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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갱 Dec 18. 2020

코로나 시국 속 행복 비슷한 무언가

언젠가 2020년을 그리워할 것 같다

 임레 케르테스라는 헝가리 작가는 운명이란 책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운명은 실제 작가의 아우슈비츠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이다. 사실 홀로코스트의 참상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하지만 그 가운데 '운명'이 특별했던 이유는 잔인한 현실 속에서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내게 악과 끔찍한 일에 대해서만 묻는다. 내게는 이런 체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도 말이다. 그래, 난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면 다음엔 강제 수용소의 행복이 대해서 말할 것이다.”


 나는 오늘 문득 불 꺼진 이태원의 길을 걷다가 '운명'의 마지막 구절이 생각났다. 그리고 나 역시  몇 가지 이유로 코로나로 초토화된 오늘을 언젠가 그리워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에 다니는 와이프가 재택근무를 하고 자영업자인 나는 일이 없어졌다. 우리는 거의 삼시 세 끼를 같이 먹을 수 있게 됐다. 와이프는 한 때, 내가 아침에 눈뜨기 전에 출근하고 잠든 후에 퇴근하기도 했다. 그랬던 사람들이 요즘은 집에서 상당한 시간을 함께 보내니 변화가 더욱 극적으로 느껴진다. 집밥을 해 먹고 이야기를 하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니 부쩍 관계의 농도가 진해졌다고 느껴졌다.


 컴팩트한 인간관계가 주는 홀가분함이 좋다. 번잡한 12월의 모임들이 코로나로 다 취소가 되니 12월이 이렇게 정갈할 수가 없다. 귀찮았던 관계가 코로나로 정리되니 이렇게 심플한 관계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의 시간이 지나도 용기 내어 좋아하는 사람들만 볼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을 가지 못하고 친구를 만나지 못하니 용돈 통장의 잔액이 늘어난다. 돈이 다 어디 갔나 했는데 이제 그 답을 알 것 같다. 남은 돈으로 소소하게 남들 따라서 주식에 투자했더니 수익도 난다. 코로나가 끝나고 일이 많아지고 돈을 다시 벌어도 검소하게 살고 투자를 잘하면 돈이 잘 모일 것 같다. 이번 기회에 그 방법을 알게 되었다.


 당연한 것들은 당연한 것들이 아니었다. 친구들과의 맥주 한 잔, 훌쩍 떠나는 여행, 코 끝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공기마저도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내 주변에 소소한 행복들을 좀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코로나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겠지만 우리가 새로 얻게 된 코로나라는 필터를 통해 세상을 본다면 그때는 분명 세상이 다르게 보일 것 같다.

 



 나 역시 코로나로 막대한 타격을 받고 있는 자영업자로써 코로나가 빨리 끝나길 바란다. 매일 우울한 소식들이 들리는지만 그 가운데 느껴지는 행복감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다. 비극의 한가운데 많은 이들이 고통받는 가운데 소소한 행복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비난을 받을 만한 일인 것 같아 두렵다. 


  임레 케르테스가 소설을 집필하며 수용소에서의 행복한 기억들을 쓰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했겠구나 생각이 든다. 그가 아우슈비츠에서의 행복함에 대해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살아남아서다. 우리도 힘든 지금을 다 살아내고 그 시절의 소소한 행복들에 대해 무용담처럼 떠들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가스실 굴뚝 옆에서의 고통스러운 휴식시간에도 행복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2020년은 최악으로 기억되겠지만 그 속에서 느꼈던 행복 비슷한 무언가 때문에 나는 지금, 이 최악의 시간들을 가끔은 그리워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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