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단지 내 취향의 생선구이가 생긴다는 것
아주버님 생일파티를 끝내고 일본으로 출장을 갔던 Y가 귀국했다.
[야 홍, 너네끼리 만났다며? 참석 못 한건 미안. 우리 어머님 알잖아ㅠㅠ 대신에 니네 선물 사왔지ㅋㅋ]
은근히 불참에 마음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대체 요즘 세상에 출가외인이라는 말이 어디 있어?’라고 해도 결혼을 하는 순간 그녀들에겐 시‘댁’에 종속된 며느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리고 그 이름에는 묵직하게 ‘부자유’를 부여하는 은근한 압력이 있었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어도, 21세기를 사는 기혼녀들은 가부장제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 속에서 여전히 각종 책임과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며느라기’의 민사린이나, ‘82년생 김지영’에서의 김지영이 왜 이렇게 화제가 되었겠는가.
한 달 전 약속 한 친구들과의 모임에 빠지는 것보다 방금 알게 된 시댁행사에 빠지는 것이 더 큰 부담일 수밖에 없었던 신참 며느리 Y도 민사린과 김지영처럼 은근하고 꼼꼼한 사회적 압력에 짓눌리고, 며느리라는 악 제도의 굴레를 집어쓰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결혼 전 가장 적극적으로 모임을 주도했던 이도 Y였지 않은가. 그녀의 불참에 서운한 생각을 잠시나마 가졌던 것이 슬 미안해지면서 안쓰러운 감정이 일었다.
[웬 선물이야. 근데 K는 소개팅남 만나서 못 온대. W는 외근 있다는데 대학로 근처ㅎ]
[ㅋㅋ그럼 일단 셋이 대학로에서 봐.]
대학로(大學路)라. 이름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젊음의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이십 대 시절 소개팅 첫 만남의 메카가 아니었던가. 그래서인지 대학로라는 말만 들어도 나에겐 연극, 소극장, 파스타나 레스토랑, 그리고 데이트 같은 설렘의 감정을 동반한 단어들이 떠오르곤 했다.
게다가 지금은 토요일 다섯 시다. 아니나 다를까 혜화역 4번 출구에 도착하니 수많은 이십 대 젊은이들이 설렘의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그들의 애인, 혹은 소개팅 상대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젊은이 무리 속에서 학생이라는 딱지는 매우 오래전에 이미 떼 버렸을 것이 확실해 보이는, 그래서 주변인들과 다소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나의 친구들을 금세 찾을 수 있다.
요새 유행하는 스포츠 브랜드의 검정 롱 패딩 군단 사이에 클래식한 크림색 랩코트에 스웨이드 소재의 펌프스 힐을 신은 W와 오버핏의 블랙 맥시 코트에 같은 색상의 부츠를 맞춰 신은 Y. 그녀들이 이방인처럼 부조화를 이루며 서있다.
무엇이 이들을 이방인처럼 보이게 하는가. 아니, 사실 나이를 들어 보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짧은 고찰이 시작된다. 그것은 피부일까. 옷차림일까. 고급스러워 탐났지만 막상 입으면 부자연스럽고 어색해 만지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던 옷장 속 엄마의 가죽 무스탕이 어느 시점이 되자 자연스럽게 어울려지던 때의 기억이 스쳐 지나가며 친구들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그리고 나는 순간적으로 그녀들에게 더 이상 궁금한 게 없어 보이는 눈빛과 결코 설렘이 없어 보이는 표정을 포착한다.
“어디 갈까?”
“음, 인스타에 완전 힙하다고 소문난 핫플 있는데. 카페 겸 펍인데, 분위기 이국적이고 좋대. 거기 가볼래?”
“그러지 뭐.”
W의 추천으로 5분 정도 걸어서 도착한 그곳은 역시 소문난 핫 플레이스답게 순서를 기다리는 젊은 손님들의 줄이 죽 늘어서 있다. 얼핏 보면 일반 가정집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평범한 주택의 모습을 한 한국적 외관인데, 독특하게도 유럽 스타일의 안주가 주 메뉴인 모양이었다. 아마도 #대학로데이트 라고 검색하면 인기 게시물에 여러 개의 피드가 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SNS에서 인기를 끌만한 구석이 있는 이색적 분위기의 펍이었다.
“어쩔래?”
얼핏 의견을 묻는 것만 같지만, 자신은 웨이팅을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강하게 묻어 나오는 W의 물음이었다.
“난 추워.” 나도 우회적으로 후퇴에 한 표를 던졌다.
“아, 그럼 좀 걸어야 되긴 하는데, 여기 되게 맛있는 생선구이 집 있는데 거기 갈래? 전에 남편이랑 가봤어.”
“오, 좋다.”
“콜”
생선구이. 대학로의 이미지와는 다소 어긋나 보이는 메뉴. 그러나 자신 있어 보이는 Y의 제안에 W와 내가 믿을 만하다는 듯, 함께 시원하게 콜을 외쳤다.
