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와 같은 서른두 개의 글을 쓰고서 구독자 1,000명이 되었다. 누군가는 적다고 여길만한 숫자일지 모르겠지만 상징적 숫자가 가져다주는 작은 기쁨에 자축하며, 누군가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기념 글을 써본다.
브런치를 시작하기 전
왠지 모를 불안함이 엄습하던 서른 살이었다. 남들보다 약간은 예민한 기질을 지닌 탓일까. 그때의 나는 서른이라는 상징적 숫자에 매몰돼 있었다. 그것이 가져오는 미묘한 압박감에 짓눌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삼십 대를 여전히 반짝이는 청춘이라 칭하지만 그런 진부한 말이 실제 위로로 이어지진 않았다. 슬슬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앙상하고 메마른 가을은 아닐지언정 쨍쨍한 여름이라 할 수도 없는 그 어딘가, 서서히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하는 내리막 코스의 시작, 그것이 삼십 대의 위치라는 것을.
나이 듦, 노화, 쇠락, 상실. 그것이 미묘하게 변해버린, 내가 맞닥뜨린 삼십 대의 현실이었다. 삶에 치열하지 못했던 까닭에 그 어떤 것도 이루지 못했는데 잃는 것은 자꾸만 늘어갔다. 경제적 안정도, 커리어의 만족도 얻지 못했는데 손에 쥔 모래알이 우수수 빠져나가듯 낭만이, 꿈이, 소중했던 관계들이 틈새로 빠져나갔다.
차라리 그런 진지한 문제뿐이었더라면. 잘난 것 하나 없지만 스스로 강한 신념만큼은 지녔다고 여겼는데 놀랍게도 신념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돼 저물기 시작했다. 세속적인 것, 타인의 시선에 갇힌 삶을 지양하던 나의 신념은 가십의 중심,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나자 급속도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전과는 다르게 무례해진 남자들의 태도, 성적 매력 상실의 인식이 우습게도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노화가 시작되면서 흰머리와 주름은 어느새 화장으로 감출 수 없을 만큼 늘어나고, 종종 아줌마 소리까지 듣게 되며 나는 리즈시절이 결국 종말을 선언했음을 깨닫고 절망했다.
그것들을 소유하고 있었을 땐 그렇게 우스울 수밖에 없던 문제들이 나를 세차게 흔들고 있었다. 나는 애초에 중심 따위 없었던 사람처럼 흔들리고 조급해하며 허둥지둥했다. 어렸을 땐 삼십 대의 현실이 이럴 것이라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삼십 대의 내가 우습고 시시한 것들에 벌벌 떠는 형편없는 인간일 줄은 단 한순간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러나 나의 모습은 어떠했던가. 내려와야 할 때를 인정하지 않은 채로 청춘이라는 무대 끝에 바둥바둥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는 것만 같았다.
브런치를 시작하다
단지 어딘가에 배설하고 싶었을 뿐이다. 어쩌면 너무 사소하고 한심하며, 어쩌면 너무 양가적이고 위선적인 나의 진짜 모습을. 그래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와 내 주변인을 빼닮은 어쩌다 보니 서른둘이라는 나이에 놓인 홍주연이라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여성.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이 겪었던 아주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의 순간들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좋든 아니든, 나는 썼다. 그저 솔직하게 썼다. 애써 결론을 내려고 하지도, 주제를 찾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삼십 대는 빛나는 청춘이라고 외치지도 않고, 이 방향이 아닌 저 방향으로 가자고 결론 내리지 않으며, 진정한 나를 찾자고, 나답게 살자며 교훈을 찾지도 않았다. 다만 서른이 넘어 왠지 미묘하게 변화된 것 같은 세상에 놓인 삼십 대 여성들의 불완전한 일상을 썼을 뿐이다.
한 살이 늘고 두 살이 늘어 서른둘이 되었고 조금씩 조회수와 구독자도 늘어갔다. 그것은 소소한 나름의 행복이 되었지만 평범하기 그지없는 일상에 글 쓰는 일 하나가 추가되었다고 기적적으로 당장 삶이 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상실과 체념은 여전히 계속되었고 나는 자꾸만 밑으로 곤두박질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습관처럼 꾸준히 글을 쓰는 행위는 나를 마주하고 들여다보게 만들며 다행스럽게도 내게 몇 가지 배움을 주고 있었다.
