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생활은 긴 휴가 같았다.
트위터 친구로부터 "미국에 가신 후, 더 편하고 행복해 보이셔요." 라는 인사를 받았다. 진짜로 그런 것 같다. 사람들이 싱가포르가 어땠냐고 물을 때마다 여기 있는 좋은 것은 거기에 없고, 거기 있는 좋은 것은 여기에 없다고 대답하는데, 미국에 돌아온 후로 나의 행복도는 높아졌다.
왜 그런지 생각해 봤는데, 싱가포르에 다녀왔기 때문에 미국 생활이 더 좋게 느껴지는 것 같다. 물론, 그게 미국이 싱가포르보다 더 좋은 나라라는 뜻은 아니다.
첫 번째 이유. 미국을 떠나 있다 보니 이전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미국 생활의 이모저모를 새로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미국 생활에 대한 newfound appreciation이라고나 할까? 모든 나라는 다 각각의 나라에 맞는 방식으로 라이프스타일이 진화되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싱가포르에 간 것은 3년 전이었지만 결정은 그보다 1년 전에 했다. 미국을 잠시 떠나겠다는 결정을 했던 4년 전에는 미국 생활의 한계에 부딪힌 느낌이었다. 우리는 뉴저지 교외에 살면서 둘 다 맨하탄으로 출퇴근하는 맞벌이 부부였는데, 겉모습만 맞벌이지 돈은 남편 혼자 다 벌었고, 나는 돈도 별로 못 벌고 일도 많이 못 하고 아이들 등하교 때문에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면서 언제나 시간에 쫓겨 과속으로 운전했다.
장만한 지 얼마 안 된 단독주택은 집안을 꾸밀 새가 없어 제대로 된 가구도 없이 하루종일 텅 비어 있었고, 아이들은 학교 애프터케어에서 저녁 6시까지 엄마를 기다렸다. 부모가 집에 없으니 아이들은 피아노도 수영도 못 배우고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놀지도 못하는데, 내 통근시간은 하루에 3-4시간이었다. 그런데 이건 누가 뭘 잘못한 게 아니라 미국생활의 구조적인 문제라서,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왔다.
싱가포르행을 핑계로 마음 편히 직장을 그만두었다. 미국은 맞벌이 부부가 많지만, 두 사람이 다 시내로 출근해서 긴 시간 일하면 생활이 반질반질 유지되지 않는다. 그걸 아예 인정하고 나서 직장을 그만두고, 어디든지 쓱쓱 운전해서 다니며 살림과 아이들을 돌보고, 그 대가로 이런저런 남는 시간에는 내 여유를 챙기며,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 속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사는 게 미국살이의 정수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니,
나는 행복하고 편안해졌다.
두 번째 이유. 싱가포르에서 3년 동안 집안일의 부담과 코로나의 위협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살았다. 이제와 되돌아보니 그 시간은 기한이 정해진 휴가와도 같았다.
미국 엄마들은 굉장히 바쁘다. 한국이라면 상상도 못할 매일 등하교 라이드에 점심 도시락 싸주기가 여기서는 일상이다. 엄마가 직장을 다니든 다니지 않든, 미국 가정생활의 많은 것은 홈메이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미국 엄마들은 언제나 바쁘고 조금은 지쳐 있다. 그런데 싱가포르에 있는 동안 우리 집에는 동남아 헬퍼가 있었다. 입주고용인과 함께 사는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지만, 3년 동안 등하교 라이드와 집안일의 부담에서 자유로왔다는 것은 이제 생각해보니 굉장한 혜택이었다.
손에 물을 안 묻히고 살았을 뿐 아니라, 대도시 중심부에 살면서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즐기고 박물관에 다니며, 외국어와 운동과 악기를 배웠다. 겨우 몇 달 전 일인데 신기할 정도로 새삼스럽다.
