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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갱 Oct 13. 2016

(방콕 4일 차) 감기로 방콕에서 방콕 하기

여행을 잘하는 방법은 없다


 여행을 잘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여행을 잘 한다는 말 앞에 '누구보다'라는 말이 들어가면 문장이 완성된다. 잘하고 못하고는 항상 비교의 개념에서 나온다.

 우리는 여행을 잘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우린 이 꿀 같은 휴가기간을 너무나 오랫동안 괴로운 시간을 견디며 기다렸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의 시간과 비용으로 최대의 효용가치를 뽑아내야만 한다. 요즘처럼 자신의 여행을 소개자 자랑하는 글이 넘치는 세상에서는 비교하기 더욱 쉽다.

 누구보다 여행을 잘하고 못하고 재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사람 모두 생김새가 다르듯 관심사와 시간을 보내는 적절한 방법들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방콕에 가면 정말 운동을 열심히 할 거야'라는 나의 다짐에 동료는 '왜 도대체 휴가까지 가서 운동을 해?'라고 말한다. 또 '나는 방콕에서 게으르게 살 거야, 관광지도 별로 갈 생각 없어'라고 하면 동료는 '그래도 거기 여행 가는 건데 볼 건 보고 와야지'라는 반응이다.

 잘하고 못하고는 없다, 여행은 저마다 최고의 시간으로 보내져야 한다. 지금까지 감기에 걸려 하루 종일 방콕에서 방콕한 나를 위한 자위였다.

 

감기 몸살에 걸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괜찮은 하루


로켓 커피의 노르딕 미트볼

 정말이지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무겁고 일어나기도 힘든 그런 상태가 되어버렸다. 회사를 다니고 있을 때면 반차라도 썼을 것 같다. 침대에서 보낼 방콕에서의 오늘 하루가 조금은 아깝지만 방콕에서 앓아눕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냥 방콕에서 방콕 하는 하루를 즐길 수밖에.

 타지에서 아픈 내가 조금은 멋있었다. 모성애를 자극하는 어린 소년의 느낌이랄까. 늦은 아침이었다 12시가 되니 배가 고파 침대 위에 있을 수 없었다. 서러웠다. 나에게 줄 수 있는 사치로 근처 한국인에게 유명한 로켓 커피라는 카페에서 무려 2만 원 정도를 내고 미트 볼을 먹었다.  2만 원은 방콕에서는 정말 큰돈이다. 이케아 미트볼 맛인데 맛있었다.

 

감기 걸린 사람 중에 1등

 노점에서 과일을 사고 수영장 의자에 앉았다. 과일을 왕창 먹고 있으니 감기가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 좋은 수영장도 그 옆의 헬스장도 그림의 떡이다. 그러게 운동한다고 설레발을 치더니 꼴좋다. 세상사 건강하지 않으면 이 모든 게 무슨 소용인가. 그렇게 의자에 앉아 보사노바를 들으며 사색을 하며 나름 근사한 시간을 보냈다. 감기 걸린 사람 중에 제일 멋있으면 된 거 아닌가.


신과 함께하는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


 낮잠에 거나하게 취하고 나니 머리 아픈 건 괜찮아져 '그래, 여긴 방콕이지' 속으로 한 번 되네이고 발 마사지를 받으러 나왔다. 몸이 아파 아무래도 전신 마사지보다는 발마사지가 좋아 보였다. 가는 길에 사람이 왁자지껄 모여 있었다. 축제를 하는 모양이로군.

 

여행 중 우연히 만나는 축제만큼 흥미로운 일은 없습니다

 힌두교 축제를 하는 모양이다. 화려한 복장과 온화한 미소의 사람들이 길에 가득했다. 신을 모시는 듯 보이는 제단이 무척이나 화려하다. 여행 중 우연히 만나는 축제만큼 흥미로운 일이 또 있을까? 재단을 구경하고 눈여겨봤던 로컬 마사지 샵으로 갔다.

세상 모든 마사지샵이 반얀트리 스파일 필요는 없다

 반얀트리 스파가 아무리 좋다 한들, 모든 스파나 마사지샵이 그런 고급스러움을 지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작고 허름한 마사지 샵은 일하고 지친 서민들의 피로를 풀어주며 반얀트리 스파보다 더 세상에 기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고급스러움은 없지만 성심껏 마사지하는 마사지사와 창문을 보며 계속 무언가를 말하는 수다쟁이 방콕 아줌마의 태국어 소리를 듣고 있으니 이 또한 평화롭구나.


신과 함께 사는 삶이 아름답습니다.

어둑해진 거리로 나오니 축제는 절정에 달해 있다. 신과 함께 사는 이들의 모습이 흥미롭다. 비행기를 타고 오며 봤던 작은 불빛 하나하나들 사이는 이렇게 사람들이 저마다의 양식으로 살아간다. 더 구경하고 싶었으나 몸이 안 좋아 집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니 테러 걱정이 되었다. 테러리스트들의 목적은 이렇게 소기 달성되고 있나 보다. 사람이 모였을 때 찾아오는 공포심, 나쁜 놈들이다.


정말 정갈해 보이지 않습니까?

 집에 오는 길 작은 일본식 가게가 있어 오야코동을 시켰다. 아사히 생맥을 먹으면 참으로 좋겠지만 감기 때문에 스킵한다. 미소 수프와 밥을 한 그릇 야무지게 먹고 나니 감기도 많이 나아질 것만 같다. 자고 일어나면 감기가 많이 좋아졌으면 좋겠다.

 허약체질이라 생에 수많은 감기들을 겪었지만 방콕에서의 감기가 제일 멋졌습니다. 열대과일을 배부를 때까지 먹고 코코넛워터를 들이키며 침대에서 훌쩍이는 일이 간지가 나더군요. 방콕에서의 감기 걸리기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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