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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제의 딸 Jun 23. 2020

그런 건 소화가 금방 돼요!

02. 인생은 디딤돌

방송국 부조정실 안. 

벽면에 빼곡히 가득 찬 수많은 모니터와 그 앞에는 순서대로 조명, 기계, 연출, CG, 조연출의 자리로 기계와 컴퓨터 장비가 세팅되어 있고, 뒤로는 순서대로 음향, 작가의 자리로 기계와 컴퓨터 장비가 세팅되어 있다.


생방송 10분 전. 카운트가 시작된다. 5분 전부터는 시계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초단위로 바뀌는 시계를 뚫어져라 응시한다. 1분씩 줄어들 때마다 카운트를 외친다. 주조정실에서 받은 방송시간이 시작되면 조연출인 나는 CM 플레이를 하고, 다시 카운트를 외친다. 생방송 전 CM이 끝이 나고, 생방송이 시작되었다. 


스튜디오에서 들어오는 영상들을 편집 프로그램에 끌어와, 주조정실에 넘기기 위해 방송 프로그램을 나눈다. 그리고 방송 중 실수가 생기면, 재방송을 위한 편집을 한다. 1부가 끝이 나고, 중간 CM을 튼다. 다시 카운트를 외친다. 한치의 오차도 있으면 안 된다. 정확하게 다시 들어가는 시간을 스텝들에게 고지해야 한다. 다시 시작된 2부. 편집을 하고, 아나운서가 마지막 멘트를 치면, 엔딩 BGM을 연출자의 지시에 따라 플레이를 한다. BGM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면 마지막 CM을 플레이한다. 다시 카운트를 외친다. “수고하셨습니다!” 부조정실의 문이 열린다. 스튜디오에서 올라오는 스텝들과 출연자들. 인사를 나누는 스텝들. 하지만 조연출의 업무는 끝나지 않았다. 시계를 보며, 카운트를 정확히 외치고, 주조정실로 보내야 할 방송 프로그램을 마무리하고, 아웃풋 받아야 하며, 기록지를 작성해야 한다. 줄어드는 시간. 줄어드는 CM. 카운트도 정확하고, 흘러가는 CM의 순서도 정확하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마지막 CM이 송출되고 있다. 마음이 놓인다. 


어라? 방송이 송출되는 모니터에서는, 마지막 CM의 마지막 컷에서 스틸(한 장면)이 잡혀, 요지부동인 상태였다. 즉, 마지막 장면에서 멈춰 있었다는 말이다! 나는 그만 얼어버리고 말았다. 입사 후, 한 두 달쯤 지났을 때였을까. 이런 큰 실수를 하다니. 허허 웃으며, 끝 인사를 나누던 스텝들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뭐야, 뭐야!”. 아수라장의 부조정실 안. 허둥대는 사람들 사이에 나는 망부석처럼 굳어 가만히 서있다. 다행히 기술 감독이 상황을 파악하고, 뒤늦게 컨트롤을 한다. 스틸이 풀렸다. 정상적으로 송출되는 CM. 눈치를 보는 스텝들. 분위기를 무마하려는 듯 기술 감독은 “그래도 우리 방송국 론칭 프로그램이 스틸로 잡혀서 다행이야? 허허” 통하지 않는다. 


나에게 호통치는 감독. 나의 사수. 나는 안다. 내가 얼마나 잘못했는지.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경각심을 주고, 다른 스텝들이 나에게 어떠한 소리를 하기 전에  먼저 직속 후배에게 호통을 치는, 그 큰 뜻을. 나는 안다. 아아 온몸에 힘이 쫙 빠진다. 한바탕이 끝난 텅 빈 부조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조연출의 업무를 울며 겨자 먹기로 마무리한다. 그때 연락이 오는 사수. 


오전 12시. 언제나 그랬듯, 급 성사된 회식자리. 사수와 나 그리고 작가, 촬영 감독과 당일 출연자 두 명이 함께 했다.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 사수가 나에게 술을 건넨다. 기울이는 잔. 맥주잔에 흰색과 탄산을 머금은 뽀얀 노란색이 잘 어우러져 섞인다. 건배를 하는 사람들. 사수가 입에 잔을 가져다 가다, 다시 떼어내더니, 나에게 말은 건넨다. “황제야, 너에게 심한 말을 한 건 진심이 아니란다.” 술잔을 입에 가져간 나. 목으로 넘어가는 이 청량한 탄산의 느낌. 원 샷을 한다. ‘탁’. 잔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어우 선배님! 그런 건 소화가 금방 돼요!” 깔깔대며, 웃는 사람들. 화기애애한 회식자리.


실수는 언제나 두렵다. 피할 수만 있다면 악을 쓰고 라도 피하고 싶다.

나는 언제나 실수를 할 때면 몇 날 며칠이고, 끙끙 앓으며, 죽상을 하곤 했다. 

그런데 실수를 캐주얼하게 받아들이니, 나의 마음과 상황이 더 수월해졌다. 

모든 일을 하나의 과정이라 여기며,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중요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해하지 말자. 


어차피 경위서는 선배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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