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인생은 디딤돌
나는 흔한 구이년생 '박순희'였다.
여기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은, 모든 일을 제쳐 놓고 맹렬하게 쫓아다닌 것이 아닌, 발매하는 음원을 내 돈으로 구매하고, 반복 재생을 통해 가사를 숙지하고, 노래방에서 열창하며, 학교의 친구들과 선생님 모두 내가 그 아이돌의 충신임을 아는, 그저 뻔한 박순희였다.
하루만 니방의 침대가 되고 싶다며 내 마음을 흔들던 그들에게, 시작은 달콤하게 평범하게 끌렸으나, 나도 모르게 그만 풍덩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이름하여 ‘동방의 신이 일어나다’라는 뜻의 ‘동방신기’.
고등학교 3학년 국어 시간 때 일이다. 그 무섭다던 호랑이 국어 선생님은 모르는 연예계 소식이 없었는데, 그런 그녀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내 이름을 불렀다. “너 어떡하니?” 안타까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선생님. 점심시간 직후라 졸린 눈을 부릅뜨고 있는 나에게 연민의 시선이라니. 모든 아이들이 나를 바라본다.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 선생님. “동방신기 해체한다던데... 괜찮니?” 나는 그런 루머가 익숙하다는 듯 여유 있게 대처했지만, 수업 내용은 내 귀를 관통해 흘러나갔다. 수업이 끝나고 나에게 화이팅, 제스처를 보이며 교실을 나가는 선생님. 나는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자판의 중간 버튼, NATE를 꾹- 눌렀다. 해체 기사들. 어지러웠다. 아아, 제발... 제발...
‘루틴’이 깨졌다. 나의 20살은 무기력했다. 돌이켜보면 그들이 데뷔한 초등학교 6학년부터 19살까지, 그들은 나에게 루틴과도 같았다. 매해 앨범이 나왔고, 국내·외 활동 주기가 찾아왔으며, 매번 노래방에서 그들의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더는 그들의 앨범이 나오지 않았고, 노래방에서 부를 노래가 없었으며, 찾아볼 활동 영상이 없었다. 그렇게 나의 루틴이 깨진 것이다. 스트레스를 발산할 나의 영역이 사라져, 에너지 순환이 되지 않는 삶은 무기력했다.
그러던 와중에 단비 같은, 동방신기의 컴백 소식이 들렸다. 하지만 기존 5인 체제가 아닌, 2인 체제. 역시 이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인가. 더는 동방신기가 아닌, 3인은 평소 선천적 재능을 타고났다고 생각했었지만, 이 2인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이들의 미래을 지레짐작했다. 실패할 것이라고.
나는 박순희에서 멀어져, 내 본명으로 삶과 일상을 살아갔다. 하지만 언뜻언뜻 방송과 음원 앱에서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점점 더 빛을 바라고 있었다. 늘어가는 노래 실력과 비주얼 그리고 이전보다 더 구체화된 캐릭터. 물론 소속사의 꾸준한 서포트도 한몫했겠지만, 나는 이들의 노력이 빛을 발하였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둘만으로도 무대가 꽉 차 보였기 때문이다. 더는 5명의 동방신기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머지 3인은 어땠을까. 나는 어느 순간 멈춘 그들의 앨범 활동을 보고, 각자의 개성이 너무나도 뚜렷해 절충되지 않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그중 2인은 뮤지컬과 국내·외 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각자의 길을 닦아 나가고 있다. 나머지 1인은 좀 외진 길로 가, 돌아올 수 없는 길로 접어들었지만 말이다. 그들을 아이돌, 우상으로 여겼던 나로선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 어리석은 나.
내가 감히 남의 인생을 함부로 평가하고 있을 때,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노력했을 것이다. 몸에서 가장 해로운 벌레는 대충이라며, 열정을 부르짖을 때, 나는 고작 ‘안된다’라고만 생각했다니. 부끄럽다.
어쨌든 나의 루틴이자, 에너지의 원천이었던 동방신기는 다시 10년이 지나, 29살의 나에게 루틴이자, 에너지의 원천이 되었다.
따라서, 창민옵빠! 결혼 축하한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