거기 더해 코로나가 있었다. 싱가포르라고 코로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세끼 밥과 매일 청소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매일 학교에 갔다. 남편도 회사에 출근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아 힘든 시간을 내가 주변의 미국 지인들과 다른 방식으로 보냈다는 것을 깨닫는다.
물론 싱가포르의 코로나 방역은 엄격했다. 그런데 싱가포르는 정부에서 구체적인 방역정책을 엄격히 실행하니 나는 별 생각 없이 그 지침을 따르기만 하면 됐고, 그건 상당한 마음의 평화를 주었다. 우선 나뿐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정책을 따르고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다. 내가 외식을 못하면 다른 사람도 외식을 못하고 있고, 내가 백신을 맞으면 다른 사람도 백신을 맞고 있다. 선택의 자유가 없는 대신 선택의 부담도 없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많은 것이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본인은 철저하게 방역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렵고, 그러다보니 서로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 사이에 위화감 내지는 불안감이나 의심도 많이 발생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싱가포르에서는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방역을 하니까 결국 내가 코로나에 걸린다면 그건 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감염 여부가 개인 방역의 책임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면 참으로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나는 제약조건이 많기는 하지만 그것만 충실히 지킨다면 그 안에서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강력한 (독재)중앙집권의 나라에서 세끼 밥과 청소 빨래에서 면제된 채로 3년을 보내고 왔다. 그 땐 몰랐지만 이제 다시 미국에서 등하교 라이드와 점심도시락, 아이들 액티비티의 세계에 뛰어들고 보니, 그 시간이 내겐 긴 휴식이었다.
마지막 이유. 내가 맨하탄에 출근하는 맞벌이 커리어의 꿈을 완전히 접었기 때문에, 이전 동네보다 더 멀리 떨어진 한인이 적은 동네로 이사왔다. 이전 동네는 학교에 아시안이 40%였다면 여기는 20%가 채 되지 않는다.
한인/아시안이 많은 곳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먼저 살던 동네는 한인마트나 반찬가게, 한국 식당, 학원 등이 골고루 잘 발달된 곳이었다. 살기에 편리하고 학군이 좋다. 그렇지만 그런 동네는 어디나 경쟁이 과열돼 있다. 한 명 한 명의 한인 친구나 이웃들은 모두 무던한데, 교육열이 강하고 성취욕이 높은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활이 조금 불편하거나 학교의 평균 성적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이번에는 한인들이 별로 없는 곳에 가서 살아보기로 결정했다. 길게 보아서 어떤 것이 아이들의 앞날에 좋을지는 잘 모른다. 십대 아이들이 경쟁이 센 곳에서 또래의 압력을 받아 가며 열심히 사는 것이 더 좋을지, 비교적 경쟁에서 자유롭게 자기 자신을 찾아가며 느슨하게 사는 것이 더 좋을지. 대학 입시에는 어떤 것이 더 유리하고, 장기적인 인생에서는 어떤 것을 더 잘했다고 생각하게 될지 우리도 확신할 수 없다.
그렇지만 여기 학교에서 두 달을 지내 보니, 앞날은 모르더라도 지금 당장은 경쟁이 덜하고 느슨한 곳에 사는 게 우리 모두 몸과 마음이 편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뭐랄까, 동네 공기에 성취욕이 없어 숨쉴 때도 경쟁이 느껴지지 않는다. 결국 앞날을 위해 좋은 일일지는 알 수 없지만, 부모노릇에도 부담감이 덜하고 아이들에게도 쉽게 만족할 수 있어서 지금은 좋다.
이런 이유들로 미국에 돌아온 후에 더 행복하고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 물론 그동안 아이들이 자라기도 했다. 행복은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고 말들 하지만, 모든 상황이 같은데 마음만 바꾸는 것이 과연 쉬운가. 결국은 환경이 바뀌어야 마음이 바뀌는 것 같고, 그렇게 해서 마음이 바뀌면 같은 것도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물론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이 생활에 익숙해지면 또 조금씩 지쳐가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