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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니스푼 Sep 30. 2022

자동차는 내 발이 되었다.

홈메이드 미국생활

미국으로 이주를 세 번 했다. 첫 번째로 온 것은 대학원에 유학을 왔을 때였다. 두 번째로 왔을 때는 교포 남편과 결혼하고서였다. 세 번째는 이번에 싱가포르에서 돌아오면서다.


미국을 떠날 때마다, 드디어 대중교통으로 아무 데나 다닐 수 있는 문명세계로 돌아간다는 게 참으로 홀가분했다. 커피 한 잔을 사 마시거나 편의점에 잠시 다녀올 때도 차를 몰아야 하는 미국 생활이 너무나 못마땅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더 그랬다. 태어나면서부터 어디를 가든지 차를 타고 이동해 온 아이들은 걷는 걸 무슨 못할 일처럼 여겨 펄쩍 뛰며 질색했고, 그럴 때마다 뭔가 인간에게 중요한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서 싱가포르에서 3년 동안 우리는 자동차 없이 생활했다. 원래의 야심찬 계획은 지하철과 버스 위주로 다니는 것이었는데, 막상 살아 보니 실제로는 택시를 많이 타게 되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 때는 집과 차를 먼저 장만했다. 4인 가족이 미국에서 생활할 때는 (동부나 서부의 일부 대도시에서 사는 게 아니라면) 자동차가 필수다. 대중교통도 배달서비스도 별로 없는데다, 택시도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7인승 대형 SUV를 패밀리 카로 선택하게 되었다. 한숨이 났다. 매번 차를 타고 돌아다녀야 하는 생활방식도 싫은데 커다랗고 거추장스러운 대형 SUV라니.


처음 몰아보는 높고 큰 차를 타고 조마조마한 시운전을 한 지 어느새 3개월이 지났다.


지금 우리가 사는 동네는 싱가포르에 가기 전에 살던 예전 동네보다 20분 정도 운전해서 더 교외로 나와야 한다. 그런데 그 20분 거리가 가져오는 라이프스타일의 차이는 크다. 예전 동네는 좀더 번화하고 편리한 타운이어서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을 운전해서 5분 이내에 해결할 수 있었다. 지금 동네에서는 마트에 가는 데 10분 걸린다. 친구라도 만날라치면 예전에는 다들 중심지인 우리 동네로 왔는데, 이제는 내가 20분을 운전해서 이전 동네로 가야 한다.


작은 차이 같지만 쌓이고 쌓인다. 아침에 두 아이들을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각각 데려다주고, 낮에 한 번 외출했다가 돌아와서, 오후에 다시 아이들을 각자 학교에서 데리고 오는 것만 합쳐도 이미 하루 최소 한 시간 운전을 하고 있다.


운전 시간만 길어진 게 아니다. 운전하는 풍경도 달라졌다. 경기도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조금만 더 가면 어느 새 강원도가 나오는 것처럼, 예전 동네에서 20분 더 밖으로 나온 것 뿐인데 본격적인 자연이 펼쳐진다. 이름 모를 숲과 호수가 이어진다. 절경을 자랑하는 속초나 강릉까지는 아니라도, 최소한 홍천이나 원주쯤은 온 듯한 풍경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렇게 많이 운전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다. 동네의 작은 시가지와 아이들 학교를 벗어나 어디라도 가려면 최소 10-20분 운전해야 하는데 (왕복으로 하면 두 배의 시간이 걸림), 내가 그 드라이브를 즐기고 있다. 나무가 우거진 도로는 길고 단순한데다 차가 막히는 일은 거의 없어서 미끄러지듯 운전할 수 있다. 천천히 찾아오는 가을 속을 운전하며 숲길을 달리고 호숫가를 지나면, 마음이 지금 여기를 떠나 잠시 다른 곳에 다녀온 듯한 홀가분함마저 느낀다.


세 번 미국에 와서 살면서 이렇게 미국 사람이 되어가는구나. 내일 아침에 먹을 식빵 한 줄 사러 자동차 시동을 걸고 10분을 운전해서 마트에 가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차 안에서 간식먹고 노래부르고 떠드는 아이들을 뒷자리에 태우고 다니는 게 편리하고 뿌듯하다. 내비게이션과 자동차 키만 있으면 내 힘으로 어디라도 갈 수 있다는 데서 자유와 권위를 느낀다.


그러다 보니 내가 은근히 운전을 잘 하는 것 같다. 빠르게 속력을 내고 어려운 주차를 하는 건 아니다. 길눈도 그다지 밝지 않다. 그렇지만 아는 길 위주로 신중하게 운전한다. 내가 사는 방식이랑 비슷하다. 어쩌면 나는 내 인생처럼 운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운전은 뗄 수 없는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고 자동차는 나의 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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