쓰는 행위는 흩어진 내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을 도왔다. 큰 목적 없이 그저 쓰기만 했을 뿐인데도 그것은 그저 불안하고 정신없이 혼란스러운 파편처럼 널린 내 생각들을 차분하게 하나로 모아 정갈하게 다듬었다. 나 자신과 대화하며 성찰과 반추를 반복하게끔 했다. 혼란함의 근본 원인을 마주했고, 그 안에서 미묘하게 진화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의외로 내가 수많은 실수 뒤에 여전히 밀려오는 후회와 상실의 아픔을 감출 수 있는 단단한 갑옷을 챙겼다는 것을. 현실에 얼마간 순응하며 굴절된 자아를 갖게 되었으되 비극과 어둠에 무뎌지고 익숙해지며 성장할 수 있었고, 고단함과 외로움, 그리고 막막함이라는 차가운 감정에 매몰돼 허우적대기도 했지만 불안을 지그시 누르고 가볍게 사는 법을 배웠다는 것을. 성숙이라거나 타협이라거나 하는 한 가지 단어로 정의 내리기엔 복잡한, 그것 또한 그저 그대로 삼십 대의 평범한 모습이었다는 것을, 나는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통해 경험을 나누는 행위는 뜻하지 않게 내게 치유와 위안 또한 가져다주었다. 적지 않은 댓글들과 DM은 내가 결코 세상에서 고립되지 않았음을 일깨웠다. 전혀 일면식 없던 사람들, 지금껏 나와 어떤 작은 인연도 없던 관계들이 글을 매개로 연결되었다. 작은 공감과 소통은 또다시 글을 쓰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모두에게 감사했다.
출간 계약과 1,000명의 구독자
종종 내 글이 운 좋게 다음(Daum) 메인에 올라가고, 인기글로 선정되는 경우는 있었지만 브런치 북 프로젝트에서 입상하게 되는 일, 내 글을 눈여겨보던 편집자가 연락을 취해오는 그런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그것을 목표로 두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다지 실망할 것도 없었지만 내심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거창한 것을 이루려 했던 것이 아니었음에도 당시 브런치에서 글을 쓰다가 출판의 기회를 얻은 가까운 사람들의 글을 몇 번 접하기도 했던 터라 내게도 그런 선물 같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까, 작게나마 소망을 품고 있던 것이 가망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글태기’가 찾아왔다. 한동안 쓴다는 것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지기도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에도 나는 내가 쓰는 것 외에도 브런치에서 추천해주는 글을 꼬박꼬박 읽었다. 나의 관심사든 아니든 그 글들은 나의 세계를 파고들어 생각을 정립하고 세계를 확장시키는 경험을 하게 도왔다. ‘글태기’ 상태에 빠졌을 때, 글 쓰는 것이 버거울 때, 나는 애써 쓰려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이들의 글들을 읽었다.
‘원고 투고’에 관한 글이 브런치가 추천하는 글로 올라왔던 날이었다. 흥미로웠다. 공모전이 아닌, 출판사의 간택(?)이 아닌 다른 루트를 통해서도 작가 지망생이 아닌 일반 사람들도 작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니. 당시 나로서는 어떠한 경험도 없는 내 쪽에서 출판사에 먼저 연락을 취해 ‘출판 희망’을 알리는 것이 꽤 쑥스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러나 브런치에 올라온 투고를 다룬 추천글, 이어 비슷한 몇 개의 글을 읽고 나도 어쩌면, 이라는 작은 희망을 품자 다시금 열정이 되살아났다. 욕심이 생겼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해야지, 생각했던 날처럼 그날도 나는 곧장 실행에 옮겼다. 원고를 한 데 모아 정리하고 기획서를 작성했다. 서점에 달려가 내가 쓰는 글과 비슷한 책을 낸 출판사를 추렸다. 약 스무 개의 리스트가 만들어졌다. 투고 메일을 보냈다. 메일을 보낸 지 만 하루가 지나지 않아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사실 제 이름은 서연주 랍니다
믿을 수 없게 그렇게 나는 출판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출판 전까지 쓰디쓴 퇴고의 시간을 거치고 있느라 요새 통 브런치 글 발행이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서른두 편의 글을 쓰는 만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 시작된 글쓰기는 나를 들여다보고 깨달음을 정리하게끔 도와 결론적으로 아주 많은 부분에서 내 인생을 치유하는 수단이 되었고 때로는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보다 의지할 수 있는 관계가 되기도 했다. 뚜벅뚜벅 걷듯 단지 한 달에 한두 편만을 썼을 뿐인데 어느새 구독자 천명, 누적 조회수는 37만을 넘어서고 출간 계약이라는 작은 성취감까지 안겨주었으니 그러고 보면 내 인생도 상실뿐인 인생은 아니었던 걸까.
이제 한 달 정도가 지나면 나는 서른셋이 된다. 이제 불안함이 조금 가셨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여전히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했고, 넉넉한 마음도 갖지 못했다. 내 인생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위태롭게 흘러가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막연했던 그 불안을 구체적 활자로 마주해온 덕일까. 다음 단계로 편안하게 안착한다, 까진 아니겠지만 적어도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버티다 발을 헛디뎌 데굴데굴 굴러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만하면 브런치를 통해 얻은수확이 꽤 괜찮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유튜브를 시작했어요. 아직 미흡하지만 앞으로 삼십 대의 고민과 삶을 차곡차곡 담아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