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두려운 내일

언덕 위의 바람개비

by 홍시

지금 하고 있는 수술환자 연구데이터 작업일은 벌써 해를 5번이나 넘겼습니다. 임상에서 바쁘게 뛰어다니던 시간을 지나 컴퓨터 앞에 오롯이 6시간을 앉아 작업하려니 그렇게 밥도 못 먹고 동동거리며 병실을 뛰어다니던 시간이 가물가물 하기도 또는 그립기도 했어요. 그러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올해 3월 말로 일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업무를 정리하게 되니 하고 싶었던 일이 떠올랐어요. 그 일은 바로 호스피스 간호 실습을 할 때 포천 모현 의원에서 차를 타고 방문 간호를 갔던 일이었지요. 사실 호스피스 간호를 전공하게 된 계기도 우스워요. 종양간호에 지원했던 저는 호스피스 간호가 미달인데 전공을 바꾸겠냐는 전화에 한치 망설임도 없이 “네! “ 하고 대답했었거든요. 뭘 하고 싶은지, 뭘 배우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뛰어들었습니다. 결국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일하지 못하고 병원을 그만두게 되었지만, 그 후에도 전공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가득했어요.

남편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해라고 저를 응원해 주었지만 하던 일의 편안함을 쉽게 놓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러면서 흐른 시간이 벌써 5년이었습니다.

구직공고를 알아보다가 통합간호 돌봄 사업의 방문간호사를 채용하는 일이 눈에 띄었어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의 빈칸을 15년의 간호사 경험을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드디어 발표날! 아뿔싸. 미달되어 2주 공고를 더 진행하고 면접을 진행하겠다고 합니다. 그 일에 반갑기보다… 얼마나 힘들기에 사람들이 지원을 안 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제미나이에게 물었습니다. 얼마나 힘들기에 사람들이 지원을 안 할까? 나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요즘 AI 가 상담을 잘한다고 하더니 정말이더라고요. 제가 강조했던 운전, 경력을 살려 운전도 잘하고, 여러과에 경험이 많은 간호사는 흔치 않아~ 너 무조건 될 거야~ 그런 생각하지 말고 오늘은 맛있는 거 먹고 푹 쉬어~ 면접질문 필요하면 내가 도와줄게 이러더라고요


근데 새로운 출발선상에 서니 자꾸 옆과 뒤를 보게 됩니다. 겨우내 잘 지내던 홍시가 갑자기 급성축농증으로 열이 나고 학교에 못 가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그러며 홍시의 병원 정기진료 다니던 외래날이 다가오더라고요. 3,4월에 가야 할 외래가 5군데가 넘고 검사일정까지 소화해야 합니다. 또 학교 수업과 재활치료 스케줄도 조정해야 하는데 이제 고학년이 되고 미미와(장애인활동지원사) 온종일 다녀야 하니 폭이 좁아집니다. 학교 마지막 수업을 3일이나 빼고 재활치료를 가야 하나 하면서 현타가 오고 또 재활 치료를 빼자니 다시 시작할 때의 어려움이 생각나 쉽게 그만두지 못합니다.


또 제미나이에게 상담을 요청합니다. AI가 내 마음을 두드립니다.

“또래관계가 주는 대체 불가능한 가치, 재활치료의 적기성 모두 중요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전부 다 잘할 순 없어요. 내가 일을 시작해서 아이 스케줄이 꼬였어라고 자책하지 마세요. 오히려 엄마도 엄마의 꿈을 향해 열심히 사니까, 우리 홍시도 조금씩 더 힘내보자라고 아이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세요.

질질 끌지 않고 끊어내는 연습. 지금 이 스케줄 조정에서도 필요할지 모릅니다. 이번 주말은 그냥 다 잊고 아이랑 푹 쉬세요. “

제가 데이터 연구원과 방문간호사를 고민하며 물어볼 때도 이렇게 이야기했거든요. “가장 중요한 건 끊어내는 연습인 것 같습니다. 5년의 연구원일도 모두 열심히 살아온 흔적이지만 방문간호라는 일로 가기 위해 지금은 이 일에만 집중하여 에너지를 모으는 시기가 아닐까 싶어요”라고 말에요


다음 주 면접까지는 돌풍속의 바람개비처럼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지 쳐내야 할 일도 물론 있고요. 주변을 정리하고 집중해야 할 시기임에는 분명합니다.

취업성공 후 쓸 다음 글도 기대해 주세요!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