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와 김홍의 <말뚝들>
올해 상반기에 읽은 두 권의 소설. 어쩐지 두 권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에 같이 감상문을 남긴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에 얼른 <작별하지 않는다>를 장만한 것이 재작년 가을이었는데 올해 3월에야 그 책을 읽었다. 그 동안 몇 권 읽어봤던 한강 작가의 소설이 내게는 어려워서 얼른 손이 가지 않았던 게 한 이유고, 그래서 읽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하느라 시간이 걸렸다.
2025년 한 해 동안 김석범의 <화산도>를 읽으면서 제주 4.3에 대해서 알아갔다. 알아갔다기보다는 4.3에 조금씩 익숙해졌다. <화산도>는 12권짜리 대하 장편소설이다. 1월부터 한 달에 한 권씩 읽으면서 77년 전 제주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일 년 내내 조금씩 생각했다. 소설이 다루는 시간은 1948년 3월에서 1949년 6월까지 겨우 16개월. 소설 속 사건의 진행 속도가 내가 실제로 책을 읽는 속도와 비슷했기 때문에 사건과 사람들이 내게 더 잘 스며들었다.
그리고 2026년 4.3을 앞두고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이 소설은 타인의 고통을 자기 몸으로 느끼는 것에 대한 것이다. 칼에 베이고 총에 맞아 몸이 찢어지고 구멍이 나서 피를 흘리다 죽는 타인의 공포와 고통을 상상해보는 것. 내 손가락 두 마디가 잘린 것이 그렇게 까무라치게 아픈데 말이다. 그리고 그 고통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에 대한 것이다. 봉합한 손가락의 신경이 죽지 않도록 끊임없이 상처 부위를 바늘로 찔러 피를 흐르게 하는 고통스러운 회복 과정처럼.
이렇게 쓰니 마치 문학 시험용 요약정리를 한 것 같다. 나의 한계다. 한강 작가는 이런 내용을 눈보라가 몰아치는 제주도를 배경으로 신비롭고, 희고, 차갑게 전달한다. 소설의 내용도 아름다운 문장도 눈송이처럼 녹아버리지만 그 느낌은 손바닥에 남아 있도록 말이다. 그 느낌도 아주 잠시 머물다 사라지겠지만.
신비로운 읽기 경험이었다. 아, 이런 게 예술이구나 싶기도 했고. 예전에 한강 작가의 <흰>을 읽었는데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참 슬픈 마음이 들었었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면 잠시나마 고통을 느끼게 된다. 손가락 한 마디가 잘리면 너무나 아파서 온 몸이 몸부림치는 것처럼, 우리 중 누군가가 참혹한 고통을 당하면 우리 모두가 조금씩은 다 같이 아플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는다.
김홍 작가의 <말뚝들>은 경쾌하다. 소설의 중반이 넘어가도록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지 궁금해서 책을 내려놓기 어렵다. 앞부분을 읽을 때는 오래 전 박민규 작가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떠올랐는데, 책표지와 책날개를 들춰보니 두 소설 다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다.
이 소설은 굉장히 현재적이다. 몇 년이나 지났다고 벌써 코로나 방역과 윤석열 퇴진시위를 능청스럽게 소설 속에 담아낸단 말인가. 세월호, 이태원, 코로나, 광화문... 이 모든 것들이 마구마구 떠오르는 소설 속 풍경이었다. 이렇게 조금은 웃기고 빠르게 흘러가고, 허구지만 마치 실제로 있었을 것 같은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 가운데 "도대체 말뚝들은 무엇인가?"가 궁금해지는데,
말뚝들은 타인의 불행에 대해 슬픔을 느끼는 것, 또는 타인의 불행을 내 슬픔으로 느낄 수 있도록 감정을 전달하는 어떤 매개체... 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이렇게 빠르고 복잡하고 나도 살기 힘든 세상에, 타인의 불행에 대해 슬픔을 느끼고 그의 불행을 덜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그게 이렇게 힘들어진 세상이라는 새삼스러움, 그리고 나도 전혀 그러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것에 잠시 슬픔이 느껴졌다.
그러면 이 두 소설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나는 <말뚝들>을 먼저 읽고 <작별하지 않는다>를 나중에 읽었다. <말뚝들>을 다 읽고 나서도 타인의 불행을 내 슬픔으로 느끼게 하는 매개체가 도대체 왜 말뚝이어야 했는지 의문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니 검은 통나무들이 등장했다. 주인공의 꿈에 나타난 수천 수만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남녀노소의 죽은 몸이자 영혼이었다.
1948년에 죽은 자들의 혼을 달래기 위한 검은 통나무들이 2025년에 말뚝들이 되어 돌아온다. 결국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국가폭력에 희생된 타인의 고통을, <말뚝들>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불리는 타인의 불행한 죽음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나. 타인의 고통을 아파하는 것, 타인의 불행을 슬퍼하는 것. 잠시라도, 한 순간이라도. 그리고 기억하는 것. 가끔씩이라도 좋으니, 오래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