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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스푼 Apr 05. 2021

외국인 입주가정부

몸은 편한데 마음은 불편하다.

우리 아파트 앞길에서 지하철 역까지 이어지는 도보가 있다. 양옆에는 잔디가 깔리고 중간중간 벤치가 있는 보행자 전용 도로인데, 어느 정오 무렵 그 길을 걷다가 4-5세쯤 되어 보이는 백인 여자아이가 길 한 켠 잔디 쪽으로 나가 바지 허리춤을 잡고 쪼그리는 걸 보게 되었다.


"설마?...... 아니겠지?"


발걸음을 천천히 하며 지나가는데 과연 아이는 바지를 내리며 쪼그려 앉아 쉬를 하기 시작했고, 옆에 선 보호자는 아이의 유치원 가방을 들고 있었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잠시 서서 기다렸다가 아이가 일어선 후에 보호자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익스큐즈 미? 저기 지하철 역 앞에 화장실 있어요. 혹시 모르셨을까봐."

"그래서요?"

"다음부터는 이럴 때 아이 데리고 얼른 화장실에 가시라고요. 저기 바로 보여요, 화장실."


이 지하철역에는 특이하게도 역사 안이 아니라 바깥에 화장실이 있다. 우리가 서 있던 자리에서 걸어서 1-2분밖에 걸리지 않는 곳이었다. 지하철역 바로 앞이라서 보이기도 잘 보였고. 도대체 지척에 화장실을 두고 왜 여기서 지나가는 사람들 앞에서 아이 용변을 보이는지 난 이해가 안 됐다.


"애가 쉬하는 건데 뭐 어때요?"

"아니, 가까운 데 화장실이 있으니까 그렇죠."

"애가 쉬를 어떻게 참아요?"

"그리 급했으면 안고 뛰었어도 1분밖에 안 걸려요. 그리고 그렇게 어리지도 않네요." (아이는 안경을 쓰고 있었고 4-5살은 되어 보였다.)

"아니, 어린애가 쉬하는 거라니까요"


"어린 아이라도 그래요. 내 아이였다면..."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내 아이였다면, 나는 요 앞에 화장실을 두고 길에서 용변을 보이지 않을 거예요."


사실 내 입에서 나오려던 말은 "내 아이였다면, 나는 우리 집 메이드가 길에서 아이 엉덩이를 까고 용변을 보이게 놔두지 않을 거예요." 였다.


그 아이의 보호자는 머리를 짧게 깎은 동남아 메이드였다.




며칠 동안 그 날 일을 되새겼다. 나는 남의 일에 잘 끼어들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왜 아이에게 길에서 용변을 보이는 보호자에게 끼어들었을까? 아주 가까운 곳에 화장실이 있다는 걸 혹시나 몰랐을까봐 알려주려는 동네 주민의 마음이 첫 번째였다.


그런데 그 보호자가 동남아 메이드가 아니었어도 내가 끼어들었을까? 혹시 여기가 한국이었고 그 보호자가 한국 아줌마 또는 할머니였다면? (역시나 끼어들었을 것 같다. 한국말로 했다면 좀더 부드럽게 말할 수 있었겠지.) 아이도 싱가포리언이고 보호자도 부모나 조부모로 보였다면? (그래도 끼어들었을 것 같다. 화장실이 바로 저기 있어요 하고.) 아이 보호자도 백인이었다면? (진짜 웃기게도, 그랬으면 안 끼어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백주 대낮에 길에서 딸래미 엉덩이 까고 소변 보이는 이상한 백인 여자라면 성격도 보통 아닐 것 같아서 괜히 싸움날까봐.)


그래, 내가 상대방이 동남아 메이드라서 쉽게 보고 가르치려 한 건 아니었다고 마음속으로 몇 번씩 확인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부정할 수 없는 건, 그녀에게 참견할 때 나는 그녀를 나와 동등한 보호자로 보기보다는 그녀에게 아이를 맡긴 고용주의 입장에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 메이드가 화장실을 지척에 두고도 내 아이를 길에서 용변을 보인다면 나는 누군가가 그녀를 저지해 주기를, 그리고 가능하다면 나에게 그걸 알려 주기를 바랐을 것이었다.




싱가포르에 오니까 뭐가 좋아요? 흔히 듣는 질문이고 외국인들끼리도 초면에 자주 나누는 대화 주제다. 상대방에 따라 답은 다양하지만 지금 나에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도시 생활의 편리함"이다. 코로나까지 겹쳐서 모든 것이 가까운 거리에서 배달로 해결되니 더욱 그렇다.


