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개같은 버릇이 아닐 수 없다
와이프의 회사 동료들이 집으로 놀러오셔서 홈파티를 했다.
2층부터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는데 내가 오니 갑자기 조용해졌다. 나는 시베리아 북서풍과 함께 입장한 듯 주위를 냉각시켰다.
어색한 통성명을 하고 뻑뻑한 분위기는 알코올이 윤활유가 되어 한결 부드러워진다. 레몬소주를 기가 맥히게 타시는 분이 있어서 홀짝 홀짝 맛있게 마셨다.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술을 제법 먹고 나면 새벽에 눈이 일찍 떠진다. 오늘은 새벽 4시에 눈이 떠지니 미칠 노릇이다.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온전히 뚜렷해진다. 뒷산 절의 종소리가 웅웅하고 울린다. 스님은 이 시간에 일어나 종을 때리고 나의 숙취는 골을 때린다.
'아이고 머리야,
갈증으로 큰 컵에 물을 두 번 벌컥 벌컥 마시고 나니 걱정들이 밀려온다.
'초면에 내가 너무 나댄거 아니야? 혹시 말실수를 한건 없었나? 웃길라고 너무 무리수를 둔건 아닐까?'
어김없이 자기검열의 시간이 찾아온다. 나는 나에게 너무 엄격하다. 그렇다고 나 자신을 잘 컨트롤하는 것도 아니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냥 괴로움만 있다. 자기검열이 엄격한 나 자신을 또 검열하고 자책하고 있네, 미친.
숙취로 일어나는 새벽 시간은 참 거지같다. 왁자지껄했던 파티의 시간이 끝난 뒤 찾아오는 적막은 오롯이 나의 것이 된다. 희미하게, 파랗게 동이 터오는 창문을 보고 어제 손님이 주시고 간 여수에서 온 갓김치가 생각나서 라면물을 올렸다. 새벽 5시에.
'아, 나도 술에 쩔어도 침대 위에서 속편히 잘 자는 저 여자처럼 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여수에서 직접 키운 갓으로, 직접 담가주신 갓김치는 레알 신의 김치다. 갓에서는 대지의 풍요로움이 잔뜩 응축되어 있었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 까지 교회를 열심히 다녀서인지 하나님이 나를 완전히 손절하지는 못하고 이렇게 간간히 갓김치도 주시고 신라면도 주시고 하나보다. '한국에서 태어나 행복하다'라고 잠깐 잘못된 생각을 한 뒤에 신라면에 갓김치를 올려 후루룩 후루룩 먹으니 속이 약간은 풀린다.
라면을 먹고 롤 한판을 하고 나니 8시쯤 되었다. 10시까지 일을 가야하는데.
이 말인 즉, 오늘 하루는 피곤의 구렁텅이에서 흙빛 안색을 하며 하루를 보내야 되는 것을 뜻한다. 나이가 드니 회복이 안된다.
다시 한 번
'술을 진탕 먹어도 뒹굴 뒹굴 늦게까지 잘 자는 저 여자가 부럽다'
라고 생각한 뒤 에스프레소 한 잔 마시고 샤워를 하고 출근 준비를 했다.
술 먹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버릇은 참 개같은 것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