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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주현 Sep 09. 2019

가족 이기주의와 가족의 공공성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가족의 공공성을 세우는 것


흔히 가족을 사적 집단이라고 한다. 그러나 엄밀히 가족은 사적 집단이 아니다.  근대 사회에서 가족은 사적 집단이 될 수 없다. 사적이란 표현은 개인적인 것을 의미하는데, 개인과 집단은 양립할 수 없다. 개인이  모이면 공동체다. 집단 안에 존재하는 건 개인이 아니라 개별체다. 가족은 사적 집단,이라는 표현의 의미는 가족의 영역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공유하는 곳이라는 의미이지 가족 자체가 주체로서 프라이버시를 갖을 수는 없다. 


근대 이후 사회를  형성하는 주체는 개인이다. 개인이 모여서 만든 것이 공동체로서의 사회이고, 그러한 사회공동체는 공적 영역으로 간주된다. 그렇다면  가족은 사회 이전에 개인이 모여 만든 첫번째 공동체라는 점에서 그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공유하는 관계라고 할 수만은 없다. 가족  역시 공공성을 갖춰야 하는 공동체이며 따라서 사회에서 공공성을 강조하는 만큼 가족의 공공성 역시 중요하다. 첫번째 사회화 수단으로서 가족은 구성원을 정서적으로 지원하면서 하나의 주체, 개인으로 만드는 일뿐만 아니라 공공성을 갖춘 시민으로 훈련하는 기능도 갖는다.   


공공성을 갖춘 시민을 길러내는 일은 근대 이후 가족의 중요한 역할이다. 루소 등 근대 사상가는 새로운 사회 체제 구상을 가족  관계를 재정립하는데서 출발했다. 신체발부수지부모가 아니라 각자가 신의 자녀로서 애초부터 개별적인 존재이며, 신의 뜻 실현, 즉  자기 구현을 위한 통로이자 수단으로서 가족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족 구성원은 각자가 평등하고 대등한 존재이고, 평등하고  대등한 존재 사이에서 의무와 권리를 이행하기 위해 계약 개념을 적용한다. 가족 구성원을 묶어두는 원리는 일종의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권리와 의무가 아니라 계약, 즉 약속이다. 이러한 가족은 대화를 통한 논의로 공동의 일을 결정하고 서로 상충하는 이해를  조화시키는 훈련을 하면서 공공성을 형성한다.


가족 안에 공공성이 갖춰질수록 가족의 영역은 투명해진다. 공공성을 갖춘  가족 구성원은 시민으로서 사회에서도 같은 태도를 취할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우연히 본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북유럽에서는 밤에도  통유리로 된 거실에서 불을 환하게 켜놓고 생활한다. 그만큼 사생활에서도 감출 것 없이 당당하다는 걸 의미한다는 나래이션의 설명이  아직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인상 깊었다. 북유럽은 개인, 프라이버시에 민감한 걸로도 유명하다. 개인의 개념이 제대로 잡혀  있으면, 프라이버시와 투명성은 반비례하는 게 아니라 비례하는 관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첫번째 사회화 과정인  가족 공동체의 공공성에서 길러지는 것이다.


제도를 이식해 위에서부터 이루어진 한국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제도와 그  제도를 작동시키는 주체의 사고방식, 정서 사이에 괴리가 있다. 최장집 등 정치학자들이 과제로 꼽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는 사실상  시민을 길러내야 할 가족의 민주주의, 즉 가족의 공공성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오랫동안 한국 사회  문제의 근본 원인은 가족 이기주의였다. 전근대적인 가족관에 기인해서 안으로는 맹목적 의무를 앞세워 복종과 억압이, 밖으로는 가족  집단만을 위한 이기주의적 태도를 보였다. 가족 구성원 사이 공공성 부재가 곧 사회의 공공성을 해치는 이기주의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러한 가족이 스스로 삶을 영위하며 자기 구현 할 수 있는 개인도, 사회적 존재로서의 시민도 생산하기 어려운 건 당연하다. 


세대, 계급 등 다양한 시각에서 최근의 국무위원 후보자 스캔들에 대해서 많은 성찰이 일어나고 있지만, 무엇보다 한국의 고질적인 가족 이기주의, 한국의 가족이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계기로도 삼아야 할 것이다.





참고.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723592

2부 ‘우리’에서 ‘나’를 분리하다 

신체발부수지부모 가족관의 마력 

가족은 ‘나’의 선택과 동의로 만든 공동체


3부 ‘우리’가 아니라 ‘너’와 ‘나’의 연대를 위해  

가정 폭력과 사생활, 사생활은 ‘개인’의 것이지 가족 ‘집단’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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