대신 싱가폴 생활의 나쁜 점은 "모든 것이 비싸요"다. 미국에서 우리 동네도 굉장히 물가가 높은 축에 들었다. 그런데 여기는 돈으로 편리함을 사는 크고 작은 기회가 생활 모든 곳에 촘촘히 박혀 있어서, 작정하고 의지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고도 돈으로 슬금슬금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 입주메이드가 청소와 빨래를 하고, 장을 보고 요리를 한다. 싱가포르의 가장 편리한 점과 가장 마음 불편한 점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싱가포르를 떠날 때 가장 좋은 일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메이드 없이 사는 것이라고 말할 것 같다.


그럼 지금 메이드를 내보내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일부러 내 의지로 그러게 되지가 않는다. 한 번 익숙해진 편리함을 내던지기가 쉽지 않다. (1) 여기는 메이드가 있다는 걸 전제로 아파트나 가전제품을 만들었는지, 부엌이 너무 좁고 환기도 잘 안되고 집에서 가장 우울한 공간인 데다가 아파트에 빌트인돼 있는 세탁기나 건조기도 작고 작동시간이 오래 걸린다. (2) 이미 나도 가족들도 싱가포르에서는 각종 집안일은 다른 사람이 다 하는 데 익숙해져 있어서 여길 떠나 생활의 조건을 통째로 바꾸지 않는 한 한 번 들인 습관들을 바꾸기가 귀찮다. (3) 남들도 다 메이드를 두고 집안일을 안하고 있다.


그러면 다음 질문은, 왜 메이드가 있는 생활에 불만을 갖느냐, 가 될 것이다. 내보내고 싶지도 않으면서 왜 메이드 없이 살고 싶은 거냐고?


불편해서 그렇다. 나와 다른 계급에 속하는 사람이랑 한 집에 살면서 매일 부대끼는 게, 그리고 우리 집 집안일을 대부분 맡아 하는 사람을 좋아할 수도 고마워할 수도 없는 상황이 싫어서 그렇다.


내가  사람이랑 다른 계급에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우리는 고용주와 고용인일 뿐이고, 비록 내가  사람보다 부유하지만 그건 경제적인 조건일 뿐이라고. 우리가 계약으로 한 집안에 묶이지만 않았으면 걸로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싱가포르에서는 고용주와 고용인으로 같이 묶인 이상  사람은  책임과 보호 아래의 1인이 된다. 내가 주는 월급은 그대로 본국의 가족에게 송금될 것이고, 여기서 그에게 필요한 주거와 식사와 생필품은 전부 내가 제공한다. 아프면 내가 병원비를 댄다. (그래서 싱가포르에는 같은 병원에도 이주노동자들이 이용하는 저렴한 병동이 따로 있다.)  사람은  나라에서 임신할  없고 결혼할  없다.  집에서 일한다는 이유가 아니라면  사람은 2 내로  나라를 떠나야 한다. 본인을 책임질 다른 고용주를 구하지 않는 .


가끔 가다 메이드와 가족처럼 잘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사정을 물어보면 대부분은 그 집 아이가 어릴 때부터  한 사람이 계속 키워준 경우다. 아이를 키워 줬고, 그래서 아이와 메이드 사이에 강한 유대관계가 생겨나고, 아이의 습관과 취향을 잘 알아서 양육자가 되는 경우에는 메이드가 집안에서 중요한 사람이 된다. 이렇게 강한 유대감과 책임감, 고마움으로 묶인 경우는 이상적이지만 매우 드물다.


다음으로는 메이드 없이 생활이 불가능한 싱가포르 가정들이 있다. 부모 모두 집안일은 거의 안해 봤고 요리라곤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맞벌이 가정. 그래서 어디 외식이나 외출, 여행이라도 할라치면 아이를 챙길 메이드를 언제나 동반하는 사람들. 이런 경우는 메이드가 너무 필요해서 중요한 사람이 된다. 두 경우 다 결국은 "아이"가 중심에 있다.


우리 집처럼 메이드가 아이를 돌보지 않고 집안일만 하는 경우에는 좀 더 관계가 불편하고 긴장이 흐른다. 왜냐면.... 집안일만 하는 사람은 바꿔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꼭 저 사람이어야 할 이유가 없다. 집안일을 내 취향과 습관에 꼭 맞게 잘해 준다면 다를지도 모르겠다. 음식을 우리 입맞에 꼭 맞게 하시는 아주머니라든지, 우리 가족의 필요와 스케줄을 잘 알고 야무지게 우리를 챙겨 주시는 분이라던지.


