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두기가 필요한 건 꽃도 마찬가지

불안한 건 꽃이 아니라 내 마음

by 홍주현
밖에 나가 나뭇잎이든, 작은 동물이든, 바다 조개든,
거기에 집중해 보세요. 그것을 바라보세요.
거기에서 신을 발견할 때까지, 당신이 당신을 바라보 있음을 알게 될 때까지요.
그때 무슨 느낌인가가 올 것입니다.




수국 꽃을 다 잘라버렸다. 양재꽃시장 어느 꽃집에서 가져 온지 딱 일주일만의 일이다. 파랑과 진분홍 꽃의 화려함으로 화단을 장식하는 일은 내겐 일주일이면 충분한 호사였던 것일까. 일주일만에 아끼고 좋아하던 수국 꽃을 내 손으로 다 잘라버린 이 참극을 일장춘몽에 비유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일장춘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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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대를 잘라버리는 일을 감행한 건 꽃과 잎사귀가 성치 않은 이유가 곰팡이균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직후였다. 그동안 파란 수국과 진분홍 수국 각각의 꽃무더기 하나가 색이 누렇게 변하면서 시들시들하고 검은 알갱이 같은 것 때문에 지저분했다. 수국을 화단에 얹어 놓은 며칠 뒤, 아침에 물을 주느라 가까이 들여 다 보니 잎사귀 또한 불에 타 그을린 것처럼 끝이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수분이 부족해서 그런 줄 알고 저면관수도 하고, 물을 더 열심히 성실히 흠뻑 주었다. 나아지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식물에 대해서 일자무식인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유투브와 블로그에 이런저런 검색어를 넣어도 나오는 건 온통 삽목이나 잘 키우는 방법 등에 관한 내용 뿐 아픈 수국 되살리는 방법은 없었다. 우연히 클릭한 유투브에서 힌트를 얻었다. 식물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학생 같은 사람의 공부 내용 정리인 듯 수국이 걸릴 수 있는 병에 관한 전문 서적을 무미건조하게 읽는 영상이었다. 여러가지 병을 설명하는데, 어쨌든 나는 대부분 곰팡이균 감염이 원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집 화장실 등에 생기는 곰팡이 제거제로도 수국 곰팡이균 제거에 효과적이라는 정보를 얻어 즉시 만들어 뿌려 댔다. 하지만 내 수국이 시든 원인이 어떤 곰팡이 균인지, 즉 어떤 병에 걸린 것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는 탓에 곰팡이 제거제를 뿌리는 것만으로는 불안했다. 내 손에 쥐어 진 가위는 점점 꽃과 잎사귀 그리고 마침내 가지에 마저 날카로운 칼날을 뻗쳤다. 처음엔 나뭇잎사귀 검은 부분만 잘라내는 것도 벌벌 떨었는데 점점 잎사귀 자체를 따내고, 상한 꽃잎만 따냈는데 점점 꽃 무더기 하나를 다 따내고, 그 다음엔 가지를 잘라버렸다.




탐스럽던 수국은 눈깜짝할 사이에 앙상한 가지로 변신했다. 그것도 파란 가지 속 흰 속살을 훤히 내보이는 초라한 모습으로. 나는 주저하던 삽목도 어쩔 수 없이 추진해야 했다. 보일 듯 말 듯 이게 진짜 새 눈일까, 혹여 살아있는 걸 죽여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흐릿하게 보이던 새 눈도 또렷이 보였다. 축축한 흙에 찔러 넣으면 된다던데, 과연 이렇게 하면 될까 하는 의구심은 내팽개쳤다.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 지. 망하면 할 수 없는 일이지! 이런 마음이 생겼고 그러자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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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으로 쫓기듯 곰팡이균에서 수국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죽이면 안 된다는 강박, 잘 키우고 싶다는 집착이 날아가버렸다. 실은 육체적 지침도 커다란 몫을 했다. 지난 일주일동안 나는 힘들었다. 각각의 꽃 성질을 알지 못한 채 내 눈에 좋은 위치에 심었다가 차츰 하나하나 검색해가면서 제각기 필요한 햇빛과 바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마다 다시 옮겨 심기를 며칠 동안 반복했다. 화단에서 부엌과 화장실 그리고 가위 등이 있는 방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체력을 소모했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아도, 이 작은 집에서 나는 지쳐 잠들었다. 다음날 눈 뜨자마자 또 마당으로 달려나가 물을 주고 꽃을 살피면서 나는 하루 종일 꽃만 보면서 살다 나이 먹어 죽어도, 그렇게 살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마저 했다. 다소 집착인 줄 알면서도 꽃이 시들까 봐 불안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즐기려고 심은 꽃의 노예가 되었다. 그렇다면, 꽃에 종사한다고 해서 꽃은 좋았을까. 그도 아니다. 물을 너무 많이 줘서 과습으로 곰팡이균에 감염됐고 결국 멀쩡하던 꽃 무더기가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쓰레기통으로 고꾸라졌다.




어떤 일을 하는지, 행위보다 중요한 건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라고 한다. 나는 물을 열심히 주고 꽃 상태를 열심히 보살폈다. 꽃을 오래 잘 가꾸고 싶은 선한 의지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아니, 사실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설사 결과가 좋았다고 하더라도 지난 일주일 꽃을 돌보면서 나는 힘들었다. 몸 뿐만 아니라 마음도 지쳐가고 있었다. 그것은 물을 열심히 주고 꽃을 정성껏 돌보는 행위를 유발한 마음이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꽃을 잘 가꾸고 싶은 의지는 선의 같지만, 그 선의의 바탕에는 꽃이 시들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있었다. 이 불안이 꽃에서 한 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고, 급기야 한 평생 화단만 쳐다보다가 죽어도, 그렇게 살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 것이었다.




꽃에 비해 너무도 가녀리게 보이는 줄기는 내 생각만큼 가녀리지 않았다. 오래된 가지가 휘청거릴 정도의 바람에도, 휘청휘청 거리면서 바람과 장단을 맞추면서 고개를 돌릴지 언정, 고꾸라지지 않는다. 꽃을 가벼운 바람에도 곧 쓰러질 듯 가녀리게 본 건 순전히 내 편견이었을 뿐이고, 나는 꽃이 아니라 내 편견에 충실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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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하고도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거리두기를 막는 것은 연약한 꽃 몽우리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불안이다. 이 불안은 대상에 대한 신뢰 부족, 즉 내가 돌봄과 도움이 없으면 제대로 자라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 또는 얕잡아 보는 태도에서 생겨난다. 나도 힘들고, 힘들 대로 힘들어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그러니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따뜻한 봄 바람에 들 떠 아무 것도 모른 채 보이는 대로 집어 들고 왔을 때 나는 한바탕 봄꿈에 빠졌다. 내 손으로 나를 한껏 들뜨게 만든 탐스러운 꽃 무더기를 다 잘라버리면서 나는 마침내 봄꿈에서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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