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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스푼 Apr 12. 2021

서로 다른 두 아이들

성향이 다른 아이들이 각자 관심사를 찾아간다.

둘째는 해야 할 과제를 수행하는 걸 잘한다. 피아노 수학 운동 독서... 해야 할 일들을 시간 맞춰 집중해서 다 끝내고 게임타임마저도 절제할 줄 알아서 눈치를 못 챘는데, 그렇게 해서 만든 여가시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하면, 즐겨 하는 활동은 모두 스크린 관련이라는 걸 발견했다.


하고 싶어하는 일은 로블락스 게임 아니면 로블락스 게임 만드는 것 밖에 없고 나머지는 전부 해야 하니까 하는 일들이다. 하는 동안에는 나름 즐기기도 하지만. 해야 할 과제를 더 많이 주면 게임타임은 줄일 수 있겠지만, 내가 바라는 건 게임타임을 줄이는 게 아니라 관심분야를 다양하게 하는 거라서.


금요일부터 일주일 동안 (가족이 함께 보는 TV를 제외한) Small 스크린을 전혀 하지 말기로 했다. 네가 뭘 잘못해서 벌을 주는 건 아니라는 걸 분명히 했고, 스크린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재미있는 걸 찾을 수 있는지 한 번 시도해 보자고 했다. 너만 놔두지 않고 필요한 만큼 엄마아빠도 같이 하겠다고.


토요일 오후엔 아이랑 나랑 둘이서 국립도서관에 갔다. 여기는 미국처럼 가까운 데 공립도서관이 많지 않은데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도서관에는 어린이 코너가 없어서, 처음 가본 낯선 동네였다. 관심있는 책을 같이 골라 보려 했는데 아이는 전부 코딩, 게임메이킹, 알고리즘, 게임메이킹에 사용하는 수학, 이런 책만 골랐다. 물론 어린이용이지만.


애들 책인데 나도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잘 고른 책인지도 알 수 없다. 아무튼 아이는 Unplugged activities for future coders 라는 부제가 붙은 알고리즘 스킬 빌딩 책을 보면서 혼자서 종이에 이런저런 그림을 그리고 보드게임을 만들면서 저녁시간을 보냈다. 뭘 이끌어 주고 싶어도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오늘 책을 좀 빌려왔고, 미스테리 소설도 몇 권 빌려왔으니 며칠은 갈 것이다. 이게 끝나고 나면 리코더를 가르쳐 보려고 한다. 그게 잘 안 통하거나 금방 끝나면 저학년용 지리 워크북을 사둔 게 있는데 그걸 같이 할 계획이다. 학교에서 지리를 배우기는 하는데 언제나 Google Earth를 사용하니까 아이는 종이로 된 지리책에는 관심이 없고, 나는 Google Earth에 주소만 입력해서 계속 손가락으로 스크린만 가까이로 확대했다 멀리 축소했다 하는 게 영 마음에 안 든다. 요즘 아이들 키우는 데는 왜 이렇게 부모 세대가 모르는 것도 많고, 공이 많이 드는 건지.


친구들이랑 놀리고 싶어도 요즘 3학년 남자애들은 친구집에 놀러 오면 다들 게임하려고 자기 랩탑이나 아이패드를 들고 와서 더 이상 플레이데잇도 큰 의미가 없다. 동네에 굉장히 활동적인 친구가 있어서 얼마 전까지는 두세 명이서 밖에서 자주 놀기도 했는데, 이제 그 친구는 주 3회 수영에 골프, 필드하키, 축구, 배드민턴까지 레슨 다니느라 놀 시간이 없다. 모든 걸 학교를 비롯한 기관 아니면 가정에서 제공해야 하고 그 사이사이의 빈틈은 스크린과 인터넷이 메우는 세상.


애들 키우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아이가 둘인데 너무 다르다. 둘째는 과제수행력은 뛰어나지만 그걸 다 마친 후 여가시간에는 스크린 외의 관심분야가 없어서 고민이고, 반대로 첫째는 스크린이 필요없는 각종 관심분야가 많은데 대신 수행하는 과제의 양이 세 살 어린 동생보다도 적어서 때로는 한숨이 난다.


