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특목고 합격

기뻤지만 허무한 인생의 한 순간

by 허니스푼

둘째는 버겐 카운티 아카데미(BCA)라는 지역의 공립 특목고에 붙었다. 3,000명이 지원해서 300명이 합격하는 학교라서 입시운에 따라 떨어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붙었다는 기쁨보다는 떨어지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더 크다.


아이가 붙으면 많이 기쁠 줄 알았는데, 결과 발표를 둘러싼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고 이 일을 통해 기쁘기보다는 좀 허무해졌다.


발표는 오후 6시 예정이었다. 아이는 자기가 직접 결과를 확인할 테니 아무도 먼저 자기에게 말해 주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나도 너무 궁금한 걸 어떡하나. 그래서 내가 먼저 살짝 결과를 확인하고 아이가 알려줄 때까지는 모른 척 하려고 했다. 그래봤자 몇 분 차이나겠나.


그런데 아이는 한 시간이 지나도록 결과를 확인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해해 보려고 했다. 집에 친구가 와 있었으니 친구와 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 것일 수도, 같은 학교에 지원한 애가 아니니까 친구 앞에서는 예의상 확인하지 않는 것일 수도..... 아니 그런데 기다리고 있는 가족에 대한 예의는 어디 갔나? 본인은 결과가 안 궁금한가? 어쩜 저렇게 무신경할까? 아니 무신경한 척 하는 걸까? 부모를 무시하나? 본인이 결과를 확인하지 않으니 가족들이 합격을 기뻐할 수도 없었다.


결국은 7시가 넘어서 아이를 불러내 정색을 하고 결과를 확인해 보라고 했다. 아이는 방으로 돌아가 포탈을 확인하고 합격 소식을 전했지만 이미 기다리다 지친 내 기쁨은 망가져 있었다. 게다가 아이는 붙었다며 소리쳐 달려나오는 것이 아니라 가족 챗에 문자를 남긴 후 친구를 배웅하러 나갔다. 합격하면 와~ 하며 아이와 껴안고 기뻐할 것을 전날부터 기대했던 나는 김이 새 기분이 나빠졌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는 자기도 궁금했지만 어차피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는 것이고 한두 시간 늦게 확인한다 해서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물었다. 왜 본인의 합격 여부가 엄마에게 그렇게 중요하냐고. 궁금해서 그런 거라면 엄마가 직접 확인하고 자기에게만 말하지 않으면 된다며 말이다.


아니 너는 그럼 네 합격이 부모에게도 매우 기쁜 일일 거라는 생각을 안 했단 말이냐? 온 가족이 함께 결과를 확인하고 합격 소식에 기뻐하고 싶은 우리 마음은 어쩌고 말이다.


그건 아니지만 아이는 본인은 입시 결과에 적당히 무심하고, 또 무심하게 반응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봤자 입시’에 너무 매달리고 싶지 않다고. 그러니 가족들이 이런 걸로 야단법석을 떠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이렇게 간추려 쓰니 아이가 쿨한 것 같지만, 막상 이야기를 나눌 때는 이 아이가 덜떨어진 게 아닌가 싶었다. 아니면 겉멋이 들어 허세를 부리거나.


이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남편이나 친한 친구들에게도 하소연을 하며 계속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아이가 BCA에 합격하면 으쓱하고 신이 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본인이 신나하지 않는데 엄마의 감정표현이 앞설 수 있나. 아이의 특목고 합격은 본인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이 쓰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아이는 합격이 기쁘지 않았던 것인가. 그것도 아니었다. 아이는 본인 나름의 이유로 이 학교를 원했고, 본인 나름의 열심으로 입시를 준비했고, 본인 나름의 감정으로 합격을 기뻐하는데... 이 모든 것이 나랑은 같은 결이 아니었고, 아이는 '엄마와 한 팀으로 입시를 준비한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 뿐이다.


하긴, 우리는 한 팀으로 입시를 준비하지도 않았다. 아이는 시험 공부를 하고 지원 에세이를 쓰고 최종 인터뷰를 연습하는 과정에서 우리 손을 전혀 타지 않았다. 처음부터 우리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아이가 정말로 혼자 다 하게 둔 것은 아니고, BCA 준비학원을 보냈다. 관심이 없어서 손을 안 댄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일부러 모르는 척 했을 뿐.


어쨌든 우리가 한 팀으로 입시를 준비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아이의 모든 말과 그동안의 행동을 되짚어 볼수록 한 가지만 분명해졌다.


이 아이는 내 손을 타지 않는다는 것.


대여섯 살부터의 수많은 에피소드를 머릿속에서 되감아 본다. 어렸을 때는 긴가민가 했지만, 3-4학년 무렵부터는 이 아이는 자기가 관심없는 것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했다. 물론 어느 아이나 자기가 관심있는 것에 몰두하고 관심없는 것에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아이는 첫째와는 또 조금 달랐다. 뭔가 재능있거나 잘하는 걸 보고 이거다 싶어 조금 더 밀어주려고 하면 언제나 그만두거나 뒷걸음질을 쳤다. 마치 엄마의 기대치를 부담으로 느끼는 센서라도 달린 것처럼. 능력이 있지만 노력을 하지 않는 이 아이의 동기부여를 고민한 브런치 글만 지난 5년간 대여섯 편은 될 것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이 아이의 불안을 달래고 동기부여를 해 줄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할 수 있는 능력과 하겠다는 의지력 사이에 징검다리는 내가 놓아 주어야 한다"라고 썼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가면서는 내가 아이보다 앞서가면 안 되겠다며 내 자신을 달랬다. 그럴 때는 "성취는 본인 몫으로 남겨두고 부모가 같이 뛰려 들지 말아야겠다"라고 썼다. 그런데 중학교 3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아무 것에도 끈질긴 의지도 뾰족한 성취도 보이지 않는 아이를 보고 결국은 실망했다.


그렇게 돌고 돌아 깨달은 것은, 이 아이는 내가 거의 손대지 않아도 중학교 과정의 학업은 탄탄하게 마쳤으며 반대로 내가 이끌거나 밀어주려고 시도해 봤던 그 어떤 학업이나 예체능도 결국 물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 앞으로의 고등학교 생활도 이럴 것이라는 예상에 허무해졌다.


아이의 성향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이런 기대를 하고 있었던 거다. 동양인이 많고 학업이 강한 특목고에 들어가면 나도 아이와 같이 뛰어야지. 학교와 각종 액티비티 라이드도 하고, 엄마들과 학부모회도 참여하고, 필요하다면 학원이나 컨설팅도 알아보며 정보력 만땅 돌려야지. 이렇게 4년 동안 같이 뛰어 어쩌면 좋은 대입 결과? 그래서 온가족이 부둥켜안고 기뻐하는 장면 말이다.


어림도 없다. 이 아이는 내 손을 타고 싶어하지 않고, 내가 끼어들면 청개구리처럼 움츠러들 거다.


좋은 점도 있다. 나는 더 일찍 나의 다음 인생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모두 대학에 간 4년 후가 아닌 지금부터,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자식들에 대한 부담이나 기대를 많이 내려놓고 내 인생에 에너지를 기울일 수 있다. 아니 그렇게 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나중에 실망하고 서운할 게 너무 뻔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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