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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하면 즐길 수 있을까?

영화 <러빙 빈센트>로 본

by 홍주현

잘하는 자가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처럼, 고흐도 즐기지 않았을까요?"


즐기면서 하는 일은 어떤 일일까? 대개 잘해야 즐길 수 있는데, 잘하는 상태와 즐기는 상태를 구분한 걸 보면, 잘하는 일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즐기는 일이라 의도한 것일 듯하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일을 할 땐 즐거울까?


좋은 느낌과 즐거운 느낌이 같다면 맞는 말일 테다. 즐거우면 대개 좋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그 일을 할 때 항상 즐거운 건 아니다. 즐거움이 쾌락에 조금 더 가깝다면 좋은 건 쾌락보다는 어떤 평온한 상태일 때도 느낄 수 있는 정서이기 때문이다.


고흐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즐기는 건 아니었을 것 같다. 나는 고흐를 보면서, '하지 않으면 불편한, 그래서 하지 않고는 베길 수 없는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라는 느낌을 더 많이 받았다. 즉, 그림 그리는 게 어떤 즐거운 느낌을 가져다 줘서라기 보다는 그리지 않으면 불편하고 괴로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림을 그린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매일 규칙적으로 그림을 그리려면 단지 즐기는 느낌 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어떤 중독 수준의 쾌락을 가져다주는 일이 아니라면, 막연하게 긍정적인 어떤 느낌을 느끼기 위해서 매일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불편하고 불쾌한 기분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일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건 가능하다. 그러지 않으면 사는 게 고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의외로, 천직 같은 일에는 좋은 느낌, 즐기는 느낌 같은 건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 언론 기사 타이틀 보듯이 듣고 싶은 소리만 겉 핥기로 받아들여서 그렇지 좋아하는 일이란, 팩폭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일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승부욕이 아주 강한 사람이 지고는 못사는 상태와 같은 것이다.


<도시어부>에서 이경규가 다른 출연자가 물고기를 잡으면 샘이 나서 못 견뎌하며 자기가 잡을 때까지 예민하게 구는 모습이나 <나 혼자 산다>에 출현한 가수 그룹 동방신기의 유노윤호가 승부욕이 강한 나머지 재미로 치는 볼링에서도 자기가 이길 때까지 게임을 끝내지 않고 밤새도록 쳤다는 에피소드처럼!


그런 성격의 사람은 승리했을 때 얻는 좋은 느낌, 즐거운 느낌 그런 쾌감보다 졌을 때 느끼는 괴로움,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고 이기고 싶은 욕구에 못 이겨 밤 새 뜬 눈으로 보낼 정도로 그 고통이 더 크다. 마치 몸이 너무 아파서 밤 잠을 설치는 사람과 같은 것이다.


나는 천직, 재능, 또는 소위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의미하는 일은 이런 경우가 훨씬 많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것은 쾌락과 거리가 멀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그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 그 일을 하는 것이고, 그렇게 그 일을 했을 때 겨우 보통 사람이 쉽게 느끼는 그 평온을 얻는 것이다. 인간이란 게 원래 좋은 건, 중독 수준이 아니라면, 구지 안 해도 그럭저럭 지낼 수 있지만, 고통스럽고 괴로운 건 벗어나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좋아하는 일, 또는 자기에게 재능이 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 상당수는 자기 실현을 위해서라기보다 어쩌면 그저 쾌락을 쫓으려는 게 아닐까 자문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럴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것이 쾌락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라는 말로 많은 사람을 홀릴 수 있는 것일 테고, 무엇보다 대개 사람들은 자극적이고 쾌락적이지 않은 말에는 잘 넘어가지 않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내 경험도 그러하다. 나는 글쓰기를 멈출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어떤 좋은 느낌이라든가 즐겁다거나 그런 쾌락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 물론, 때때로 좋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글쓰기가 아무리 좋다고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건 아니다. 그럴 일은 또는 그런 일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 테다.


반면, 머릿속에 어떤 말이 떠오르면 뱉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그러지 않으면 편안하지 않기 때문에 쓴다. 그래서 성과나 그 질이 좋든 나쁘든 상관이 없다. 남들이 어케 생각하든 써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살기 위한 생존의 방편인 것이지, 좋은 느낌, 즐거운 느낌 같은 쾌락을 얻기 위한 일과는 거리가 멀다. 자기 실현 또는 독자를 돕거나 하는 거창한 포부도 부차적일 뿐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로 먹고 살려면,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고 결코 그 길이 평탄치 않으며 실패할 가능성도 크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즐기는 자가 노력하는 자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말은 어느 경우에 쓰이는 건지 그래서 나는 모르겠다.


그런 말을 믿는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이 글케 즐겁기만 할까, 노력은 없었을까 궁금하다. 그가 노력 없이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분명 그 일을 하는 게 즐겁거나 좋아서가 아니라 하지 않으면 편치 않기 때문에 그 고통스러운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더 크리라 확신한다. 즐겁고 좋은 건 안 해도 그만이지만, 고통과 괴로움을 피하지 않으면 못 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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