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혼자 방콕 여행 시작
6개월 전으로 내가 왜 방콕 여행을 준비하게 되었나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회사에서 목표 매출에 대한 스트레스와 압박이 심해 결제했다. 그 날 그냥 먼 미래의 어느 날로, 내가 회사를 다니고 있을지도 아닐지도 모르는, 나이 많은 할머니가 그때도 건강하실까 생각 드는 그 아득한 미래의 날짜에 비행기를 티켓팅 했다. 무려 6개월 후에 비행기표를 티켓팅한 것이다.
내가 예상한 효과는 두 가지 정도였다.
1. 비행기표를 싸게 구할 수 있다.
2. 그 날을 바라보며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다.
돌이켜보면 이 두 가지는 철저히 망했다. 떠나기 일주일 정도까지 비행기 표는 6개월 전 내가 샀을 때랑 별 차이 안 났고 나는 그 날을 너무 오래 기다려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회사는 연차에 관대했지만 (6개월 전까지) 내가 여행을 앞둔 이 일주일을 대표는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하고 있었다. 그렇게 될 줄 낸들 알았나. 나는 이미 Airbnb까지 예약 결제했는데 알게 뭐람. 앞으로는 떠나고 싶을 때는 머지않은 시일 내에 떠나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짐을 싸는데 이건 거의 운동선수의 전지훈련 수준이다. 맘 놓고 자고 먹고 운동하고 가 내가 꿈꿔온 방콕에서의 일주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뭐 몸이 막 좋거나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요즘 좀 재미를 느끼고 있어서 그렇게 됐다. 친구에게는 방콕에서 돌아올 때 몸짱으로 돌아오겠다 선언을 하고 왔다.
비행기처럼 나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해주는 것이 또 있을까 싶다. 신치림의 노래따라 '벨트에 날 끼우면 바퀴가 타도록' 출발한다. 자기 바퀴 타는 줄도 모르고 내가 낸 몇 십만 원의 돈 때문에 활주로를 달린다. 폭발할 듯 팔딱 거리는 엔진음 후에 기체는 하늘 위를 난다. 그리고 나면 우아하게 활주로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정든 도시와 인사시켜준다.
지루한 비행이었다. 저가항공이라 먹을 것도 안 주고 의자에 달려있는 스크린도 없었다. 그저 가지고 온 '사피엔스'라는 책만 주야장천 읽었다. 발아래 보이는 불빛들을 보며 저곳의 삶을 어떤 것일까 상상했다. 또 위에 떠 있는 별들을 보며 이 별들은 서울에서는 어디에 숨나 생각했다.
비행기는 하늘에 있을 때 너무 우아한 나머지 게으른 속도로 날고 있는 게 아닌가 싶지만 착륙할 때 되면 그 생각이 바뀐다. 정말 빠르다. 괜히 옛 선조들이 빠르면 비행기를 외친 게 아니다. 비행기는 외형에 비해 너무 연약한 바퀴를 가지고 있어 착륙할 때 항상 불안하다. 툭 하고 부러질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언제나 그랬듯이 바퀴는 또 견뎠고 나는 무사히 방콕에 착륙한다.
죄도 안 졌는데 긴장되는 수속을 끝내고 컨베이너 벨트에 트렁크가 나올 때 트렁크를 얼싸 앉을 뻔했다. 공항에서 내 가방을 다시 만나는 건 반가운 친구를 다시 만나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다.
방콕 통신사의 유심을 끼고 1층으로 내려가 택시를 탄다. 방콕 택시기사가 수건으로 미터기를 잘도 가려놨다. 550밧으로 결판 보려고 해서 '미터 온 플리즈' 하니 '2시간이나 기다렸는데' 하면서 아쉬운 마음을 토로한다. 그래도 그건 아니잖아.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올라가는 미터를 보며 구글 맵으로 이 녀석이 우회하지 않고 목적지로 잘 가는지 확인했다.
결국 목적지까지는 450밧이 나왔고, 팁으로 좀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 그리고 얼마를 팁으로 줘야 할지 몰라 100밧을 줬다. = 550밧 똑같네. 이런 멍청이.
AIRBNB 호스트와 만나 하우스 투어를 하고 간단히 주변 갈 곳과 주의사항에 대해 들었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미안했다. 내겐 너무 과분한 숙소다. 이 숙소라면 애인과, 친구와 왔어도 넉넉히 쓸 수 있을 크기다. 짐을 풀고 나니 안도감과 동시에 묘한 설렘이 느껴진다.
일단, 오늘은 푹 자고 내일부터 방콕에서의 일주일을 시작한다.
남자 혼자 과묵하고 고독한 방콕 여행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