“그래 생선구이가 낫다. 핫플은 무슨. 야, 홍. 많이 먹자. 생선이 그렇게 흰머리에 좋대.”
“아 좀. 그만해라, 진짜.”
또, 또 흰머리 주제다. 투닥거리며 걷다 보니 어느덧 대학로 메인 거리에서 다소 동떨어진 곳에 위치한 허름한 생선구이집 앞에 도착했다. 방금 전까지 우리가 있었던 ‘핫플레이스’와는 영 딴판인 셈이다.
생각해보니 언젠가부터 SNS에 소문난 핫플레이스보다는 골목골목에 위치한 숨겨진 맛집이나, 제대로 된 밥과 찬이 나오는 한식집에서의 만남을 좀 더 선호하게 되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만남의 장소에 대한 조건이 생겼다. 첫째, 맛있는가. 둘째, 그 맛에 어울리는 가격인가. 셋째, 조용하고 느긋하게 대화할 수 있는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그 흔한 ‘VJ 특공대’, 혹은 ‘여섯 시 내 고향’ 방송 출연 맛집 홍보물 하나 없는 밋밋하고 투박한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다. 그와 대조적으로 빈자리 없이 꽉 들어찬 손님들이 이곳이 바로 홍보가 필요 없는 진정한 맛집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오직 생선구이로만 승부를 보는 생선구이 맛집답게 메뉴도 몇 개 없다. 게다가 가격은 모두 만원 안짝이다. 대화가 힘들 만큼의 시끄러운 일렉 음악도 나오지 않는다. 이로써 세 가지의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클리어 된 셈이다. 종업원이 가져다준 메뉴판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친구들에게 묻지도 않고 나는 메뉴를 외쳤다.
“이모! 여기 삼치 하나, 고등어 하나, 임연수어 하나요.”
대학 때부터 십 년이 넘은 우정이다. 그녀들의 생선구이 취향쯤이야.
“참, 맞다. 너네 선물. 밥 나오기 전에 줘야겠다. 잠깐만-. 짠.”
주문을 하자마자 Y가 가방에서 깔끔하게 포장된 선물 두 개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자, 이게 홍, 이거는 W 거야. 풀어봐.”
정갈하게 포장된 심플한 디자인의 포장지를 한 겹 벗겨내니 반투명 비닐 백이 있다. 비닐 속에 비치는 내용물을 찬찬히 살펴보니, 이럴 수가.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 「こころ」, 「마음」이다. 헌책방에서 사 온 듯 오래된 헌책이다. 색이 바래버린 책 표지를 넘기니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그 안에 있었는지 묵혀둔 종이 냄새가 확 끼쳐왔다.
수영이며 춤이며 이것저것 액티브한 활동을 즐기는 나지만, 가장 오래된 나의 취미는 의외로 독서, 어렸을 때부터 특히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을 좋아했다. 게다가 원체 아기자기함과는 거리가 먼 탓에 인테리어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던 나지만, 책에 관해서만큼은 읽는 것뿐만이 아니라 수집벽 또한 있었다. 옷이나 구두를 살 때에는 몇 번이고 가성비를 따져보고 최저가를 검색해보는데 그치지 않고 몇 주간이나 고민을 하는데 반해 책은 일단은 구매가 우선이었다. 이십 년이 넘은 지속적인 관행의 결과였다. 그리하여 구매해둔 채 읽지 않은 책도 책장의 한 면을 차지할 정도가, 책장에 들어가지 않아 바닥에 쌓아둔 책도 잭과 콩나무의 콩나무처럼 높은 책 산을 이루었다. 그렇게 모아둔 책들을 보고 있으면 비로소 안정적인 기분이 들곤 했다.
그러던 차에 일 년 전 남동생이 독립을 한 이후 동생이 쓰던 방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심하다가 서재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잘 된 일이었다. 물론 도서관처럼 책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는 없었지만 나름대로 규칙을 정했다. 먼저 책을 문학과 비문학으로 나눈 뒤, 문학은 국가별, 작가별로 정리하고 있던 참이었다. 일본의 대표 작가답게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들은 일본 국가 코너의 앞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뭐 그러면 일본 가서 특이한 콘돔이라도 사 올 줄 알았어? 홍서재 꾸미라고. 너 이 작가 좋아하잖아.”
무심한 듯 던지는 시크함 속 살가움이다. 선물은 만족 그 이상이었다. 내 취향을 간파한 Y가 새삼 사랑스러워 보였다. W의 선물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W 거는 뭐야?”
“와-. 이거 완전 내 스타일. 너무 예쁘다. 오, Y. 간식거리나 열쇠고리나 사 올 줄 알았더니만.”
역시나 만족의 짧은 탄성을 내지른 W의 선물은 클래식하고 페미닌한 스타일의 크림색 카디건이었다.