비누도 만들고 쿠키도 굽고 햄스터도 돌보고, 하다 못해 더 할 일이 없으면 집안에 오래된 물건을 찾아서 다시 페인트칠을 하면서라도 수학이나 피아노, 독서는 뒷전으로 미루는 아이다. 요즘에는 햄스터 돌보기 매뉴얼도 만들고 있다. 저녁마다 한쪽 구석에서 20분씩 춤도 춘다. 어쨌든 끊임없이 관심사를 만들어내는 게 기특하긴 하다.


5년 동안 했던 짐내스틱을 이번 학년까지만 하고 그만두기로 했다. 짐내스틱 이후로는 다른 주종목 운동을 찾아야 하는데 본인은 댄스를 하고 싶다고 한다. 내 마음 같아서야 좀더 무난하고 두루두루 활용도 높은 수영이나 테니스를 했으면 좋겠는데, 기회를 주어 봤지만 본인이 관심없다. 지난번에 학교에서 했던 육상팀은 한 쿼터가 끝났고, 뛰는 게 얼마나 힘든 운동인지 알고서는 재등록하지 않았다. 그래, 댄스라면 학교 클럽이나 선택과목 등으로 즐기면서 적당히 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발레를 배우고 싶다고 한다. 아이구야. 일곱 살이 아니라 7학년이 되는 애가 이제 발레를 하고 싶다니. 한숨이 난다. 나는 네가 좋아하면 댄스를 해도 된다고 했지, 댄스에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짐내스틱 그만두면 남는 시간을 공부랑 피아노에 쏟았으면 했는데, 발레를 하고 싶다니... 프로 발레리나가 되려는 건 아니지만, 자기 나름 생각에는 댄스를 할 거면 발레가 기본이 되는 것 같다고 한다. 그래도 남들은 아기 때부터 하던 발레도 그만두는 이 나이에 발레를 시작? 너 그렇게 기본부터 잘 해서 춤 추지 않아도 되는데.


발레를 안 시켜본 것은 아니었다. 보통 미국 여아들이 제일 발레를 많이 시작하는 나이인 킨더가든(초등 예비학년) 때부터 1학년이 끝날 때가지 2년 동안 집 근처 발레학원에 보냈었다. 물론 그 때는 시간이 지날수록 지루해했고, 팔짝팔짝 뛰어다니며 멋있게 재주넘기도 배울 수 있는 짐내스틱에 마음을 빼앗겼다.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해서 시작한 짐내스틱을 2학년부터 6학년까지 5년간 해왔다.


 해도 어느 정도 열심히 하지만 어느 이상 독기는 없는 아이가 발레를 해봤자  들고  들어가는 관심분야 특별활동 이상은   것이 뻔해서 마음이 무겁다. 이렇게 인생을 사치스럽게 살아도 돼나? 그래도 답은 안다. 네가 하고 싶다면 나는 시켜주겠지. 오래  갈지도 모르겠다. 오래  가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어차피 중학교 시절은 네가 좋아하는 다양한 것들을 찾아가는 시간으로 사용하기로 했으니,   있을   해봐라. 대신 고등학교 동안은  가지 활동 정해서  길을 가는 거다.


성향이 다른 아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관심사를 찾아간다. 마음껏 지원해 주고 싶다가도 아이들의 마음이 이끌리는 것이 내 마음 같지 않으면 맥이 풀리고 돈이 아깝기도 하다. 공부 외의 다른 것을 다양하게 경험하게 해주고 싶으면서도, 공부와 성적을 강요하지 않는 학교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확 차오르기도 한다. 공부도 쉬엄쉬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잘하게 되는 게 아닌데, 그럼 공부 걱정은 누가 하냐고!


아이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며, 때로는 필요하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대부분 쓸데없을 많은 고민을 대신 떠맡는 게 요즘의 엄마 역할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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