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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갱 May 11. 2020

연역법적 인간과 귀납법적 인간의 결혼

그것은 균형일까 균열일까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인간을 나눈다면 연역법적 인간과 귀납법적 인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연역법적 인간은 가설을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작은 목표들을 세우며 성취해 나간다. 달리기를 예로 들면 10km를 달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러기 위해 첫날 1km 달리기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10km 달린다.


 귀납법적 인간은 한 번, 한 번의 시도와 일상들이 모이다 보면 어느새 목표를 이루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달리기가 좋아 달릴 수 있을 만큼 하루, 이틀 달리다 보면 어느새 10km를 달릴 수 있게 된다.


 나는 귀납법적 인간이다. 달리기는 내 이야기다. 그저 달리는 게 기분 좋아서 시작한 달리기에 목표는 없었다. 하다 보니 15년 동안 유지한 취미가 되었다. 나에게 10km를 50분 안에 들어와야 하는 목표가 있거나, 멋진 몸매를 위해 달리라고 했으면 벌써 포기했을 것이다. 나 같은 인간에게 목표는 스트레스다.


 귀납법적 인간은 현대사회에 잘 안 맞는다. 하긴...'재밌게 즐기시다 보면 뭐라도 될 거예요 파이팅! ' 하는 회사가 있을 리 없다. 회사는 연역법이다. 매주, 매 달, 매 분기, 매 년 높은 목표의 숫자와 싸우고 달성하고자 한다.


 연역법적 인간들은 목표에 자극받고 달성하고자 노력하겠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애초에 목표라는 것을 보면 힘이 빠진다. 내가 세일즈로 일할 때도 목표는 잊으려 노력했고 다만 오늘 열심히 사는 일에 집중했다. 사람에게 할당된 시간과 에너지는 정해져 있어서 목표를 위해 열심히 하나, 목표를 잊고 즐기면서 열심히 하나 결과는 비슷비슷했던 거 같다.


 그렇게 살다 보니 이렇게 됐다. 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에서 살짝 빗겨서 나만 잘하면 되는 일을 혼자서 하고 있다. 네가 그렇게 목표도 없이 흘러가는 데로 사니까 그 모양으로 산다고 말해도 할 말이 없다.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하는 건 아직은 옵션에 없다. 나는 그냥 하루하루의 일과를 즐기며 살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근데 또 물 흐르듯 살다 보니 연역법적 인간과 사귀고 결혼을 했다. 와이프는 목표를 세우기를 좋아한다. 큰 목표를 세우고 세부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려고 노력한다. 그녀를 버티게 하는 것은 목표와 명분이다. 그러니까 회사에서도 인기가 많고 똑 부러지는 매력이 있다. 그녀가 나를 보면 속이 터질 것 같다.


 연역법적 인간과 귀납법적 인간의 동거는 꽤 많은 차이가 있다. 와이프는 만난 지 5년이 되는 시점인 지금도 나에게 항상 '그래서 어떤 관계가 되고 싶냐'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나의 짱구는 그제야 돌아가기 시작한다. 여기서 대답을 못하면 생각 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가끔씩 훅 들어오는 이 질문이 정말 어렵다. 보통은 어버버버하기 때문에 후속타로


-우리 관계에 대해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생각해보지 않았어?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데로 살아갈 거야?

-목표를 세우고 서로 노력해야지 않겠어?


 라는 질문이 들어온다. 그제야 뭔가 미안한 마음도 들고 괴롭기도 하다.

 솔직한 내 대답은


 -좋은 하루하루가 많았으면 좋겠어


 이다. 좋은 하루하루들이 쌓이면 좋은 동반자가 될 것이고 나쁜 하루하루가 많으면 우리는 나쁜 동반자가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1000 조각짜리 퍼즐을 맞추듯, 좋았던 하루가 밝은 조각, 나빴던 하루가 어두운 조각이라고 한다면 모든 우리의 하루가 모여 멋진 그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멋진 그림을 위해 오늘 하루의 조각을 디자인할 필요는 없지 않나 생각하다가도 와이프가 그래야 한다고 하면 그래야 할 것 같기는 하다. 왜냐면 그녀는 나보다 똑 부러지고 일도 잘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를 알아내고 인정하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이제는 서로의 성향을 인정하고 각자의 방법으로 함께 가고 있다. 와이프는 나름대로 관계의 목표를 세우고 나아가지만 나에게 그 목표를 강요하지 않는다. 오늘 하루만 괜찮으면 되는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준다. 나는 와이프가 목표가 흔들리거나 달성하지 못해 조급해하거나 불안해할 때 '저 연역법적 인간 같으니라고' 잠깐 생각한 뒤 이해한다. '뭐 어쩌겠어 다른 사람인데...' 하고.


  다른 타입의 두 명이 인생을 함께 가는 건 균형일까, 균열일까.

다만 내가 믿는 건 앞서 말한 것처럼 인간의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어 연역법이나 귀납법이나 결과는 비슷하다는 것이다. '목표를 세워서 열심히 달리는 사람과 목표는 개나 주고 하루하루 무탈하게 지내는 사람이 만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어요' 하는 동화 같은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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