상이랄까
환자분은 저 의사가 왜 저렇게 기분이 좋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막까지 다 벗겨냈으니 재발은 안 하실 겁니다!
단호박같이 말할 수 있을 때 의사로서 아주 보람까지 느낀다
다음에도 이번 혹만 같아라! 하고 생각하며
다음 종기를 기다린다
-종기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