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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갱 Jun 02. 2020

집 놔두고 호캉스를 하는 3가지 이유

집 놔두고 왜 호텔에서 자?


 "집 놔두고 왜 호텔에서 자?"


 호캉스 이야기가 나올 때 내가 했던 말이다.

 여행지에서 호텔에서 자는 건 이해가 된다(에어비앤비라면 더 이해가 되고).

 근데 왜 서울 한복판에 우리 집이 있는데 옆 동네 호텔에서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방을 빌려야 하지?라는 의문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호캉스를 해본 적은 없었다.


 여행에 대한 욕구는 발작처럼 일어난다. 여행, 여행 노래를 불러도 시국이 시국인지라 아무 데도 갈 수 없는 지금 와이프는 다시 한번 호캉스를 말했다. 이제 좀 이해가 됐다. 여행은 못 가니 비슷한 기분을 느껴 발작을 가라앉혀 보자 하는 것이었는데 여전히 집 놔두고 모르는 방 빌려 자는 게 죄스러운 감정이긴 해서 명분을 찾았다.


 1. 우리 지금까지 호캉스 한 번도 안 가봤으니까.

 2. 어차피 당분간 해외여행 못 가니 그 비용으로.

 3. 호텔에서 리모트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4. 기타 등등


 명분이 충분해지고 다음 날 호텔을 예약했다. 돈 쓰기는 참 쉽다.




 강남에 위치한 호텔 카푸치노라는 호텔은 애견 동반이 가능한 몇 안 되는 서울 시내 호텔이었다. 강아지를 데리고 가려니 제약이 많아 호텔의 조건에 대해 따질 수는 없었다.


 와이프는 퇴근하고 와야 해서 혼자 시간을 보냈다. 수영장 옆에서 얼굴 수건으로 가리고 태닝 해야지, 와 진짜 좋겠다, 근처 올리브영에서 태닝 오일도 사서 해볼까 하고 수영복이랑 물안경이랑 잔뜩 챙겼는데 호텔에 수영장이 없다. 내 인생에서 정말 자주 있는 일이라 놀라지도 않았다.


 할 것이 없어져 널찍한 침대에서 책을 읽었다. 잘 읽혔다. 장강명의 에세이를 다 읽고 백 년 동안의 고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저번에 읽은 데를 찾아 이어 읽을까 하다가 그냥 처음부터 읽었다. 이게 몇 번째인지. 이 책의 제목에는 다 읽으려면 백 년 정도는 닥치고 읽으라는 심오한 의미가 있다.

 그러다 왜 우리는 호캉스를 가는지 생각했고 3가지 이유가 있으면 그럴듯해 보여 짜내 봤다.




 1.

 호텔의 쾌적함은 일상의 단절로부터 나온다. 매일매일 해야 하는 일들과의 단절은 우리의 시간을 온전히 보전해준다. 빨래와 설거지가 없는 세계에서 비로소 우리 자신에게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 단절이 커져 외국으로 확대되면 더 이상 스마트 폰의 진동과 국내의 잔인한 뉴스들로부터도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다. 몇십 년 전만 해도 모국어가 없는 해외로의 일탈은 자신의 세계와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했지만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나서는 여기나, 저기나 우리의 일상이 연장선상에 놓이게 된다.

 스페이스 X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니 이제 지구와의 단절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이 이번 프로젝트에 열광하는 이유도

' 이 지긋지긋한 일상으로부터 잠깐이나마 벗어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 때문이지 않을까. 화성은 스마트폰이 안될 거니까.

 

 지금 당장 외국으로의 여행도 어렵고, 화성은 더더욱 그러니 우리는 단절을 위해 호텔로 간다.

 


 2.

 호텔에는 있어야 할 최소한의 것들이 각을 맞춰 투숙객을 맞는다. 덕분에 우리는 삶의 희로애락으로 범벅이 된 잡동사니들과 잠시 동안 결별할 수 있다. 호텔에는 우리 집 식탁도 없다. 와이프와 끝없이 반복되는 끼니를 해결하고 웃고, 눈 흘기고, 싸우고, 화해하고, 침 뱉고, 똥 싸고, 오줌 싸고 했던 식탁이 없다는 것도 큰 의미다. 완전히 새로운 잡동사니들과 함께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다.

 우리는 새로운 물건들에 둘러싸여 객관적으로 우리의 삶을 돌아볼 수 있다. 그 안에 있을 때는 그냥 그렇게 굴러가는 것뿐이다. 그렇게 사는 게 삶이라지만 그냥 가끔씩은 빗겨 나서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잡동사니들을 경험하며 이불 시트가 문제였다는 것을 알게 될 수도 있고, 관계에 대한 정의가 서로 달랐음을 알아차릴 수도 있다.

 새로운 것에 둘러 쌓여 있을 때 보이는 문제를 직면할 수 있어서 우리는 호텔로 간다.

 


 3.

 물을 좋아하는 나는 수영장도 없고 사우나도 없다는 것에 실망했지만 조그마한 짐이 있다는 것에는 만족했다. 크고 화려한 짐에서 여러 사람들과 운동하는 것보다 작은 시설에서 혼자, 조용히, 찐따처럼 아령을 드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1층에는 카페가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언제나 따듯한 라테를 먹을 수 있다는 게 위안이 된다. 비가 오면 좋겠다. 비 오는 날, 머그컵을 두 손으로 잡고 핫쵸코 미떼 느낌으로다가 홀짝이고 싶다.

 옥상엔 루프탑 바가 있다. 서울을 내려다보며 위스키를 온 더 락으로 두, 세 잔 정도 마시고 알딸딸해지면 바로 객실로 들어가 깨끗하다 못해 소독약 비슷한 냄새나는 바스락거리는 시트에 몸을 감싸고 잠을 잔다.

 한 빌딩 안에서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한의 효용을 느낄 수 있으니 생존의 측면에서는 이런 시설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라고 쓰고 살이 찐다고 읽는다).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다가 이런 효용을 느낄 때 우리는

 '이렇게 살기 위해 개고생하며 살았지'

 하며 삶의 목적을 나름 타당화한다.


 호텔은 고단한 돈벌이의 합리적 이유를 충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호텔로 간다.



 

 호캉스는 비싸다. 가만히 살면 몇 십만 원은 쉽게 아낄 수 있는데 호텔에서 자는 순간 빠빠이다. 이 결정은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다. 우리는 멀쩡한 침대를 놔두고 굳이 옆동네로 가서 어색한 침대에서 잠을 청하고 수십만 원을 내야 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그래도 호캉스를 가야 한다면 이 글이 명분이 되었으면 좋겠다. 호텔은 우리에게 꽤 많은 가치들을 제공하고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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