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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스푼 May 25. 2021

코로나 시대 두 번째 여름

올해도 집에서 여름방학을 보내야 한다.

처음 코로나 사태가 시작했을 때는 설마 이게 여름까지 갈 줄은 몰랐다. 여름이 되어서는 설마 이게 다음해 여름까지 갈 줄 몰랐다. 그렇게 싱가포르에서 두 번째의 코로나 여름을 시작한다.


싱가포르는 작년 봄에 두 달 동안 강도 높은 거리두기를 했다. 그렇게 일단 코로나를 잡은 후, 여름부터 단계적으로 국민들을 풀어주었다. 아이들 학교는 8월 초에 개학했는데, 비록 여러 가지 제약조건이 있기는 했지만 하루도 쉬지 않고 대면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남편도 매일 출근했다.


그 동안 지역감염은 거의 없었지만 해외유입을 막기 위해 자가격리 규정은 점점 더 엄격해졌다. 싱가포르에 입국하는 사람들은, 여기 사는 사람조차도 자기 집에서 격리할 수 없고 무작위로 지정되는 호텔에서 격리해야 한다. 비싸고 답답하다. 엄격한 자가격리는 해외출국을 억제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대신 나라 밖으로 나가지만 않는다면, 조금 어색한 방식으로나마 대부분의 모든 활동을 걱정 없이 계속할 수 있었다. 이제 와 돌아보니 그게 바로 뉴 노멀이었다.


뉴 노멀이 깨지기 시작한 건 올해 5월 초부터였다. 올해 상반기에 백신 접종은 그런대로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더 이상 저녁뉴스의 확진자 숫자에 신경쓰지 않는 동안 슬금슬금 인도발 변이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던 모양이다. 종합병원 한 곳에서 이미 1, 2차 백신접종을 모두 마친 의료진들을 통해 변이바이러스가 확산된 것이 결정적이었다. 변이바이러스 케이스 중에는 2주의 격리기간이 다 끝나고 난 후에야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지역감염 0이라는 높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싱가포르는 다시 강경한 거리두기를 시작했다.


5월 내내 거의 매주 새로운 집합금지 및 국경통제 정책이 쏟아져 나왔다. 처음에는 (극히 일부의 코로나 청정국에서 출발한 여행객을 제외한) 모든 입국자들의 호텔격리가 2주에서 3주로 늘어났다. 격리비용도 50% 상승했다. 다음으로는 시민권자와 영주권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입국이 7월 초까지 금지되었다. 코로나 시국에서 모든 외국인은, 신규입국과 재입국의 구분 없이, 사전 입국허가를 받아야 싱가포르에 들어올 수 있다. 그런데 이미 발급해 준 입국허가를 모두 취소하고 당분간 신규신청을 받지 않는 것이다. 과연 7월 초에 입국허가가 재개될지도 알 수 없지만, 재개된다 해도 이전에 입국이 취소된 사람들을 먼저 들여보내 주기 때문에 올 여름에 새로 출국하는 사람들은 과연 언제 자기 차례가 되어 귀국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한국과 싱가포르 양쪽을 합쳐 격리 5주를 무릅쓰고 한국에 가는 것도 부담인데, 그렇게 해서 나가도 아이들 개학 날짜에 맞춰 싱가포르에 돌아올 수 있을 가능성이 매우 낮아졌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여덟 명까지이던 집합금지 정원이 다섯 명으로 줄었고, 다시 두 명으로 줄었다. 식당과 까페 등 모든 식음료업장에서 포장 및 배달만 가능하고 일체의 외식이 금지되었다. 다시 재택근무가 기본이 되었고, 초중등 모든 학교수업은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상황이 여기까지 왔을 때 우리는 올 여름 한국행 비행기표를 취소했다. 아이들 학교는 방학을 2주 남긴 채 서둘러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다. 작년과 달리 올해 바이러스는 아이들도 감염된다 해서 학교를 일단 닫았을 뿐 아니라, 앞으로 한 달 간 18세 이하의 어린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모든 종류의 대면수업이나 활동이 금지되었다. 어수선한 와중에 나는 목표했던 프랑스어 시험을 엉성하게 치렀고, 백신 1차 접종을 마쳤다.


5월의 마지막 주. 온라인 수업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내일은 싱가포르의 부처님 오신 날 공휴일이고 모레는 종업식이다.


그렇게 10주간의 긴 여름방학이 다가온다. 별러 왔던 한국행은 취소되었다. 밖에서 두 명 이상 모이거나, 한 가정에 하루 두 명 이상 방문할 수 없다. 어린이들은 일대일 야외 스포츠 레슨을 제외하고는, 공부든 예체능이든 아무 종류의 대면수업을 할 수 없다.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까?


미국 학교는 코로나가 아니라도 여름방학이 두 달이 넘는다. 여름이 지나고 오면 아이들이 그동안 배운 걸 하도 까먹어서 여름 동안의 학력저하 현상을 summer slide 라고 부를 정도다. 공부 때문이 아니라도 맞벌이 가정은 맞벌이대로, 부모 중 한 명이 집에 있는 경우에도 애들과 여름 내내 하염없이 집에 있으면 서로 힘드니까 아이들을 여기저기 여름캠프에 보낸다. 이 캠프는 자고 오는 "캠핑"이 아니라, 반일제 또는 전일제로 운영하며 아이들을 맡아주는 방학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의 운영 주체는 다양하다. 교회, 성당, 지역 커뮤니티 센터, 유치원, 사립학교, 태권도나 발레 등 예체능 학원에서 모두 캠프를 연다. 내용과 가격은 천차만별이라 각 가정마다 위치, 가격, 프로그램의 내용 등 자기 상황에 맞는 캠프를 찾는다.


우리 아이들도 어렸을 때는 여러 가지 캠프를 다녀 봤는데, 내가 직장을 그만둔 이후로는 캠프 다니는 것을 완강히 거부한다. 본인들은 엄마랑 집에 있는 게 제일 좋다고 우기는데, 나도 어차피 내 마음에 꼭 드는 캠프가 없으니까 아이들을 아무데도 안 보낸다. 올 여름에는 다른 건 아무것도 안 배우더라도 코로나 시대에 자가격리 하면서 어렵게 한국 다녀오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이모 사촌들을 만나는 것으로 의미를 찾으려고 했는데 그 계획이 무산되었으니, 급히 엄마표 여름캠프를 오픈해야 할 판이다.


'엄마표'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데, 뭘 가르치는 건 엄마가 할 일이 아니라 전문기관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학교를 안 가는 긴긴 시간을 집에서 뒹굴거리며 보내면, 그 시간 속에는 엄마의 취향이나 개성, 우선순위가 짙게 배어 있기 마련이다. 엄마가 쉬이 허락하지 않는 것, 엄마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 엄마가 느슨하게 용인하는 것이 모두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아이들은 거기에 길들여진다.


집에서 하루종일 부대끼며 아이들과 모든 생활을 공개하고 공유하며 지내는 시간. 그 속에서 서로의 갈등을 피하고 부담을 줄이면서도 여름에 걸맞는 휴식과 성장을 도모할 것을 생각하면, 한편 어깨가 무겁지만 뿌듯하고 의욕이 솟아 오르기도 한다. 작년 여름에도 했다. 이젠 경험이 쌓였으니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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