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존중한 나머지 조선인은 맹수와 공존하며 살았다는 어느 소설의 서문
갤럭시폰에는 한 달에 책 한 권 대여해주는 서비스가 있다. 책은 갤럭시와 교보문고 측이 선정한다. 이번 달 책은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로 미국에서 꽤나 히트쳤다고 하는 이야기다. 작가는 어릴 때 부모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자란 '87년생 한국계 미국인이다. 이야기는 아마도 작가가 한국 독자에게 따로 쓴 서문에서 밝히는 대로 "왜적을 피로 물리"치며 야수들이 "아직 분단되지 않은 남과 북 영토를 넘나들었"던 한반도 이야기인 듯하다. 서문에서 그는 김구 옆에서 독립운동을 한 외할아버지 영향을 받아 쓴 소설이라고 밝힌다.
나는 작가가 한국 독자에게 따로 쓴 서문을 읽는 것만으로도 우려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가까운 가족 중에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 있어서인지 서문에서 작가는 소설가다운 환상으로 조선을 바라보고 있다는 자기 역사관을 한껏 드러내는 듯해서다. 특히 야수라고 표현한 일제 시대 호랑이에 대한 시각은 정말로 판타지스럽다.
"당시 지도자(독립운동가)들은 일제의 호랑이 사냥을 민족 탄압으로 여겨 비난했다. 호랑이가 국민에게 연민의 대상이자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한반도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전해 내려오는 수천 가지 설화, 옛날 이야기, 민화 등 예술작품에서 우리 민족이 호랑이를 얼마나 사랑하고 아겼는지 알 수 있다"면서 "호랑이는 그저 사람을 해치는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사촌이었다. 작은 땅덩이에서 5천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어마어마한 맹수들이 인간과 공존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은 한민족의 자연에 대한 경의와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맹수와 삶의 터전을 함께 나누어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나? 그 자신은 그럴 수 있나? 현대인이 맹수와 분리된 삶을 사는 건 단지 자연을 박해하기 때문인가?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로 조선인의 삶을 머릿속에서 그려보기만 할 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대입시켜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문제다. 그럼에도 과거 시대 사람들을 덮어놓고 판타지화 하는 건 철저히 그들을 '타자화'하는 태도다. 그것은 조선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그리고 한국의 역사를 자기 출세를 위해 이용하는 행태의 또 다른 모습에 다름 아니다.
조선인이 맹수와 공존하며 살았다는 시각은 조선을 '백의 민족'이라고 칭하는 태도와 같다. 탄압과 억압으로 염료 등 의복 기술 그리고 산업 전반을 후퇴시켜서 입을 수 있는 천이라고는 무명을 잘라 기워 입는 것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던 한계를 '백의 민족'이란 미화적 표현에 숨기듯이 무기라고는 죽창 같은 것 밖에 없어 아이가 잡아 먹혀도 맹수를 죽이지 못하고 체념한 채 살아가는 것 밖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무능을 '맹수와 공존'이라고 왜곡하는 것이다.
"자연을 존중하여 함께하는 것이 한국 문화의 본모습"이라고 생각한다는 작가의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이 전혀 없다. 이와 같은 작가의 시각은 오히려 옹졸하고 비겁한 변명을 일삼는 자기 기만이 한국 문화의 본모습인 것 같다는 인상만 받게 한다.
그가 "자연 존중"을 한국 문화의 본모습이라면 치켜세우려 한 배경에는 현재에 대한 비관적인 인식이 있다. 그는 현재 인류가 "자연 파괴, 전쟁, 기아 등을 맞이해 과거보다 더 큰 물리적, 윤리적 멸망을 눈앞에 두고 있다"면서 세상을 "환멸"한다. 왜곡된 조선 미화는 "이런 환멸의 세상에서" 그래도 의미 있게 사는 방법을 찾아 독자에게 제시해야 한다는 "작가의 의무"감에서 기인한 것이다.
현재 인류가 과거보다 더 큰 물리적, 윤리적 멸망을 두고 있는 게 사실인가? 폭발적인 인구 증가는 현재가 과거보다 훨씬 안전하고 풍요롭다는 단적인 증거 아닌가? 일부 잘 사는 나라에서 단지 먹고 자고 번식하는 일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 역시 안전과 풍요 덕 아닌가?
배우 이경영이 유투브 예능 <경영자들>에서 닥터 김사부에서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를 꼽은 적 있다. "과거 없는 현재는 없다. (따라서) 현재를 사랑하면 용서하지 못할 과거는 없다."
소설의 한국판 서문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 또한 현재를 긍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이다. 과거에 대한 인식 왜곡, 그로 인한 자기 기만의 출발은 바로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왜곡이기 때문이다.
덧1) 젊은 한국계 미국인 작가의 약진이 반갑지 않은 이유다. 조선에 대한 이같은 왜곡 클리셰가 오히려 우리가 배우고 계승해야 할 조선의 진짜 강점과 장점을 파악하는 일을 방해한다. 그것이 자기기만 만큼 우리 자신을 갉아먹는 또 다른 중대한 폐해.
덧2) 아래와 같은 행위가 일제의 호랑이 사냥과 다를 게 무엇인가? 조선인이 맹수를 죽이지 못한 게 자연 존중 때문이었다면, 현대 한국인은 자연을 존중하지 않아서 저 사자를 죽인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덧3) '백의 민족'이라느니, 일제에 무조건 반발하기 위해 미화하기 시작한 조선인의 '맹수 공존'설은 한국에서는 이미 너무나 식상하고 진부한 주장인데, 미국에서는 신선하게 받아들여지는 흐름 아닌가 싶다. <파친코> 히트 이후, 한국계 미국인 작가의 일제 시대 배경 이야기가 여럿 주목 받나 본데, 하나 같이 클리셰 범벅.
이 같은 시각은 아마도 미국이라는 선진문명국에서 자란 사람이 갖기 쉬운 전근대에 대한 환상과 한국 민족주의 정체성이 합쳐진 결과일 것.
2023.08.14