그런 메이드는 거의 없다고들 한다. 우리집 메이드도 그렇고. 나도 여기서 메이드를 고용하면서 (지금이 두 번째 사람이다), 메이드가 일하는 방식도 우리 가족과의 관계도 너무나 내 기대치와 다르고 미국에서 한국인 내니 아주머니들을 겪었을 때와 달라서 혼란스러웠다. 다른 사람들과도 많이 이야기해 봤지만, 결론은 고용주 가족들의 취향과 습관에 맞춰 정성껏 집안일을 하는 메이드는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집 친구가 일을 못하는 건 또 아닌데, 인간 가전제품처럼 프로그램 세팅한 대로, 시키는 대로만 한다. 아이들 아침식사에 곁들여 딸기를 내라는 말을 하면 딸기에 질려 더 이상 못 먹을 때까지 매일 딸기만 내기 때문에 딸기를 사흘 내면 다음에는 사과로 바꾸라는 말을 따로 해야 한다. 음식을 했을 때 맛을 보지 않고, 우리들의 반응에도 관심이 없다. 시킨 재료와 시킨 레시피대로 시킨 음식을 만들었으니까 거기까지로 끝이다. '우리 살림을 살아주시는 아주머니'에 대한 기대치는 낮아지고 낮아졌다.


좀더 현실적인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한 달에 70만원 받고 정성껏 남의 집안일을 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 돈 내고 하루 한 번 집안 청소하고 세 번 설거지만 해줘도 충분해요. 더 기대하지 말아요. 그 말이 제일 맞는 것 같다. 우리의 기대치도 관계도 거기에 맞춰졌고 이런저런 갈등은 더 이상 없게 되었다. 메이드도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 빨리 정해진 일만 마친 후 얼른 자기 방으로 사라지고, 나는 그 이상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모른 척 데면데면 산다. 그런데 하루 종일 집에 둘이 같이 있으면서 이렇게 서로를 투명인간 취급하면, 당연히 서로를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된다.


일 시키고 일 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접점이 없는데 우리가 한 집에 살고 있다면, 한 사람은 음식을 하고 다른 사람은 먹지만 그 음식을 우리가 같이 앉아서 먹는 일은 없다면, 내 집의 가장 열악한 한 구석이 저 사람의 유일한 거처라면, 아닌 척 하려 해도 우리는 결국 계급이 다른 두 사람이다. 만날 일 없이 살았으면 오히려 몰랐겠지만. 난 결국 그게 제일 불편했다.




그리고 싱가포르는 그 불편한 진실과 부대끼면서 다들 모른 척하고 사는 곳이다. 인구 580만 명, 가구수 137만 호의 나라에 25만 명의 외국인 메이드가 있다. 자녀를 키우는 가정의 1/4 이상이 외국인 메이드를 두고 있다고 한다. 이주노동자들에게 발급된 노동비자(Work Pass) 수가 85만 개이니, 입주도우미를 제외하고도 60만 명의 노동자들이 이 나라에서 일하고 있다. 고학력 전문직 외국인은 처음부터 노동비자가 아닌 고용비자(Employment Pass)를 받기 때문에 같은 외국인 인력이라도 누릴 수 있는 사회적 권리가 다르다.


한국과 미국이라고 상황이 크게 다르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난한 나라에서 불리한 조건으로 이주해 온 노동자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육체노동을 담당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에서 동남아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대우가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미국에서의 처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싱가포르에는 그런 사람의 수가 인구 대비 너무 많고, 너무 가까이 있다. 집에서 같이 사는 입주도우미까지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뻔히 보이는데 보이지 않는 척하며 사는 게 이렇게 불편한 일인 줄 몰랐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거기 익숙해지는 것이다. 처음에 싱가포르에 왔을 때는 신기하고 이상하게 보였던 풍경들을 이젠 그러려니 한다. 나이 많은 할머니가 걸어가시고 젊은 메이드가 양산을 받치고 따라간다. 어린 백인 아이들이 뛰어가고 동남아 메이드가 가방을 들고 쫓아간다. 물론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서 메이드랑 같이 외출하지 않고 그녀에게 아이들 외출을 맡기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럴수록 우리집 메이드는 대인서비스를 통해 우리와 유대관계를 형성하기보다는, 점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 된다. 오히려 우리와 말도 섞지 않는 사이가 된다.


왜 노동은 저렴할수록 그 가치가 떨어지는가? 왜 집안일은 정성이 깃들여 있지 않으면 그 가치가 더 낮은가? 이제 나는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것에 돈과 권력의 논리가 얼마나 많이 작용하는가를 매일 겪고 있다. 내가 반나절을 털어 글 한 편을 쓰고 있는 동안 내가 고용한 사람은 영혼 없는 표정으로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장을 본다. 몸이 편안하면서도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싱가포르를 떠나는 날 내게 가장 후련한 것은 아마 메이드와의 작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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