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2일차, 건축과 음식으로 채운 하루

방주교회와 본태박물관, 그리고 흑돼지

by 홍천밴드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 원래 계획했던 목적지는 이타미 준이 건축한 수풍석 박물관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12월 말까지 휴관이라는 소식을 듣고, 계획을 바꿔 근처에 있는 방주교회와 본태박물관을 둘러보기로 했다. 결과적으로는 이 선택이 꽤 만족스러웠다.


이타미 준이 설계한 방주교회는 겉모습만 보면 교회라는 사실을 알아채기 어렵다. 십자가 같은 상징적인 요소가 외부에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성경 속 ‘노아의 방주’에서 모티프를 얻어 만들어졌는데,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배처럼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교회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길 위를 건너야 하는데, 이 과정 자체가 일상의 공간에서 벗어나 사색의 세계로 들어가는 하나의 의식처럼 느껴진다. 잔잔한 물 위에 떠 있는 교회의 모습은 조용하지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타미 준(Itami Jun, 본명 유동룡)은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활동한 재일 한국인 건축가로, 자연과 인간, 그리고 건축의 본질적인 관계를 평생에 걸쳐 탐구한 인물이다. 한국적 정체성을 마음속에 품은 채 살아온 그의 삶은 건축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콘크리트, 돌, 나무 같은 재료를 거칠게 드러내면서도, 그 안에 고요함과 사유의 공간을 담아냈다. 건물을 ‘짓는다’기보다 자연 속에 조용히 ‘놓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건축가다.

방주교회를 둘러본 뒤 바로 옆에 있는 본태 박물관으로 향했다. 본태 박물관은 또 다른 거장,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공간이다. ‘본태(本態)’라는 이름 그대로 사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공간답게, 건물은 매우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내부는 미로처럼 이어져 있고, 노출 콘크리트와 빛, 물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분위기가 제주 자연과 어우러진다. 걸음을 옮길수록 마음이 차분해지고, 자연스럽게 사색에 잠기게 되는 공간이다. 한 번쯤은 꼭 방문해 볼 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도 다다오는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건축가로, 노출 콘크리트와 빛을 활용한 미니멀한 건축으로 잘 알려져 있다.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한 그는 자연과 건축의 관계를 누구보다 깊이 고민했고, 공간 안에서 사람이 머무르며 생각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데 집중했다. 그의 건축은 화려하지 않지만,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긴장감 속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타미 준과 안도 다다오는 분명 닮은 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건축을 추구했고, 건물을 돋보이게 하기보다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게 만들었다. 빛과 바람, 물을 건축의 일부로 끌어들이고, 공간이 주는 ‘체험’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도 같다. 그래서 두 사람의 건축은 빠르게 소비되기보다는 오래 머물수록 깊이가 느껴진다.


하지만 방식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안도 다다오가 인간이 자연을 ‘마주하도록’ 만드는 건축가라면, 이타미 준은 인간이 자연 속으로 ‘스며들게’ 만드는 건축가에 가깝다. 안도의 건축이 기하학적이고 단단하다면, 이타미 준의 건축은 부드럽고 서정적이다. 하나는 긴장감을, 다른 하나는 편안함을 남긴다. 그래서 두 사람의 건축을 연달아 보는 경험은 꽤 흥미롭다.


건축을 둘러본 뒤에는 역시 제주에 왔으면 빠질 수 없는 흑돼지를 먹으러 갔다. 이번에 간 곳은 대형 고깃집으로 유명한 숙성도였다. 고기를 숙성시키는 공간이 유리창 너머로 훤히 보이는데, 그 모습만 봐도 괜히 기대가 된다. 등심과 삼겹살을 주문했고, 직원이 직접 구워줘서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요즘 고깃집답게 멜젓, 갈치젓, 명란, 고추냉이 등 곁들임도 다양했다. 고기를 한 점씩 찍어 먹다 보니 어느새 배가 꽉 찼다. 양이 많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먹고 나니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제주에는 워낙 맛있는 흑돼지집이 많지만, 이곳도 충분히 추천할 만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소화를 시킬 겸 송악산 둘레길을 걸었다. 산과 바다를 함께 볼 수 있는 길이라 풍경이 참 좋았다. 제주는 바람이 세긴 하지만, 한겨울임에도 서울처럼 매섭지는 않다. 바람막이 하나만 있으면 걷기 좋은 날씨였다. 서울에서는 추위 때문에 바깥 활동이 쉽지 않은데, 제주에서는 겨울에도 이렇게 여유롭게 걸을 수 있다는 점이 참 좋다.


박물관을 보고, 맛있는 흑돼지를 먹고, 바람맞으며 산책까지. 하루 일정이 더할 나위 없이 알찼다. 제주라는 공간이 주는 여유 덕분에, 그날 하루는 유난히 깊게 느껴졌다.

방주교회
본태박물관
숙성도 영롱한 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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