W의 말처럼 W는 모두가 인정하는 자신만의 나름의 스타일이 있었다. 그녀는 화려한 이목구비의 전형적인 미인은 아니었지만 오목조목 조화롭고 단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은은한 이목구비를 지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힘이 있었다. 본인도 자신의 장점을 잘 알고 있다는 듯 그에 맞는 단정하면서 여성스러운 스타일링을 추구해왔다. 주로 모험을 하지 않는 선에서 확실한 포인트가 있는 심플한 원피스나 단정한 블라우스에 스커트를 받쳐 입는 식이었다. 그래서인지 친구들끼리 모던한 분위기의 옷 가게를 지날 때면 ‘여기 완전 W 스타일이네.’ 하면서 확고한 W의 스타일을 인정하곤 했었다.
“W는 어떻게 그렇게 너한테 딱 맞는 옷만 입는 거야?”
“글쎄. 이제야 내 외모에 대한 자기 객관화가 가능해졌다는 뜻 아닐까? 하하.”
맞다. 물론 W가 처음부터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춰왔던 것은 아니었다. 십 년 전에는 ‘흑역사’라 이름 붙일 수 있을 만큼의 조화롭지 못한 패션 테러를 일으키던 적도 있었다.
당시 우리는 ‘유행템’에 몰두했었는데, 예를 들어 160cm를 넘지 않는 짧은 키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부츠컷 청바지라든지, 다 똑같은 베이지 색의 어그 부츠라든지, 바가지를 연상시키는 답답한 뱅 헤어라든지, 시장바구니를 연상시키는 백과 같은 것들 말이다. 물론 이제 와서 그러한 스타일들이 ‘구리다’고 평가하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다만 당시에는 다름을 인정하기엔 용기가 다소 부족했던, 복사·붙여 넣기를 한 것 마냥 특색 없는 아쉬운 패션이었던 것은 확실했다. 문득 혜화역 앞 한 무리 같았던 롱 패딩 군단이 생각났다.
“롱 패딩이 진짜 유행이긴 한가 봐. 아까 4번 출구 앞에 서 있는 애들 봤어? 전부 롱 패딩이더라. 나도 하나 장만해야 하나 싶더라니까.”
“너 안 어울려. 땅딸보 돼. 그나마 롱 패딩 유행은 좀 낫다. 왕 버클 벨트 유행 아닌 게 어디야.”
Y가 ‘왕’에 힘을 주어 W의 흑역사를 저격했다. 아닌 게 아니라 W가 자주 입었던 부츠컷 청바지에 챔피언 벨트를 연상시켰던 벨트가 생각나 갑자기 웃음이 터질 뻔했다가 과거의 나를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어 간신히 웃음을 참아냈다. 정말이지 당시에는 자기 객관화가 전혀 안되어 있던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내가 스포츠 브랜드의 롱 패딩을 구매하는 일은 없으리라.
“삼치, 어디세요?”
“여기 주시면 돼요.” 음식을 내온 종업원에게 Y가 당연하다는 듯 내 수저가 놓인 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삼치는 나에게, 고등어는 Y에게, 임연수어는 W에게로 각각의 자리를 찾아간다. 내 취향의 생선구이가 내 앞에 있다. 갑자기 나는 이상하게도 이 순간 뭔가,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문득 아까 역 앞에서 본 이방인 같았던 친구들의 눈빛이 생각난다. 더 이상 궁금함이 보이지 않았던 그들의 눈빛에 순간적으로 안타깝다는 감정이 일었던가. 설렘의 감정을 내뿜던 다른 젊은이들이 부러웠던가. 그러나 설렘의 눈빛 대신 분명함과 여유로움을 띤 그들의 눈을 보며 문득 나이가 든다는 것은 중심부에서 내쫓기고야 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제야 비로소 조금 선명해지기 시작한 내 취향들의 공간에 머물게 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평영은 약간 나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평영 킥을 할 때마다 앞 주자와의 거리는 벌어진다. 흰머리도 슬슬 나기 시작한다. 왠지 사람들의 관심에서 다소 멀어진 것 같기도 하다. 요새 유행한다는 롱 패딩도 없고, 힙하다는 핫플레이스는 왠지 내 취향이 아니다. 나는 드디어 실감한다. 젊음의 중심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나는 이제 삼치구이를 '어렴풋하게'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젊음이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머물러있지 않다는 것은 어쩌면 참을 수 없이 절망적이고 무거운 것만은 아닐지 모른다. 나쓰메 소세키와 삼치구이를 '명백하게' 좋아하는 것 정도로.
[젊음유통기한] 흰머리 고찰
[아줌마] 아줌마. 리즈시절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인가.
홍마담쌀롱 유튜브: https://www.youtube.com/channel/UCMVI-WRQYPQFToxaq4Nn04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