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결과는 같다
공덕역 소담길에 있는 '맹그로브'라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주 아담한 크기에 소박하면서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실내에서 부터 주인의 정성이 보인다. 아담한 식당처럼 고를 수 있는 메뉴도 네 가지 뿐이다. 라오스식 쌀국수 담백한 맛, 매콤한 맛, 롤 튀김, 모닝글로리 볶음이다.
국수 두 개 아래에 처음 보는 요상한 메뉴가 하나 있길래, 그게 뭐냐고 물어봤더니, 주인 설명이 길다. 라오스에서 많이 먹는 볶음 요리인데, 처음에 그걸 메뉴에 넣었다가 주방이 협소한 탓에 감당이 안 돼 뺏던 음식이라고 한다.
그런데, 컨설팅 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사양했는데 구지 백종원이 조언 해 줘서(그 식당은 방송 중? 했던? <골목식당> 촬영 장소 바로 옆 집이다) 어쩔 수 없이 메뉴에 올렸다면서 그 음식은 지금 자기가 만들지 못한다면서 주문하지 말라는 눈치를 줬다.
그 사연을 얘기하는 내내 자기는 무리해서 여러 음식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뜻을 내비쳤다. 손님이 밀려 들더라도 자기가 만들 수 있는 만큼만 음식을 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도 깜냥 이상으로 욕심을 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동행한 님의 귀뜸에 의하면, <골목식당> 출연 섭외도 그런 이유로 거절했더니 백종원이 주인의 그 자세를 극찬했다.
"욕심 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싶다"는 주인의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늘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라고 아침마다 읊어도 하루를 지내다 어느새 잊어버리고 욕심을 마구 부리다가 자리에 누울 때 돼서야 문득 '아, 아침에 그런 결심을 했었지'하고 떠올리는 내게 또 한 번 경종을 울린 것이다.
이십대에서 삼십대 중반까지 나는 자기계발서 또는 그런 류의 말들에 꽤 심취해 있었다. 더 잘하고 싶은데 아직 능력이 모자란 내 처지와 치열한 경쟁과 늘 상존하는 고용 불안에 치여 뭐든 상상하는 대로, 마음 먹는 대로 하면 이룰 수 있다는 말에 현혹됐다. '현혹'이라는 표현은 좀 심하다. 사실, 도움도 많이 받았고, 그 말이 사실이기는 하다.
다만, 한국의 자기계발서는 미국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미국의 자기계발서는 뭐든 할 수 있다고 독려할 수밖에 없다. 미국인은 자기 재능과 깜냥을 하느님이 준 것으로 선천적으로 정해졌다고 여기는 탓에 노력의 기여를 폄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유교의 영향력이 아직도 지대한 한국은 그 반대다. 죽으면 끝이라는 유교의 현세주의는, 그러므로 살아 있는 동안 자기 노력에 따라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다고 가르쳤다. 물론, 신분 사회에서 그 노력은 물질적 성취가 아니라 도덕성 성취를 의미했다.
하지만, 신분이 해체되고 사회구성원 모두 성공을 향해 내달리는 상황에서는 노력하면 뭐든 이룰 수 있다는 조언이 자기 태도나 도덕, 수양이 아니라 물질적 성취로 왜곡됐다. 이런 한국에 유입된 미국의 자기계발서는 노력하면 뭐든 다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는 믿음을 더욱 부풀리는 작용을 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그런 부푼 희망과 기대를 정말 성취하는 경우는 가뭄에 콩 나듯 있고, 당연히 대다수는 좌절로 이어졌다. 그러면서 노력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자기계발서 폄하로도 이어졌다.
한국인은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자극해야 하는 미국인과 다르다. 한국인은 누구나 당연하게 그런 생각을 한다. 구지 꼽자면, 그것이 한국의 전통 아닐까 싶을 정도다. 따라서 그 보다는 노력이 지나쳐 욕심으로 치닫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걸 강조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란 생각이 요즘엔 부쩍 많이 든다.
'맹그로브' 주인처럼 "욕심 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는 자세를 연습하는 것, 그것도 또 다른 자기계발이다. 그런 자세로도 "마음 먹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다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오르고자 하는 곳에 오를 수 있다. 과천에서 올라가나 판교에서 올라가나 청계산 꼭대기를 향하기는 마찬가지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