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나를 바라보기
작년 성미산학교에서 마임워크숍을 듣게 되었다. 그때 만나게 된 양손 프로젝트라는 팀을 통해 연극에 대해 관심을 두고 보게 되었다.
양손 프로젝트의 손상규 배우님의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라는 연극이 국립정동극장에서 열리게 되었다.
같이 가기로 한 친구가 몸이 안 좋아 남편과 함께 오랜만에 정동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손상규 배우님의 무대의 카리스마는 알고 있었지만 이 극은 그 카리스마, 압도감이 한창 고조되었다.
100분가량을 혼자 이끌며 많은 배역을 소화한다는 것에 대해, 그 배역의 특징들이 다 너무 살아있음이 신기했다.
처음 젊은 청년이 떠오르는 아침을 바라보며 서핑을 하던 장면, 그 이후 병원의 모습, 너무 실감 나는 연기에 내 마음이 들킨 듯 쉽사리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첫 직장이었던 대학병원에서는 장기이식 했던 환자들의 간호도 했었고, 지금은 심장이식한 환자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일을 하는데
나의 환자들이 공연장 허공으로 떠오르는 듯했다.
장기이식, 심폐소생술거부(DNR, do not resuscitate) , 호스피스 등 나는 공부를 하고 현장을 겪으면서도
내 삶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가족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작 이야기 듣지 못하고 뒤로 숨었었다.
병동에서 일하며 죽음을 늘 곁에 두었을 때도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두려웠고,
호스피스간호 공부를 하면서도 인간의 존엄한 죽음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과연 죽음의 단계 중에 수용까지 이를 수 있을까? 그때의 나는 어떨까?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운전할 때 죽음에 대한 생각은 더 많이 든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며 내가 핸들을 확 돌린다면,
오늘은 도로에 파란색 보석같이 콕콕 박혀있는 가이드라인을 바라보며 내가 이 선을 벗어나버린다면 생각했었다.
매일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죽음이 무서웠다. 극에서 느꼈던 압도감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마주 한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공연의 수술장면은 압권이었다. 조명으로 빚어내는 그림자, 빛으로 표현된 장면들을 황홀히 바라보았다.
배에 꼬르륵한 소리가 무색할 만큼 공연장의 100분은 눈을 감았다 뜨는 찰나처럼 짧고 아름다웠다.
공연을 보고 난 후에는 무대의 무게가 무겁고 나를 짓눌러 다시는 보기 힘들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힘이 들었다.
공연장의 배우처럼 나도 관객석에서 모든 힘을 쏟아낸 느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서핑할 때의 그 파닥거리는 커다란 물고기처럼 자유로움, 몸의 어딘가의 생명이 살아 넘치는 문신, 사랑하는 이와의 키스,
지난번의 압도감, 중압감보다 생의 황홀함, 짜릿함, 흥분을 보고 싶다.
누군가를 통해 다시 살아나는 시몽 랭브르의 심장
시몽 랭브르의 심장이 움직이는 이 시간, 바다로부터 하늘이 분리되기 시작하는 시간
05:4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