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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스푼 Feb 17. 2021

여유롭고 무료한 전업의 굴레

취업 소개를 거절했다.

전업엄마 생활이 무료해진다는 글을 쓴 지 얼마 안 돼서 지인에게 취업 소개를 받았다. 한국말을 잘 하는 미국변호사를 찾고 있는데 경력자일 필요는 없다며, 갓 졸업한 사람을 선호하지만 경력단절여성도 괜찮은데 일의 양이 많아서 아기가 아직 어린 엄마는 곤란하다고 했다.


하루 동안 생각을 하다가 내게 맞는 것 같지 않다고 거절했다. 집에는 메이드가 있고 아이들은 오랜 시간 학교에 있으니 일의 양이 많아도 괜찮을 것 같았는데, 진짜 문제는 올 여름에 한국에 다녀올 계획이라서.


한국에 다녀오려면 양쪽에서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아이들이 방학을 하자마자 한국에 가서 2주 격리, 한국에서 5주 머물고, 싱가포르에 돌아와서 또 2주 격리, 그리고 격리 끝나고 1주일 동안 새학기를 준비한 후에 개학을 맞을 계획이다. 미국 학교의 여름방학은 10주나 된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아이들과 부모님과 부대끼며 재택근무를 할 수도 없고, 작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시작하자마자 그렇게 긴 휴가를 낼 수도 없을 것 같다.


남편도 한국에 가긴 하는데, 매년 하듯이 우리보다 늦게 따로 와서 일주일 정도만 머문다. 1주일 있자고 앞뒤로 4주 격리하는 게 무리스럽지만 올해 우리에게는 부모님을 만나고 오는 게 그만큼 절박하다. 남편은 그동안 못 쓰고 남은 휴가도 아주 많은데다 격리 중에는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 이미 재택근무가 익숙해진 회사인데다, 애들은 주로 내가 보면서 남편 일하는 데 방해가 안 되게 하니까.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시차도 별로 없는 한국에 주말이나 연휴를 이용해서 짧게 자주 다녀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같이 갔다가 나는 금방 돌아오고 아이들끼리만 비행기를 타고 싱가포르로 돌아오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은 한국에 다녀오는 것이 매우 길고 불확실성이 큰 프로젝트가 되었다.


싱가포르에서는 외국에서 돌아오는 사람들은 (대만 등 극히 일부 국가에서 돌아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부 정부에서 무작위로 지정해주는 호텔에서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데다 비록 가족이라도 같은 비행편으로 들어온 게 아니라면 동반격리를 허락하지 않는다. 보호자가 함께 입국하지 않으면, 무작위로 배정된 호텔에서 아이들끼리만 2주 동안 격리해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물론 요즘 같은 시절에 아이들끼리만 비행기 태워 외국 보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한국을 다녀온다는 것부터가 무리지만, 다행히도 아이들 여름방학이 길어서 계획이라도 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현지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싱가포르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올 때는 재입국허가를 따로 받아야 하는데, 원하는 날짜에 입국허가를 안 내주는 경우가 많아서 우리가 계획한 날짜에 재입국을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이렇게 뭐 하나 마음대로 쉽게 빨리 되는 과정이 없다 보니 3개월 후에 한국행을 앞두고서는, 일이 많아 급히 사람을 찾는다는 작은 변호사사무실 같은 곳에 취직은 커녕 지원할 엄두도 못 내겠는 것이다.


한국을 안 가면 그만인데, 해마다 여름이면 다녀오던 걸 작년에는 못 갔으니 부모님도 아이들도 목을 빼고 기다리는 한국행이 되었다. 코로나로 많이 우울해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안 갈 수가 없다. 혼자 얼른 다녀올 생각도 해봤지만, 비록 일주일만 머물더라도 양쪽 자가격리를 포함하면 최소 5주 동안 집을 비우고 아이들을 남편과 메이드에게만 맡길 수가 없다. 그래서 아이들을 다 데리고 가면, 그렇게 어렵게 간 걸 일주일 만에 돌아올 수 없으니 기왕 간 거 좀 더 오래 있어야겠다 싶다. 그렇게 한국행 프로젝트로 여름 두 달을 보낼 계획이면, 그 전에는 어디라도 취직할 엄두가 안 나는 것이다.


물론 이런 마음으로는 어디서 무슨 일도 할 수 없다. 이렇게 부모님과 아이들이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을 모두 맞춰 주면서는, 나는 앞으로도 아무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나 자신을 포함한 모두의 기대치는 이만큼 올라가 있는데, 갑자기 나는 일을 해야겠으니 이젠 내게 기대하지 말고 살라고도 할 수 없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지만 내 스스로가 자신이 없고 우울해진다. 나뿐 아니라 내 가족이 삶의 많은 기회를 즐기고 누리면서 살게 하는 것은 그 자체로 내 기쁨이고 보람이었어서.


"전업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꽤 컸고 아웃소싱도 많이 하고 역할분담도 잘 돼 있어 힘들 만큼 집안일이 많지 않다. 그렇지만 조금씩 끊임없지. 오늘처럼 내일도 관리해야 할 집안을 바라본다. 난 여기서 어떤 미래를 보고 어떤 목표를 기대하는 걸까? 당연히 없다. 다만 하루하루를 완수해가는 과정을 즐길 뿐이다. 내 하루, 내 가정, 그리고 내 생활에 대해 균형과 통제를 유지하면서, 계절의 변화와 인간의 성장을 느끼면서 산다."


2018년 8월, 전업주부가 된 지 3개월 만에 썼던 구절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에 할 수 있는 중요한 것들 - (1) 학습습관 잡기, (2) 운동이랑 악기 배우기 - 이 두 가지를 내가 직장에 다니면서는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나도 아이들도 언제나 바쁘다 보니 먹성도 별로인 애들을 여유있게 신경써서 챙겨먹이지 못해 아이들은 비실비실해 보였고, 언제나 시간과 싸워야 했다. 아이들이 천천히 책을 읽을 여유도, 해 지기 전에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 시간도 없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면서 내가 원했던 것은 단순히 더 많은 시간이 아니라, 내 시간과 일상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시간과 일상을 내 마음대로 사용하는 데 익숙해지니까, 다시 시간이 매인 삶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하기가 너무 어렵다. 빡빡하게 짜인 삶이 주는 스트레스와 긴장감이 한편으로는 그리우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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