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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스푼 Apr 30. 2021

실패만 거듭한 악기 교육

도대체 피아노는 왜 쳐야 하는 것인가?

아이들 예체능 사교육 이야기만 계속하지는 않으려고 했는데, 결국 다시 이 주제로 돌아오게 되었다.


성별과 출생순서가 다른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가장 크게 실패한 것 중 하나는 첫째의 악기교육이다. 실패의 맛이 쓰고 내가 어리둥절한 이유는, 악기교육에 큰 욕심을 안 냈기 때문이다. 욕심을 안 내면 실패도 없을 줄 알았다. 아이더러 악기 하나 멋드러지게 연주해보라는 욕심도 없었고, 아이를 다그쳐 하루에 한 시간씩 연습시켜 악기에 정 떨어지게 할 마음도 없었다.


한 가지 원했던 것은, 지루하더라도 하루 10분씩 꾸준히 계속하면 어느 순간 실력이 늘더라 하는 성장의 경험이었다. 그렇게 해서 10분의 연습시간이 30분이 되고, 뚱땅거리던 소음이 그럴 듯한 음악이 되는 집중력과 끈기의 시간, 이를 통해 형성되는 자신감을 아이들이 직접 경험하길 바랬다.


이제 와 돌아보면 내가 자만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가 아이들에게 하루 10분씩 꾸준히 악기를 연습시키는 일이다. 내가 하기도 힘든 일인데, 내가 하는 게 더 쉬운지 아이들을 시키는 게 더 쉬운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부정하고 싶지만, 엄마가 욕심부리고 다그치지 않으면 아이들은 악기 연습을 하지 않는다.


1. 바이올린


첫째는 1학년 2학기 때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바이올린이었던 이유는, 그 때 집이 작은 아파트여서 피아노를 들여놓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1~2년 내로 큰 집으로 이사를 갈 계획이었어서 임시로 키보드를 들여놓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아이가 손으로 하는 모든 걸 잘했다. 만들기, 그리기, 오리기... 부모 모두 바이올린을 한 적이 없다 보니 아무 기대나 참견 없이, 잘한다 신기하다~ 하며 즐겁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결론은 실패였다. 내가 출근한 동안 아이는 절대로 연습을 하지 않았다. 초보는 바이올린 소리도 못 내는데 연습을 하지 않으니 다음 번 선생님이 오시는 시간에는 지난 시간에 배운 음계는 이미 다 잊어버렸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나면 이미 늦어 아파트에선 바이올린을 연습하기 어려웠다. 주말이 되면 우리는 피곤했고 아이는 벌써 다 잊어버려서 어떻게 연습해야 하는지 모른다며 징징댔다. 나는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몰랐고, 남편이 이럴 거면 차라리 그만두라며 언성을 높이곤 했다. 바이올린 선생님은,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게 아니면 이 나이에 혼자 연습하는 아이는 없으니 아이의 악기는 어머님의 의지에 달려 있다며 나를 압박헀다.


도레미파솔라시도도 떼지 못하고 6개월 만에 바이올린을 그만뒀다. 아이보다도 내가 힘들어서였다. 직장에 다니고 있고 어린 둘째도 있는데, 연습 때문에 아이와, 남편과, 베이비시터 아주머니와, 바이올린 선생님과의 자잘한 갈등을 감당할 수 없었다. 잔소리로 연습을 강요하는 대신 동기부여를 해 주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아무것도 통하지 않았다. 역시 현악기는 아이가 천재거나 부모가 극성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끝을 냈다.


2. 피아노


3학년 때 피아노를 시작했다. 이젠 큰 집으로 이사간 터라 피아노도 들여놨다. 너무 좋고 비싼 악기를 들여놓으면 피아노가 아까워서 아이들을 닥달하게 될까봐, 무난한 피아노를 중고 매입했다. 킨더가든에 입학한 동생도 같이 시작했다.


이번에는 하루 15분씩 거의 매일 1년 동안 꾸준히 연습했다. 이 때 알게 됐다.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면 아이들의 음악교육은 타이밍과 상황이 제일 크게 작용한다는 걸. 아이에게 바이올린보다 피아노가 더 잘 맞았다기보다도 3학년이라는 나이, 그리고 집안 상황이 악기 연습하기에 더 좋아서 두 번째 시도가 더 성공적이었다. 넓은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갔으니 저녁에도 남 눈치 안 보고 하루 10분이나마 연습을 시킬 수 있었고, 내가 피아노를 칠 줄 아니까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은 도와줄 수도 있었다.


둘째에게는 좀 달랐다. 누나랑 같이 피아노를 시작한 둘째는, 처음엔 얌전히 잘한다 싶었는데 일 년 지나니까 이제 피아노를 그만두고 싶다며 투정이었다. 지루한 연습이 싫은 나이였고, 누나가 쭉쭉 앞서가는 걸 보니 저걸 따라잡을 수도 없을 것 같아 더 하기가 싫었던 것 같다. 누나보다 집중력과 끈기가 좋은 아이지만 3살이란 나이차, 그리고 레슨시간이 더 긴 누나를 이길 수 없었다. 근데 이놈은 경쟁심도 많아서 더 힘들었을 것이다. 피아노 레슨시간을 늘려서 아예 더 실력을 키워줘야 하나, 아니면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악기로 바꿔줘야 할까 조금 고민하다 말았다.


