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집사의 중심 잡기 1
집사의 길을 가게 되었다. 집사의 길이란 내가 즐기려고 함께 하기로 한 생명에게, 막상 집에 들이고 보니 내 호오나 기분과 상관 없이 해줘야 하는 정성이 마냥 즐기는 마음을 압도한다는 표현이다. 하물며 식물을 기르는 일에도 식물집사라는 말이 있다는 건 익히 알고 있던 바이다.
드디어 어제 오랫동안 미루던 프라이버시를 위한 대나무발 벽을 마저 세우고 겨울 지나 초봄 그 짧은 사이에 무성하게 자란 잡풀을 다 뽑았다. 멋 모르고 갔던 양재꽃시장에서 업어 온 아이들도 어설프게나마 자리를 잡아주었다. 낯선 흙 속에서 새까만 밤을 보내도록 한 첫날 밤부터 그리고 눈을 뜬 아침인 지금까지 마음이 안절부절하다. 아이들이 괜찮은 걸까. 알지 못하는 생명을 키우는 완전한 초보의 무지에서 생기는 불안과 염려다.
초보에게 양재꽃시장은 혼을 쏙 빼놓고 눈을 뒤집어지게 만든다. 된장녀였던 어린 시절 백화점에 갈 때마다 겪었던 그 마음이다. 다만 백화점에서는 어릴 땐 상대적으로 높은 절대가격이, 지금은 그에 더해 혹한 마음에 들였다가는 머지 않아 오히려 애물단지가 되고 만다는 사실을 아는 지혜(?)가, 그 마음을 엄하게 통제한다. 꽃시장에서는 그 통제력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렸다. 각종 명품 못지 않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자태에 넋이 나갔다. 집에 키울 곳이 마땅치 않으면 저것은 애초에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초연한 고고함을 유지했을 터인데, 그 곳에 간 것 자체가 이미 아이들을 업어 올 작심에 작심 상태였기에 더욱 통제력을 잃었다. 내가 뭔가를 사려고 어디를 간 건 마트나 피부과 같은 곳 빼고는 수 년 만이었다. 그리하여 눈에 보이는 대로 마구 픽하는 자유를, 호사를 시연하다가 같이 간 친구가 문득 제동을 건 덕에 그쯤에서 겨우 멈춘 것이다.
책이나 글을 봐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머릿속을 온통 저 아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이유에 이런 배경이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안 그래도 화려한 외양이 마음을 사로잡는데, 좀 비싼(상대적으로) 것들이라는 생각에 더 애착하게 되는 것이다. 눈 뜨자마자 나가서 동쪽 해를 잘 받나 들여다보며 아침 인사했는데, 지금 또 당장 달려나가고 싶다.
이 집에 이사오고 나서 자꾸 마음이 강하게 달라붙는 일이, 대상이 나타난다. 올케와의 오해 사건이 그랬고, 얼마 전 개그맨 김해준의 부캐들과 본캐가 그러했고, 지금은 이 화단이. 몇 번 겪어보니, 역시나 모든 일은 무상하다는 것, 즉 다른 아무 일 못할 정도로 그래서 이래도 되나 싶은 걱정이 생길 정도로 마음을 빼앗겨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사그라든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그러나 역시나 다시 또 그런 일의 한폭판에 서니 걱정과 불안도 다시 일어난다.
꽃시장에서 돌아와 찾아보니 이런 노지 화단에 심을 요량이라면 더 작은 모종을 더 많이 더 싸게 파는 곳을 찾아갔어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친구와 또 약속을 잡았다. 바로 내일. 이번에는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 매야지. 잘 할 수 있겠지.......
(양재꽃시장에서 점포 운영하는 유투버 아재 얘기 들어보니, 나 같은 아지매가 많은 듯. 꽃 예쁘다고 막 사다보면 거지꼴-그게 바로 꽃거지-을 못 면한다고, 꽃파는 사람이 그런 경고를 할 정도라니......)
2021.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