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체험하는 계절의 느낌
중학교 미술 필기시험에서 보색에 대해 배웠는데 딱 하나 기억나는 게 검은색과 노란색이다. 검은색과 노란색이 함께 있으면 노란색이 두드러지게 보이는 효과였나 그렇다. 오늘 세상이 딱 그랬다. 회색빛 콘크리트, 회색빛 흐린 하늘을 바탕으로 노란색 단풍이 두드러져 보였다. 시멘트 덩어리와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이 이럴 때 유용하다. 흑백 배경에 단풍만 포인트를 준 것처럼 쨍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 길을 피돌이 와 함께 걷는데 기분이 좋았다.
날씨가 점점 차가워진다. 예전과 다르게 피돌이를 타고 다니면 날씨를 체감하게 된다. 바람, 햇살, 습도를 온몸으로 받으니 체감을 할 수밖에 없다. 어렴풋 꽃이 피면 봄이오, 땀이 나면 여름이오, 단풍이 들면 가을, 얼어 죽을 것 같으면 겨울이 아니라 그 모든 결과를 만들어준 이유들을 내 몸으로 체감하며 다니는 셈이다. 덕분에 더 생생하게 현재를 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여름엔 더워 디질꺼 같더만 가을이 되니 선선해서 좋았다. 피돌이와 함께 하기에는 최고의 나날들이었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멈추면 따듯하고 달리면 시원하니 이보다 더 좋은 날씨가 있을까. 심지어 이번 가을엔 미세먼지도 별로 없었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니 저 멀리 찬 공기가 지상에까지 내려온 듯하다, 손 끝이 시리기 시작하더니 이젠 제법 가만히 있어도 추운 느낌이 든다.
겨울을 원래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번 겨울은 더 그럴 것 같다. 피돌이와 이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주차장 한편에 세워두고 날씨가 풀릴 때 까지는 함께 하지 못한다. 피돌이는 고양이들의 안식처가 되어 겨울을 날 것이다. 요즘 스쿠터 의자에 고양이 발자국이 찍혀 있는 걸로 보아 고양이들이 위에서 잠을 자는 것 같다. 발자국이 참 귀엽다 생각했는데 어느 날 오줌 자국이 있는 걸 보고는 고양이 새끼들이 아니라 개새끼들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뭐 아무튼 이제 고양이들에게 피돌이를 양보할 때가 아닌가 싶다.
봄, 여름, 가을만 있어서 피돌이와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그럼 이별 없는 세상에서 우리 오랫동안 행복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생각해보니 그래서 태국이나 베트남 같은 동남에서 스쿠터를 많이 타고 아니나? 그곳 스쿠터들은 주인과 이 별 없이 항상 함께 할 수 있겠구나. 피돌아 다음에는 헬조선이 아닌 스쿠터 천국 베트남에서 태어나렴, 나는 북유럽에서 태어나고 싶다. 다음 생에는 둘이 만나지 말고 각자 행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