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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순이 Nov 28. 2022

비타 500의 위로

"고객님, 오늘 이 서류 가지고 주민센터 가셔서 주택임대차 계약 신고필증 받아다가 1층 사무실에 맡겨놔 주실 수 있을까요?"

"아, 네. 오늘 처리해야 하는 일이죠?"

"아무래도 네... 내일은 또 주말이니까. 가능하시면 오늘 꼭 부탁드릴게요."

"아, 네. 알겠습니다."

부동산 직원이 건네주는 서류를 받았다. 이제 막바지였다. 입주를 위해 방문했던 사람들이 전부 다 떠나 텅 빈 거실을 봤다.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보다 작아 보였다. 잠시 싱크대에 기대앉았다. 


때는 8월 말, 대망의 이사하는 날. 어떤 이사가 안 그렇겠냐만, 서울에서 지방으로의 장거리 이사는 생각보다도 힘들었다. 명의 문제로 서울에서의 마무리는 ㄱ이, 광주에서의 시작은 내가 맡아 처리하기로 했다. 새벽부터 srt를 타고 내려온 나는 잔금을 지불하며 계약서 마무리를 하고, 입주 센터에 들러 이제 막 입주를 마친 참이었다. ㄱ역시 이제야 이삿짐센터가 포장을 끝냈고, 부동산에 들러 마무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사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지방에 있는 집을 알아보는 게 쉽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ㄱ이 원하는 집과 내가 원하는 집이 달랐다. 나는 조용한 '동네'에 있는 일반 가정집을 원했고, ㄱ은 출퇴근이 편하고 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는 시내의 오피스텔을 원했다. 아무래도 출퇴근을 해야 하는 건 ㄱ이었기에 나는 양보를 했지만, 불만은 남아있었다. 그런 마음 가짐으로 이사를 하다 보니 짐이 들어오기도 전에 집이, 동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나마 마음에 들었던 건, 탁 트인 창 밖으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는 점이었다. 집 안에서 하늘을 바라본 게 언제인가 싶었다. 이전 집에서는 창문을 열면 눈앞에 고층 건물만 가득했다. 답답함에 창 밖을 바라보면 더 답답했다.


오후 한 시. 배가 고팠지만 지금 뭔가를 먹으면 더 쳐질 게 뻔했다. 그리고 어쨌거나 나에겐 처리할 일이 남아 있었다. 관리사무소에 이삿짐센터 차량이 들어오는 시간을 알리고, 부동산에서 요청한 서류도 떼어와야 했다. 하자 센터에 들러 A/S 신청도 해야 했다(놀랍게도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는 등 하자가 많았다...). 서둘러 짐을 챙겨 밖으로 나섰다.


다행히도 모든 일은 빠르게 처리가 됐다. 이삿짐센터와 ㄱ이 도착만 하면 됐다. 편의점에 들러 이삿짐센터 분들에게 드릴 음료를 사며 내가 마실 이온 음료도  샀다. 근처 카페라도 갈까 하다가, 집에 가서 맨바닥에라도 잠깐 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거라도 하나 마시고 해요. 날씨도 더운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데,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나에게 비타 500을 내미는 건 인터넷 신청 접수를 위해 1층에 상주하던, 오전에 전단지를 줬던 분이었다. 나는 이미 다른데 인터넷 신청을 했다며 전단지와 함께 주신 행주를 돌려드렸었는데, 괜찮다는 내게 끝까지 행주를 쥐어 주셨다. 그래도 이사하면 필요할 텐데 이건 쓰라며. 

"아이고... 아침부터 아가씨 혼자서 겁나 고생하네잉~"

'괜찮다'며 극구 사양하는 내게 아저씨는 이번에도 기어코 비타 500을 쥐어주셨다. 소형 냉장고에서 방금 막 꺼낸 비타 500은 시원했다.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고생한다는 말에, 괜히 코 끝이 찡했다. 


이사는 매번 해도, 이번에도 역시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내가 가진 돈으로는 월세 신세를 못 벗어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 일. 내가 원하는 삶과 내가 살 수 있는 삶을 조율하고 또 조율하고... 포기하고 또 포기하는 일. 나이는 이만큼이나 먹었는데, 여전히 부동산이며 이사 과정에 대해서는 무지한 나와 직면하는 일.

 그 상황에서 나는 나 자신을 꾸짖는 대신,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ㄱ을 원망하는 걸 택했다. 이사 당일 아침부터 서로 예민하게 굴며 다툰 ㄱ과 나는 그저 형식적인 알림 이외 대화는 하지 않고 있었다. 계약 완료했어. 이삿짐센터 출발했어. 나는 나대로, ㄱ은 ㄱ대로 화가 나 있었다. 주로 내가 더 고생했네, 니가 잘못했네 따위의 서로를 탓하는 말과 감정들이었다. 한 발짝의 양보도 없었다. 나에게 필요한 건 그저 힘들었지? 고생했어 그 한 마디뿐이었는데....

그러다 퍼뜩 생각이 들었다. ㄱ이 듣고 싶었던 것도 힘들었지? 고생했어 이 한마디가 아니었을까...라는.


잠시 후 이삿짐센터가 도착하고, 뒤이어 ㄱ도 도착했다. 나는 미리 사놨던 음료수를 ㄱ에게 내밀었다. 평소 내가 먹지 말라며 잔소리하는 탄산 음료였다. 

"더운데 오느라 고생했네."

ㄱ이 멋쩍게 웃으며 음료를 받아 들었다. 

"아니야. 네가 더 고생했지."


그날 저녁 짐 정리를 마친 우리는 짜장면에 탕수육을 먹으며, 서운했던 점을 털어놓았다. 알아챘던 것도, 생각지 못 했던 부분도 있었다. ㄱ 역시 나와 비슷하게 멘붕을 상태였다. 끝없는 자기 혐오와 거기에서 베어나온 짜증. 서로 사과를 하며 위로를 하고, 좀 거창하게 결심도 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더 나은 우리가 되어보자고. 힘들었지? 고생했어.라는 말도 물론 빼놓지 않았다. 


아직도 1층 엘리베이터 앞에 서면, 아저씨의 정겨운 사투리가 떠올라 웃음이 나온다. 

"아이고... 아침부터 아가씨 혼자서 겁나 고생하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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