3. 클라리넷


첫째가 4학년 때 변수가 생겼다. 4학년부터 시작할 수 있는 학교 밴드에서 클라리넷을 하던 아이가, 4학년을 끝내고 싱가포르 이주를 앞두고서 본인은 피아노보다 클라리넷을 하고 싶다고 선언했다. 특정 악기를 내 욕심으로 고집하는 건 아니니까, 그래 네가 클라리넷이 좋다면 그게 좋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어차피 피아노를 짊어지고 싱가포르에 갈 수도 없었다. 새 학교에 전학가면 밴드부에 들어가 클라리넷을 계속하기로 결정한 후, 피아노는 처분하고 클라리넷을 사서 싱가포르에 들고 갔다.


싱가포르에 와서 보니 새 학교의 밴드부는 6학년부터 시작이었다. 5학년 한 해가 중간에 떴다. 그리고 코로나가 와서 어차피 관악기는 학교에서 단체로 하기 힘들어졌다. 그렇게 손 놓고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클라리넷에 흥미를 잃었다. 아마도 처음부터 클라리넷이 좋았던 게 아니라, 별도의 레슨도 없고 연습도 할 필요 없이 밴드부에서 친구들이랑 모여서 적당히 뚱땅거리는 게 좋았던 것 같다. 미국에서 사 온 $600 짜리 클라리넷은 그렇게 옷장 속에 고이 자리잡았다.


4. 다시, 피아노


5학년이 끝나갈 무렵, 더 이상 클라리넷에 관심이 없어진 딸은 넌지시 피아노를 다시 치고 싶어했다. 이 나이쯤 되니까 대부분의 친구들이 은근히 피아노를 잘 치는 것에 부러움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 어차피 여행이나 외출이 줄고 거리두기 때문에 대면 이벤트가 적어지니 시간 여유가 늘었는데, 대면수업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은 이럴 때 해두자는 마음으로 서둘러 피아노 선생님을 수배하고 새 피아노를 들여놨다. 6학년 시작할 때 피아노 레슨을 시작해서 이제 한 학년이 끝나간다.


처음에는 본인이 원한다며 시작했고 어느 정도 철도 들어 하루 15-20분 정도의 연습은 나름 꾸준히 하는 것 같았는데, 이미 6학년은 너무 바빴다. 내가 많은 걸 시키지 않는데도 본인의 관심사가 다양해졌다. 학교 클럽에서 운동도 하고, 친구들과 수업 과제를 핑계로 만나서 놀거나 각종 생일파티도 많아졌다. 집에 오면 2-30분씩 틈틈히 전화기를 들여다볼 여유는 있어도 피아노를 치기엔 마음이 떴다. 재미있는 일이 많으면 그거 먼저 해야 해서, 숙제나 공부가 밀리면 그거 먼저 해야 해서, 피아노 연습은 이제 일주일에 한 번 할까말까 한 것이 되어 버렸다. 따로 강요하지 않으면 그나마도 안할 것 같다. 7학년에는 더 바빠질 것이다.


반대로, 지금은 3학년 동생의 피아노 실력이 날로 늘고 있다. 내가 봐도 이 아이의 재능이나 집중력이 누나보다 훌륭한데, 킨더 때는 너무 어려서 누나를 따라갈 수 없었다면 지금은 이 아이의 피아노가 궤도에 오를 나이가 됐다. 조금이나마 누나보다 어렸을 때 배워둔 경험이 있어서인지 같은 3학년 때도 이 아이 쪽이 출발점이 앞서 있었다. 그리고 3학년은 아직 일상이 단조롭고 시간이 많아서 하루 20분씩 매일 연습시키는 게 어렵지 않다. 지금처럼만 계속한다면 이 아이는 피아노를 잘 치는 수준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


5. 결론


이제 와 우리 아이들을 되돌아보면 가장 일반적으로 성공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남들이 다 초등 1학년 무렵에 피아노를 시작하는 게 괜한 극성이 아니었다.


악기 교육은 1학년 정도에 시작하되 첫 2년은 그냥 레슨비 버린다 생각하고 조바심을 내려놓는다. 연습은 매일도 아니고 할 수 있을 때마다 10-15분 정도만 하면서 야단 안 치고 서로 스트레스 없이 버티는 게 목적. 3학년쯤 되어서 머리가 크고 자율성도 생기면 연습의 양과 수준을 늘려 확 밀어붙여 볼 만하다. 예체능 중 뭘 가르쳐도 3-5학년이 골든타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5학년이 넘어가면 아이도 취향이 생기고 자기 관심사가 다양해져 그저 그런 수준의 악기를 연습하는 데는 영 재미를 못 느끼게 된다. 그렇게 되기 전에 어느 정도 잘 하게 만들어 놓지 않으면,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흐지부지 끝나게 될 것 같다.


첫째는 묻는다. "엄마 그런데 피아노는 왜 쳐야 되는 거야?"


나도 답이 없다. 지루하더라도 꾸준히 계속하면 어느 순간 실력이 쑥 느는 성장의 경험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게 시작이었지만, 그게 꼭 피아노 또는 악기여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지금은 그냥 이렇게 이야기한다.


"엄마도 몰라. 그런데 이 다음에 네가 노래든 춤이든 악기든 뭐라도 하려면 기본적인 음악 지식이 필요한데 그걸 제일 잘 배울 수 있는 방법이 피아노야.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필요할 수도 있어. 그런데 피아노는 지금 배우지 않으면 너한테 나중이 없어. 앞으로는 더 바빠질 거야. 고등학교, 대학교, 어른이 되면 더욱. 그래도 지금이 제일 시간이 많은 때니까, 일단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배워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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